Faith and Healing(신앙과 치유)
얼마 전 안식일 교과 공부의 제목이 신앙과 치유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주제이다.
조금은 민감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Faith and Healing(신앙과 치유)을 Mind and Healing(정신과 치유)과 혼돈 한다.
교과공부의 제목은 신앙과 치유이지만 예들은 거의 모두 정신과 치유의 이야기이다.
악령의 증세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나
소년 마이클의 동사와 부사에 대한 숙제를 통한 치유는
모두 정신과 치유에 관한 예들이나 모두 신앙과 치유에 적용했다.
우리는 이 둘을 구별하여야 한다.
건강한 사람이나 환자들이 예방이나 육체적 치유의 목적으로 신앙이나 정신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신앙의 범주를 벗어난다.
정신은 육체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육체적 치유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은 육체적 치유에 그 목적을 두지 않는다.
신앙은 그 목적이 영혼의 치유인 하나님과의 관계에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이러한 현상을 본다.
내가 알고 있는 분의 어머님이 우리의 기별을 접하였을 때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서 치유를 받아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 남아야 한다고 했다.
기별을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옛날 우리의 조상은 무당을 찾아가 무당을 믿고 치유를 받은 자들이 있다.
그러면서 무당을 쫓으면서 치유를 받는다
많은 우리의 이웃에는 절을 찾아가 정성으로 빌고 치유를 받은 자들이 있다.
그들은 언제나 절을 찾아가 정성으로 빈다
박태선 장로의 집회에 참석하고 치유함을 받은 자들도 있다.
그들은 박태선 장로의 추종자들이 된다
이렇게 치유함을 받은 자들은 모두 치유함을 받은 곳에 또한 받은 사람에 충성한다.
물론 우리 교회가 혹은 개인이 경영하는 뉴스타트 요양소도 마찬가지이다.
육체적 치유는 그가 믿는 대상의 진리와 거짓에 관계없이
그 대상에 어떠한 신뢰를 가지느냐의 정도에 따라 정신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으로
치유함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앙은 육체적 치유와 관계없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영혼의 치유를 그 목적으로 한다.
영혼의 치유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과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과
하나님의 사고로 살아가는 정신적 태도와
이것을 감당할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 영혼의 치유를 위하여 이 땅에 세우신 하나님의 기관이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을 떠나간 자들
인생의 삶을 육적인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
자기 자신의 사고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육체적 연약함을 가지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곳이다.
우리들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만 치유함을 받을 수 있다
신앙으로 치유함을 받은 영혼들은 새로운 피조물이며 "New Creation"에 참여한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유일한 것이며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우리는 가끔 New Creation을 뉴스타트와 혼동하고 있다.
영혼의 치유 즉 신앙으로 이루어지는 치유는
우리에게 굶주림(N)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의 자유를(E) 박탈하며 갈증을(W) 일으키며
동굴에(S) 갇히기도 하고 삶을 균형(T)지게 유지하지 못하게 한다
신선한 공기(A)를 간절히 소원하지만 쉼(R)을 허락하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T)만 붙들고
육체적 치유의 궁극적인 목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일을
포기하도록 요구한다
신앙은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교회의 역사를 보면 불행하게도 어떤 목사는 교회를 요양소로 착각하고
육체적 질병에 너무나 편중을 두어 목회보다는 의사의 직분을 하는 분도 있다.
교회에 가면 교회에 왔는지 요양소에 왔는지 착각할 정도로 뉴스타 강조만 한다
어떤 분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요양소를 교회로 착각하여
목사의 직분을 겸하려고 하는 분도 있다.
건강강의를 들으러 갔는데 꼭 교회에 앉아있는 기분이 든다
목사의 직분이나 의사의 직분은 모두 매력적인 것이다.
세상적인 말로 인기가 좋은 직분이다.
모두를 다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영혼의 치유로 마음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꼴이 된다.
교회가 영혼의 치유인 그 원래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모든 교우들이 새로운 피조물로서 "New Creation"에 참여하였으면 좋겠다.
2010년 6월 22일 안식일 아침
장로님
아직 6월 22일 다가오지도 않았는데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