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무소유의 오만가지 생각들
소유한다는 것은 그 소유에 대해 구속 받는다는 것이다.
적게 소유하면 조금 구속함을 받고 많이 소유하면 많이 구속함을 받는다.
재물을 소유하게 되면 재물에 소유함을 당하게 되고
시간을 소유하게 되면 시간에 소유함을 당하게 되고
명예를 소유하게 되면 명예가 우리를 소유하게 된다.
지식을 소유하게 되면 지식이 우리를 소유하게 되고
철학을 소유하게 되면 철학이 우리를 소유하게 되고
종교를 소유하게 되면 종교가 우리를 소유하게 된다.
인간의 존재는 소유를 피할 수 없고 소유의 종이 된다.
왜냐하면 소유는 탐심을 일으키고
탐심은 우리를 소유의 종으로 전락시킨다.
그런데 인간에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소유하지 않기를 선택한 자요. 소유하기로 선택한 자이다.
전자를 성자라 부르고 후자를 범인이라 부른다.
성자는 소유와 싸워 무소유를 선택하고
범인은 소유를 즐기며 탐심을 사랑한다.
성자의 유혹은 패배를 인식하지 못하고 승리로 착각하는 것이고
범인의 유혹은 탐심을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소유를 선택한 자는 산이나 수도원으로 들어가고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을 낳지 않는다.
모든 얽매이는 것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소유의 유혹에서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소유의 신은 그를 그냥 나두지 않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그래서 죽을 때에도 소유를 무소유로 해달라고 애원한다.
소유를 선택한 자는 자식으로 태어나서 생을 준 자들에게 소유되고
지식을 탐구하여 학위와 명예에 소유되고
결혼하여 아내와 남편에게 소유함을 당하고
자식을 낳아 그들에게 소유함을 당하고
돈을 벌며, 집을 사고, 좋은 차를 사며 그들의 종이 되어 인생을 산다.
소유의 신은 그들을 그냥 나두지 않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그래서 죽을 때에는 소유의 집착으로 무소유에 절망하고 눈을 감는다.
오늘 우리는 무소유를 택하고 인생을 산 법정 스님을 애도한다.
삼가 그에게 조의를 보낸다.
그는 우리에게 무소유의 의미를 가르쳐 주고
소유가 주는 탐심의 허상을 가르쳐 준다.
불교에서는 스님이 되어 천주교에서는 신부나 수녀가 되어
수행과 봉사를 통하여 무소유의 의미를 삶에서 실천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한 스님의 강설을 들었다.
부처는 신이 아니고 인간으로 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불교는 철학과 같이 인간의 힘으로 진리와 도를 깨닫는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그 도의 극치를 무소유의 의미로 우리에게 실천하고 보여 주었다.
친구 중에 수녀가 있다. 그에게는 소유한 것이 두 가방뿐이란다.
언제나 수녀 복을 입어야 하니 속 옷 이외에는 의복이 필요 없고
거할 곳과 먹을 것이 제공되기 때문에 의식주의 문제가 필요 없고
자식들에 대한 염려가 없다.
스님과 신부와 수녀는 무소유의 중요한 의미를 깨닫고 도를 그 곳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 땅의 주인공은 아닌 것 같다.
가끔 그들은 선지자처럼, 소크라테스의 gadfly처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소유가 주는 탐심의 허상을 깨우쳐 준다.
그러나 나는 소유하기로 선택한 자이다.
그리고 무소유 보다 소유에 의미를 둔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하도록 창조되었고
결혼을 하고, 자식들을 낳고 땅에 번성하며
땅을 소유하고(정복) 다스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나는 무소유의 의미는 소유에서 시작해야한다고 믿는다.
이런 소유의 삶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하나님이 복 주신 소유의 삶으로
인생의 길을 택한 자들은 복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에서,
자식과의 관계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거짓과 탐심의 허상과 싸우는 범인들은
하나님께 복 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이 땅의 주인공은 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범인인 백성들이다.
그 백성 중에는 이름 없이 인생을 성실하게 살다간 박 집사님이 있고
자식을 위하여 평생을 헌신한 부모님이 있고
전 재산을 불쌍한 이웃을 위해 사회에 희사한 할머니가 있고
암 투병으로 고생하는 동생을 위해 몸이 부서지라 간호하는 언니도 있다.
이 소유의 삶에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마음에 남아 있지 않으면
탐심이 그 소유의 삶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소유의 삶에 크나큰 문제가 있다.
범인의 소유의 삶은 이러한 유혹을 물리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소유의 삶을 부정할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소유를 택한 범인이여! 절망하지 말자!
탐심과 거짓이 우리를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유혹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우리들은
성실하게 사랑하며 이 땅에 충만하고 이 땅을 정복하여 소유한 것들을 잘 다스리자.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후손에게 보다 나은 이 땅을 물려주자.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2,33)
2010년 3월 20일 안식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