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에 대한 진실 게임(2)

정석진 방 조회 수 1176 추천 수 0 2010.03.10 00:38:07

마리아에 대한 진실 게임(2)


존경하는 김균 장로님, 친구 Rilke 형제 그리고 열성적인 신학도 마정구님의 댓글을 잘 읽었습니다. 제가 쓴 이야기는 약 20년 전에 설교를 한 내용 입니다. 그 때 제게 석 달에 한번 설교를 할 기회가 있어서 한 두 세 개월 준비하고 연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목사님의 설교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 마리아에 대해 댓글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내용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입니다. 댓글을 달기에는 너무 길기 때문에 이곳에서 설명 합니다. 앞으로 한 번 이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기 때문에 부득이 이 문제에 관하여 저의 견해를 적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인물의 정확성에 대한 혼돈과 성경 이야기의 흐름을 오도하는 그러한 글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성경에 보면 마리아에 대하여 많이 나옵니다. 

예수의 모친 마리아,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베다니 마리아,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로마의 기독교인 마리아입니다. 마리아가 너무 많아서 골칫거리입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 마리아가 동일인이냐 아니냐가 오늘 이야기의 이슈입니다.

먼저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하고 제의 견해를 서술하겠습니다.


1. 성경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보면 막달라에 사는 마리아와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는 서로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른 마리아들은 그 마리아를 설명할 때 누구누구의 마리아라고 설명하고 있고 이 두 사람은 지역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는 서울서 공부할 때 묵호에서 온 정석진 이었습니다. 미국에 오니 미국인에게 한국인 Philip(영어 이름)이라는 칭호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앤드류스의 정석진입니다. 그러나 저를 잘 알고 있는 친구는 저를 한 사람으로 보지 서로 다른 사람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마리아가 동일인이라는 가능성이 있는 이유가 있다면 동일인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전설에 대한 생각입니다. 저는 전설이나 신화를 아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설이나 신화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의 상황에 주어진 것을 설명한 것으로 사실을 알 수 없을 때 나타나는 것 입니다. Joseph Campbell등 제가 좋아하는 학자들은 전설과 신화에 대한 가치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진실(진리)을 알지 못할 때 진리(진실)로 가는 문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3. 사실 명확하지 않는 어떤 역사적 사실을 연구할 때 우리가 너무 이 생각은 카토릭의 생각이고 개신교의 생각이니 하고 편견을 갖는 것에 저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지려고 합니다. 가령 전통적으로 카토릭은 동일인으로 개신교는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 입니다. 언제나 open mind를 가지는 것이 저의 태도입니다. 


4. 사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아무리 연구를 한다고 할지라도 이 문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충분한 증거가 나타나 있지 않아 우리들의 용어로 하늘에서 만나 보아야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Wikipedia 백과사전에 보면 기본적이지만 이해에 도움을 주는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주제에 대한 항목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보기에는 진실 게임이라기 보다는 가능성 게임입니다. 제가 동일인 이라는 가능성을 본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입니다.

   

첫째 이유는 시대의 소망에 나오는 화잇 선지의 견해 때문입니다. 화잇 선지는 일곱 귀신들려 치료 받은 막달라 마리아를(눅8:2) 옥합을 깨뜨린 베다니 마리아로 설명하고 있다고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소망에서 베다니 마리아가 일곱 귀신 들린 자였지만 예수가 고쳐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대의 소망에 베다니 마리아가 일곱 귀신 들린 여자라고 말하지만 막달라 마리아라고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곱 귀신 들린 자가 마리아 하나 뿐이 아닐 수도 있지만 옥합을 깨뜨린 베다니 마리아를 일곱 귀신에서 고쳐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연히도 막달라 마리아도 베다니 마리아도 둘 다 일곱 귀신 들렸다고 합니다. 저는 동일인으로 화잇 선지의 글을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일곱 귀신 들린 여자로 언급된 것은 막달라 마리아 하나뿐이기에 지금 화잇 선지는 막달라 마리아를 생각에 두고 이야기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능성의 문제 입니다. 만약에 동일인이라면 화잇 선지의 글은 어느 주석보다도 참으로 놀라운 insight를 준다고 생각되며 은혜가 큽니다. 지금 여행 중이기 때문에 한글 번역판을 인용할 수 없어 그냥 영어로 화잇 선지의 글을 올렸습니다. 페이지가 혹시 하나 앞인지 뒤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Mary had been looked upon as a great sinner, but Christ knew the circumstances that had shaped her life. He might have extinguished every spark of hope in her soul, but He did not. It was He who had lifted her from despair and ruin. Seven times she had heard His rebuke of the demons that controlled her heart and mind. She had heard His strong cries to the Father in her behalf. She knew how offensive is sin to His Unsullied purity, and in His strength she had overcome." (영문 567쪽)


