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다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오해(1)

정석진 방 조회 수 1418 추천 수 0 2010.02.28 18:20:46

마르다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오해(1)


오늘은 마르다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마르다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특별한 오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오해를 풀어야겠다.

그들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은 

마리아는 모든 일에 예수님의 무릎에 가까이 앉아 

그의 말씀만 듣기를 좋아하는 여자로 생각하고

마르다는 말씀을 듣기보다는 부엌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로 생각한다.

그래서 마리아는 믿음이 좋고 마르다는 믿음이 부족한 여자로 생각한다.


이제 자세히 그들의 가정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자.

우선 이 가정의 구성원은 막달라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로 세 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세 명의 가족 중에 온전한 사람은 마르다 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르다의 이름의 뜻이 "숙녀"로 "Lady"이다.

나사로도 시름시름 병이 있는 자이고 막달라 마리아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우선 막달라 마리아는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마음이 여리고 정신이 약한 자이다.

성경에 그를 일곱 귀신이 나간 자로 이야기하고 있다.(눅 8장2절)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정신 분열증의 증상을 가지고 있는 환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극적으로 만나 고침을 받았다.

그러나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범죄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다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예수 앞에 끌려오게 되었다.(요8장)

돌에 맞아 죽을 죽음의 갈림길에서 예수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되었고 용서를 받게 되었다.

그러한 인연으로 그녀는 예수를 따라 다니는 여자들의 틈에 끼게 되었다.(눅8:2)


이 가정에서 마르다는 보호자로서 동생과 오라비에 대한 염려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동생을 데리고 있는 마르다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정신과 마음이 약하고 바른 길을 가지 않는 마리아는 언제나 그에게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마리아를 볼 때마다 그가 어디에 있든지 언제 사고칠지 모르는 동생 때문에

마르다는 염려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 가정에 예수는 특별한 존재였다. 

예수가 마리아의 정신병을 고쳐주고 나쁜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 살려주고

그 후 마리아를 예수님의 전도 여행을 따라다니게 함으로.(눅8:2)

예수에 대한 그들 가정의 애정이 극진하였다.

예수께서 그의 가정을 자주 방문하시고 유하시기 때문에

비록 마리아의 전력이 별로 좋지 못할지라도 그나마 이웃에 좋은 관심과 평판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와 아주 가까운 관계로 지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의 가정을 방문한 예수님의 사건을 생각해보자.(눅10:38) 

예수님은 여러 손님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시고 계셨고 마리아도 그 앞에 앉아 있었다.

마르다는 혼자 손님을 대접할 준비로 부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다는 그 일 와중에 언제나 그의 동생 마리아가 신경 쓰인다.

혹시 실수라도 하면 어떨까? 염려하고 있다. 그리고 동생이 자기 곁에서

자기를 도와주면 안심될 것이고 모든 것이 편하게 잘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사실 마리아가 눈치 있고 온전한 여자라면 부엌에 있어야 했다.

우리는 마리아가 신앙이 좋아서 말씀 듣는 것을 부엌에서 일하는 것 보다 더 좋아해서

부엌에서 일하는 것을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의 곁에서 말씀을 듣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마리아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예수님의 주위에는 온통 남자들뿐이었고 마리아가 있어야할 자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께 마리아가 있어야할 곳을 이야기한다.

그는 혼자 손님을 대접하기에 힘에 벅차기도 하였다. 

어쩌면 마리아가 자기의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SOS를 쳤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사실 마르다의 이 이야기는 예수님에게는 합당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가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마리아는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여러 사람의 시선이 한 곳에 몰리게 되었고

이 난처한 자리에 있게 된 마리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 모두는 이 연약한 여자의 과거의 병력과 행동이 좋지 못한 여자라는 알고 있고

그녀가 지금 부엌에 있어야할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일 같지만

얼마 전 바리새인들에게 잡혀 예수 앞에 끌려온 것 같은 시선이 마리아에게 집중되고 있다.

상황은 부드럽지만 공기는 팽팽해졌고 이제 다시 주사위는 예수에게 던져진 것이다.

그 때 예수는 다시 한 번 참으로 위대한 말로 마르다와 손님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마르다에게 염려에서 쉼을 주었고 마리아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막달라 마리아를 세 번째 구원하시는 예수님이시다.


사실 마르다는 분주한 여자였다. 그가 걱정해야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마르다는 마리아를 참으로 사랑하였으나 동생은 언제나 그의 마음에 큰 짐이었다.  

그에 대한 생각은 그에게 만 가지 염려였다.

또한 동네에서 마리아를 향한 따뜻하지 않은 눈길이 그녀를 괴롭혔다.

또한 그의 오빠 나사로의 병약함으로 그가 가정을 지키고 끌고 가는 염려가 

그의 어께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그에게는 쉼이 필요하였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예수께서 마르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계신다.

이제는 네 동생 마리아에 대한 염려와 근심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마리아는 이제 자기의 길을 찾았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결코 예수가 마르다를 꾸짖고 계시는 것이 아니다.

부엌에서 분주히 일하는 마르다의 선택이 마리아보다 못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마르다는 이 사건에서 예수가 얼마나 자기와 자기의 동생을 사랑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후부터 마리아에 대한 걱정과 염려에서 해방되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는 예수님이 마르다를 모든 속박에서 자유함을 주신다.



