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안수-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여성에게 안수를 주어야 하는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에 오늘날 우리의 신앙의 삶을
성서시대(구약과 신약)의 문화의 잣대로 요구하면서 산다면
어떠한 모순의 삶을 우리가 살게 될 것일까?
최근 게시판에 여자 안수 문제로 뜨거운 논쟁이 일어났다.
성경에 나타나는 사도 바울의 여성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되었다.
고린도 전서 11장1-16절,(여자가 머리를 가리워야 하는 이유)
14장34절 35절(여자는 교회에서 말할 권리가 없고 남편에게 물어보도록 하고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수치)
디모데 전서 2장8-15절(여자는 침묵을 지켜야 하고 아이를 낳고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면 구원을 받는다)
사실 위 성경 절들은 여자의 안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단지 하와가 죄를 먼저 지었기 때문에
죄의 벌로 여성들은 교회에서 입 다물고 있으라는 것이다.
본 교회 성경 주석 Encyclopedia에 보면
여자의 안수 문제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없지만
전통적으로 여자에게 안수를 준 적이 없다고 한다.
사실 위 성경 절들에 대한 문제점들을 정리하여 준비하였으나
그러한 일들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이곳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에 어떠한 대답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누가복음 13장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18년 동안 귀신들린 여자를 고치셨다.
그 일로 회당장(교회 지도자)과 논쟁이 붙었다.
회당자의 의견은 성서적이었다.
그는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라고 화를 내며 말하였다.
예수가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을 반대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그들이 자기들의 소나 나귀들에 하는 것을 예를 들면서 반박하신다.
"그러면 십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라고 그 합당성을 말씀하셨다.
그 때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가 이 성경절을 여성 안수에 인용한 것은
예수의 똑 같은 정신이 여성 안수 문제에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하려고 한다.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한 구원의 복음이, 그의 하나남 왕국의 복음이
인종의 차별과 남성과 여성의 차별과 노예와 자유인의 차별과 양반과 상놈의 차별과
빈부의 차별 등의 인간 차별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
만약에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예수가 죽음으로 구원을 선포한 이 은혜의 왕국에서
그의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하나의 현인의 죽음으로 끝나 버린다.
그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 미국보다도 못하는 의미가 없는 나라이다.
그가 이 땅에서 선포한 복음은
십팔년 동안 사단의 매임에 있던 귀신들린 여자보다도 더 매임을 받은
아담의 죄의 저주에서(남자들의 죄의 벌) 자유를 선포한 복음이고
하와의 죄의 저주에서(여자들의 죄의 벌) 자유를 선포한 복음이다.
예수의 이 땅의 삶을 보라
그에게는 인종의 차별이 없었고
남녀의 차별이 없었고
인간이 전통으로 만들어낸 아무 차별 없는 나라를 선포하고 있다.
예수의 12제자가 모두 남자라고
예수로 여성 차별의 근원으로 이야기 하지 말라.
그것은 예수의 신됨과 인간됨을 모욕하는 것이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 하여야 한다.
아마도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러한 계시를 예수의 왕국에서 보았을 것이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3:28)
이 좋은 부활절 계절에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한 하나님의 왕국에 감사를 보내자.
2010년 4월 3일 안식일 아침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