둘째 이유는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자와 막달라 마리아나 베다니 마리아와의 관계 입니다. 그 때 연구할 때 전설인지 전통인지 화잇 선지의 암시였는지 지금 솔직히 기억이 없어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그 때 설교를 준비할 때 그렇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지금 그러한 것을 다시 연구하기에는 시간이 없고 그냥 시대의 소망에 나오는 화잇 선지의 견해를 잠간 인용하여 설명하고자 합니다. 적어도 베다니 마리아는 적어도 그 정도의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앞의 인용 첫 부분과 아래 인용의 시몬과 예수님의 마리아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 적어도 이 여자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죄인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가령 예수가 그를 만질 수도 없는 죄인이라고 생각한 것과 베다니 마리아로 그러한 죄를 범하게 한 시몬의 극심한 죄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을 생각할 때 어떤 전통에서 그가 막달라 마리아라고 말한 것과 제가 여기에서 베다니 마리아로 연결하는 것에 대해 저는 거부감이 없습니다. 베다니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서 치료 받고 간음이나 그 이상의 무엇인지 모르지만 엄청난 죄에서 용서받은 여인 입니다. 정확한 source를 언급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아마도 마정구님이 찾아 연구해야할 것 같다. 

"

Simon th host had been influenced by the criticism of Judas upon Mary's gift, and he was surprised at the conduct of Jesus. His Pharisaic pride was offended. He knew that many of guests were looking upon Christ with distrust and displeasure. Simon said in his heart, "This man, if He were a prophet, would have known who and what manner of woman this is that toucheth Him: for she is a sinner."

"As did Nathan with David, Christ concealed His home thrust under the veil of a parable. He threw upon His host the burden of pronouncing sentence upon himself. Simon had led into sin the woman he now despised." (영문 566쪽)


그리고 간음한 여자에 대한 화잇 선지의 설명을 인용합니다. 예수를 열렬히 따르는 여인 중에 하나에는 성경의 기록에는 마리아가 유일하게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This was to her the beginning of a new life, a life of purity and peace, devoted to the service of God. In the uplifting of this fallen soul. Jesus performed a greater miracle than in healing the most grievous physical disease; He cured the spiritual malady which is unto death everlasting. This penitent woman became one of His most steadfast followers. With self-sacrificing love and devotion she repaid His forgiving mercy."(영문 462쪽)


마정구님의 댓글에서 누가복음에서 죄인으로 나타나는 여인은 다른 여자로 생각하신다고 하셨는데 카토릭에서는 하나로 개신교에서는 다른 여자로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성서학자는 바로 누가복음의 사건 앞에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에 그녀를 막달라 마리아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셋째 이유는 이 문제는 진실을 가리는 문제이라기 보다는 가능성의 문제이기에 몇 가지의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됩니다. 첫째는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처음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으로 예수를 따라 다니고 마지막에 예수의 십자가와 장사 그리고 부활의 증인으로 그 후 많은 외경에 언급됩니다. 그녀를 "사도에게 보낸 사도"이며 첫 사도라고도 불리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 그 중간 기간에 어떻게 예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사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쩌면 낙하산 인사와도 같습니다. 베다니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녀는 참으로 어두운 배경에서 해방되고 예수를 따르며 성경에 주옥같은 이야기들로 예수의 사랑을 느끼게 한 그녀가 예수의 죽음과 그 후에 성경에 아무 기록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은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남은 것에 비교하면 무언가 모순적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진실 공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가능성을 통해 본다면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일곱 귀신들리고 여자로서 가장 큰 죄인인 베다니 마리아의 위대한 여인의 삶을 다시 재조명하는 것은 그녀와 같은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고 싶은 작은 나의 마음일 뿐입니다.

