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나은 예배를 위하여
보다 나은 예배를 위하여 연구 위원회를 조직하고 실행하고
또 연구하는 일들을 되풀이하면서 예배에 관하여 우리의 생각을 자극해보고자 한다.
마침 한국 연합회에서 "예배 갱신의 해"를 위하여 세미나를 개최한 것을
봉원영 목사님이 앤드류스 교회의 웹싸이트에 종합하여 올려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드리는 예배 순서에 대한 신학적이고 성서적인 의미를 재조명한 것이다.
아쉬운 것은 오십년 전 교회에 들어와서 드리던 똑 같은 한 예배 형식에
신학적이며 성서적 의미를 주고 그 예배 순서만을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세대를 위한 예배의 창을 열지 못한 점이 아쉽다.
전통적인 예배가 자칫하면 빠지기 쉬운 문제점들
즉 권위적이고, 의식적이고, 형식적이고, 경직된 예배의 모순을 없애기 위해
단순하고 진지하고 자유롭고 편안한 예배를 도입하는 연구를 통해
적어도 연합회 차원의 권장하는 예배라면 몇 개의 모델을 정하고
각 교회가 형편에 맞게 선택의 여지를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전통적인 예배가 좋은 성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가?
첫째는 순서가 너무 많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예배가 그러한 순서에 매여 진행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많은 순서가 준비 없이도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회중의 세대를 고려함 없이 일률적인 전통에 매인 예배 형식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교회에 들어온 지 오십년이 되어도 똑 같은 내용과 형식의 예배를 유지한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 가지 형태의 예배로 조직되어 있다.
즉 찬양과 기도와 말씀의 예배로 구성되어 있다.
말씀과 기도는 시대의 변천에도 변하는 것이 아니지만 음악은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다.
젊은 세대와 나이 많은 세대의 차이 즉 세대 차를 알려면 그들의 음악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나이의 사람들은 가곡이나 흘러간 옛 노래등을 좋아하지만
젊은 세대에는 그러한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 찬미가를 살펴보면 그 곡과 가사는
대부분 1800년도나 1900년도 초의 것으로 우리 세대와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 때의 집에 살지 않고 그 때의 차를 타지 않고
그 때의 옷을 입지 않고 그 때의 헤어스타일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때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그 때의 찬미를 불러야 신앙이 돈독한 것처럼 생각한다.
교회에서의 찬양하는 음악을 보면 그 교회가 젊은이들을 위해
새로운 시대를 위해 교회의 문을 열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회중으로 예배에 혼연 일체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찬양에 대한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
예배 때의 찬양은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는 경험에 이르게 한다.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잘 조화된 예배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예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 몇몇 미국 교회들을 방문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앤드류스 대학의 PMC 교회와 로마린다에 있는 교회 그리고 풀로리다의 병원 교회였다.
앤드류스와 풀로리다의 교회는 전반부는 전통적인 예배 순서와
후반부는 음악을 강조한 새로운 예배 형태의 순서로 2부 예배를 운영하고 있다.
로마린다의 미국 교회는 새로운 형태로만 예배순서를 운영한다.
교회마다 사용하는 악기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두 형태에 관한 예배는 성서적으로 모두 납득할 만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느 한 형태는 성서적이고 다른 한 형태는 비성서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어느 한 형태는 옳고 다른 형태는 옳지 않다 라는 말이 아니다.
미국 교회의 참석하는 대상을 보면 전통적인 예배에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대부분이고
새로운 형태의 예배는 노인들도 있지만 젊은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위 두 교회를 보면 전통적인 예배 순서보다 새로운 형태에 더 많은 교우들이 참석한다.
젊은이들의 문화와 노인들의 문화 차이를 실감한다.
두드러지게 눈에 띠게 느끼는 것은 악기를 동원하고
복음 성가를 부르는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예배는 우리의 귀에는 시끄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지하고 정열적으로 찬양을 하고 있다.
내 귀에 시끄럽다고 해서 그들의 진지한 예배를 부정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
음악을 인도하는 찬양 팀들은 찬양을 모두 잘 소화하여 목소리로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으로 그리고 eye contact을 통하여 회중과 하나 되어 찬양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배의 분위기가 경직되지 않고 자유로운 것이 좋다.
