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XX 할머니와 나-2-
어느 안식일 오후에 연변의 용정교회를 갔다
날씨가 추워서 교인들이 예배 후에 방 가운데 만든 솥을 주위에 모여있었다
나도 추워서 그들과 함께 불을 쪼이고 있었는데
옆방에서 권목사님이 날 부르신다
무슨 일인지 하고 그곳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한 분이 두 분 목사님과 함께 계셨다
권 목사님이 내게 소개하신다
그분이 바로 성경 할머니셨다
50년간 북한에서 성경을 배에 차고 살았던 그분이었다
이분에 대한 이야기는 재림신문에서 한 번 취재를 했고
그래서 아는 분들은 잘 알고 계시고
그리고 지금은 태릉교회를 다니시는데 몸이 안 좋아서 어쩌는지 모르겠다
그날 그 추운 방에서 기도하면서 그분 생각으로 얼마나 운줄 모른다
눈물이 빗물처럼 그 불쌍한 할머니 생각으로 흘러 넘쳤다
그리고 몇 달이 흘렀는데
행정위원회를 하면서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연합회장님이 날보고 이러신다
“그 할머니 한국으로 데려 왔으면 좋겠는데요”
그리고는 대번에 “ 아니요 난 절대로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하고 웃는다
목사님의 말뜻을 내가 못 알아들을 사람인가?
나도 웃고 말았다
어느 날 중국을 가서 그곳의 내가 아는 공무원을 만났다
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구했다
여러 번 권하고 도움을 구하고 그러기를 몇 차례
여러 사람을 소개 받고 그래서 모든 서류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 할머니 연세가 있어서 우리가 만든 탈주로를 이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식으로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를 태워서 모셔 오려고 한 것이다
출생증명서부터 여권까지 그리고 한국 입국 비자까지 만들었다
이 일을 할 때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신 봉평 교회 이 석진장로님은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먼저 가셨다
너무 아까운 분이신데 말이다
한 번은 행정위원회가 길어져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목사님 지금 할머니 모시고 올 서류가 다 되어 갑니다”
“아 장로님 내가 안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뜻을 안다. 만약 문제가 생겨서 재단의 이름을 들먹이게 되면
중국과 북방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류를 다 만들고 날짜를 잡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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