이제 다음에 이 이야기의 제 3편을 가능성에 기초를 둔 상상력으로 쓰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2010년 3월 10일 한국에서


추신: 김균 장로님, 사실 급한 가족 문제로 한국에 나와 배낭여행 식으로 혼자 며칠 다니다 영남 학교를 지나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선교 백주년을 기념하는 손흥조 선생님의 기념비에  새겨진 장로님의 시를 읽고 아주 감회가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기를 기도 합니다.


댓글 '5'

Rilke

2010.03.10 07:33:36
*.87.129.30

정석진 장로님,


이글의 주제를 한마디로 한다면, "가능성" 또는 "Open mind"가 아닐까 싶네요. 영어로 하며는, "It is possible, It seems, maybe, or probably"정도가 아닐까 싶은데요.


제가 매주 보고서를 쓰는데, 실험한 결과를 해석할때 많이 쓰는 단어가 바로 위에 언급한 영어 단어들입니다.  Scientist 로 산다는것은 그리고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가능성"과 "Open Mind"를 가지고 "진실 또는 진리"를 추구 한다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느끼는것은 모르는것들이 너무나 많고, 내가 아는것들도 "그것이 과연 그럴까"라는 질문을 수시로 하게 됩니다.


성경은 다를줄 알았는데, 요즘 생각되는것은 성경의 많은 것들이 "과학"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것들이 또는 확실치 않은것들이 참으로 많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면서 항시 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두라고 하지요. 중요한것은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거나 신앙이 무너지는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마치 제가 의심하는 많은 과학의 문제들로 인하여 과학이 무너지거나 저의 과학에 대한 믿음이 없어 지지 않은 것 처럼 말이지요.


근데, 중요한것은 우리들은 언어의 세계에 또는 대화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아무리 이렇게 믿는다고 해도, 내가 하는 표현이 다른사람에게는 다른뜻으로 전달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글을 쓸때는 내 뜻을 펼치는것 못지 않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읽고 해석할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로님이 생각하는 마리아에 대한 깊은 고찰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편의 글을 통하여 깨달을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를 비롯한 여러분들이 장로님의 글에 답글을 썼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는 다 비슷한 사고를 그리고 비슷한 신앙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장로님께서 시대의 소망에 나온 글로 논리를 편것은 의외입니다. 이지 화잇의 글들과 그의 대한 생각에 대해서는, 저는 김균장로님 라인이라서 말이죠.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서 장로님의 다음글을 기다리겠습니다.


장로님의 글들을 통하여 많은것을 배우고, 많은 생각을 할수 있어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다

2010.03.10 15:32:19
*.154.228.69

릴케님

저는 화잇부인의 글을 읽는데 있어서 어느 정도는 김균장로님의 견해를 지지합니다

 

영감적인 것과 비영감적인 것을 구별하는 것 (혹자는 사안에 따라 아전인수라 하겠지만)

 

그러나 이 마리아의 견해는 그대로 믿고 싶습니다

김균

2010.03.10 17:34:40
*.246.231.191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막 14:3)

 

"문둥이 시몬은 막달라 마리아의 삼촌이었다

그런데 이 문둥이 시몬이 조카인 마리아를 창녀로 부려 먹었다"

 

소설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베다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를 같은 사람으로 만든 사람의 소설입니다

한 번 소설이 되면

다른 것도 소설이 됩니다

 

이더 샤임의 책에서 60%를 인용했다고 주장하는 시대의 소망이 있습니다

만약 60%를 인용한 것이 맞다면

그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겁니다


 

김균

2010.03.10 17:37:26
*.246.231.191

정장로님

손 흥조님의 기념비를 보셨군요

앞뒤 문장 모두 제가 적은 겁니다

그리고 옆에 합회장이름만 빼고-교우일동이라 적었는데-

내가 적었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김균

2010.03.10 17:39:43
*.246.231.191

바다님

조사심판에 대하여

영감과 비영감에 대한 글을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말 조사심판이 영감에 대한 즉 계시에 대한 기록이었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엘렌이 28개 교리에 대하여 먼저 제안한 부분이 하나라도 있나 하는 것 말입니다

언제나 뒷북치고 다닌 이야기뿐이더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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