이 사건은 마르다와 막달라 마리아에게 새로운 비젼을 주었다.

이제 그들에게 오직 한가지 예수를 따르는 일 그의 제자가 되는 일이다.

그 후 마르다와 마리아는 신실히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  to be continued....

2010년 2월 28일

pchung72@gmail.com


댓글 '4'

김균

2010.03.02 03:43:40
*.246.231.191

“이것은 그 여자에게 있어서 순결과 평화의 생애, 하나님께 헌신한 새생애의 시작이 되었다. 이 타락한 영혼을 구원함에 있어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지독한 육체적 질병을 고치시는 것보다 더 큰 이적을 행하셨다. 그분께서는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영적 질병을 고치셨다. 이 회개한 여인은 예수님을 가장 신실하게 따르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자아희생적 사랑과 헌신으로 그 여자는 예수님께서 용서해 주신 은혜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었다”(치료, 89)
===================================================

오래 전에 저희 교회 목사님이 설교하시면서

이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했습니다

내가 나중에 반대했지요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쓴 글을 읽은 기억이 나서 말입니다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라

베다니 마리아입니다

사람들이 베다니 마리아를 향유 부은 여인으로 생각한 것은

성경연구가 아니라 천주교회에서 유래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가 창녀였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그가 창녀로 불리어진 것은 주후 591년  그레고리우스 1세가 부활절 설교를 하면서

눅7장에 등장하는 마리아를 막달라 마리아로 착각하고 선언한 후부터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원래 7귀신 들려서 고생하다가 예수를 만나서 나은 사람이며

그 후 예수를 따르고 물질로 도와 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원래 이름을 부를 적에 연장자부터 부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막달라 마라아가 마르다보다 먼저 불려집니다

(마27:56, 61. 28:1 막15:40  눅 24:10등등)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보다는 어리지만

다른 사람들 보다는 연장자인 것 같습니다

 

일부 성경 학자들이나 소설가들이 각색해 놓은 막달라 마리아는

그가 처녀였고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이며

예수를 사랑한 창녀였다는 소설에 너무 익숙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라고 자주 칭하게 되는 겁니다

나는 그게 완전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Rilke

2010.03.02 07:35:05
*.87.129.30

정석진 장로님,


마르다와 마리아를 재조명하는글 잘 읽었습니다. 장로님의 열린사고, 그리고 이야기속으로 들어가서 깊이 있게 그 내면을 파해치는 해안에 항상 많은 감동과 감사함을 느낍니다. 전에 한번 탕자의 비유에서의 형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쓴것을 언뜻 기억하는데,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는것, 그리고 항시 열려있는 사고를 하는 분을 만난다는 것은 저에겐 커다란 축복으로 느껴집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김균장로님도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김균장로님께서 이야기한 소설은 아마도 "모리스 벤든"목사님의 책을 말하는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는데요. 저도 모리스 벤든의 책과 시대의 소망을 읽고 참으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입니다. 성경에 확실하게 써있지 않은 내용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것은 자칫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그것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것이라면 더욱더 위험하겠지요. 왜내면, 만약에 자기가 감동해서 믿었던것들이 사실에 바탕을 하지 않았고, 그것이 틀릴수도 있음을 깨달은 다면, 그것들은 오히려 더 독이 될수 있겠지요.


좋은 글을 올려주신 정 장로님과 항상 성경을 깊이 연구하시는 김균장로님의 글에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합니다.


피스,

마정구

2010.03.04 17:04:43
*.100.98.200

인물에 대하여 오해하심이 큰 줄로 아룁니다.

저는 요즘에 4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과 주변 인물들을 공부하며 정리하는 중인데요  익명의 신학도 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는 베다니에 살았던 인물이고요 간음해서 현장에 잡혀온 여인의 이름은 알 수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마리아는 막달라(갈릴리 지역)에 살았던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고요 유대지역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베다니에 살았던

 베다니 마리아 입니다.

 그리고 4복음서 모두에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이 나오는 데요  마태, 마가, 요한 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사건은 베다니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사건을 말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6일전에 유대지역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지요.

 그러나 누가 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향유를 붓는 사건은 다른 세 복음서에서 말하는 사건과는 다른 사건입니다.

 누가 복음의 향유 붓는 사건은 어느 밝혀지지 않은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사건으로 갈릴리 가버나움 인근에서

 예수님의 2차 갈릴리 전도 사역때 즉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약1년 6개월 전에 일어난 사건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서 "값비싼 향유를 주께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 받아서" 라고 하는 찬송은 아무런 근거없는

작시자의 추측에서 나온 것일뿐으로 말씀 드립니다.

 장로님의 깊은 고찰과 은혜로운 것은 (예수님의 마음과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의 상황에 견주어 그들을 평안케 하신것) 존중합니다

 그러나 저는 인물의 정확성과 성경이야기의 흐름이 더욱 분명히 장로님의 마음에 있기를 원합니다. 

바다

2010.03.09 18:13:28
*.154.228.69

김균장로님

 

시대의 소망 2권을 읽었더니 귀신들린 마리아나 향유부은 마리아나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나 동일인물로

나와 있었습니다

 

제가 혹 잘못 읽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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