권위나 의식이나 외모보다는 편안함이 보이는 자유로움이 특징지어진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드리는 예배의 어떤 순서를 빼거나 다른 것을 첨가한다고 해서
신학적이거나 성서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전통과 습관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보수적인 아내나 자유적인 나도
요즈음은 좋은 복음 성가들이 감동을 더 많이 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권위나 의식이나 외모보다 단순하고 자유롭고 편안한 예배가 더 좋아진다.
요즈음의 예배 순서를 보면 다음과 같다.
환영,전주/등단, 송영, 기원, 찬미, 말씀의 화답, 중보기도, 어린이 이야기, 특별찬양, 말씀선포,
헌금 안내 및 기도, 헌금, 찬미, 축도, 화답찬양
얼마나 복잡한 순서인가? 얼마나 의식적예식)인가?
사실은 가만히 보면 찬양, 말씀, 기도의 간단함을 의식적(예식)적으로 벌려 놓았다.
형식보다는 실질적이고, 복잡함보다는 단순하고, 권위적인 것보다는 자유와 편안함이 있는
예배로 개혁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가 섬기는 분이 하나님에서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가 아빠가 되는 친 아버지가 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우리 세대만을 생각하지 말고 우리의 후세를 위한 좋은 예배의 모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2010년 2월 6일 아침
PS; 저의 email이 바뀌어졌습니다. pchung72@gmail.com
정말로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우리에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져야 한다면 우리의 예배순서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순서에 대한 연구가 필요 한데 우리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형제 자매들이 거기에 신경을 쓰고 계신지요
어떤교회에선 예배 순서 위원회가 있어 매순서마다 시간을 들여 순서 진행을 하고 있는교회가 있다합니다
각교회에서 이상적인 순서들을 올려주시면 다른교회에서도 혹 따라하지 않을까 합니다
비지네스하시는 분들은 항상 어떻게 하면 매출을 올릴까 합니다
목사님들이나 장노님들 혹 교회 지도자분들이 좀더 연구하셔서 새로운 순서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정석진 장로님,
항상 생각케 하는 좋은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예배처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예배를 생각할때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여인과 했던 대화를 떠올려 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 "God is spirit, and those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in spirit and truth.", John 4:24, NASB)
과영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무었이고 어떤것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저희 교회의 "예배와 찬양"부를 맡고 있으면서, 매주 찬양곡을 선택할때마다 고민을 하게 됩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려는 마음은 똑같은데, 선호하는 찬양곡은 다 다른것을 보게 됩니다. 같은 노래를 불러도 어떤 성도는 은혜를 받고 참으로 좋은 찬양이었다고 하고, 다른 성도는 노래를 하는데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고 할때, 과연 어떤 찬양곡을 선택하고 어떻게 찬양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가능하면 다양한 곡들을 선택해서 서로가 유익이 되게 하려고 하는데, 많은 시간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예배 형태도 새롭게 시도해 보고, 더 나은 (그야말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찾아 노력하는데,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하는 교회에서 딱 맞는 형태를 찾는것도 쉽지가 않음을 보게 됩니다.
비단 예배 뿐만 아니라 저의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데, 많은 시간속에서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었일까 생각하면 선뜻 답이 나오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저는 가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저의 삶의 목표는 제가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되는것이라고,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온것처럼, 저는 가끔 제가 매트릭스속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들의 삶 밖에 있는 진실이 무었인지 모르면서, 그 진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매트릭스 속의 사람들 처럼 말이빈다.
플리스크안에서 각종 화학물들이 반응하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 원하는 물질들을 만들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무었이 어떻게 이루어 지고 있는가는 알수 없고, 단지 최대한의 추측과 상상으로, 또는 이론만으로 볼수 있는 것처럼, 저의 삶도그렇게 알수 없지 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보려고, 우리의 온갖 지식과 상상, 그리고 이론을 대입해서 나만의 하나님을 보고, 그 하나님이 참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종래에는 그렇게 믿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됩니다.
우리가 할수 있는것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보려고 하고, 만나지지 않은 하나님을 만나려고 애쓰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한테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사도바울이 이야기 했듯이 우리가 지금은 흐릿하게 보지만, 그날이 오면 주님을 대면해서 본다는 말을 믿으면서, 우리의 모든 고민이 그날에 다 풀릴때, 우리 모두가 웃으면서 서로의 진실을 볼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Peace be upon you !
a brother in Ch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