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차원 인생과 성경과 예수

김명호 방 조회 수 984 추천 수 0 2009.02.06 18:19:30

삼차원 인생과 성경과 예수

 

딸이 그림 공부를 하러 다닌다.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 비록 가정생활이 바빠도 아이들 치다꺼리를 하고 틈을 낼 수 있는 시간에 소질 살리는 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는가.

얼마동안 구상화를 그리는데, 그림 보는 데는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내 눈에는 꽤나 잘 그린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추상화를 배운다며 그린 것들을 보니 그게 그림인지 그냥 낙서한 것인지 장난을 친 것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얘야, 이게 그림이니? 나는 이런 그림 맘에 안 들어. 구상화를 잘 그려놓으면 얼마나 좋니, 이게 뭐야.”

“아빠는 참, 구상화를 그릴 줄 알아야 추상화를 그릴 수 있단 말예요.”

“말인즉 구상화보다 윗 단계라는 말인데 이게 무엇이냐?”

“추상화는요, 감상하는 사람이 자기 감상 판단대로 보는거래요. 화가의 의도를 꼭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래요.”

“그 말도 어렵구나.”

 

어떤 물리학을 한 교수가 피카소 그림을 성경에 비하여 이야기 한 것을 읽어보았다. 참 얼마나 멋진 접근인지 사람이 홀딱 반할 논리처럼 보였다.

피카소가 그린 인물화를 보고 사람이 정말 그렇게 생겼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겠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피카소가 예술적 직관에 의하여 그린 것이기 때문에 그의 직관을 이해하지 않고 보이는 그림만 가지고 사람이 그렇게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그 그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담하는 신부님은 3차원 4차원 5차원 이야기를 하면서 맞장구를 친다. 인간은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데, 4차원 5차원 6차원 그 이상의 차원으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글자의 뜻만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아주 오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듯한 논리이다.

추상화는 감상하는 사람이 자기 감상 판단대로 보는 것이라는 말에 빗대어 생각하면 성경은 보는 사람이 자기 이해로 해석하는 책이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기록된 문자와 문장 그대로 그 의미를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치는 담론인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담론을 재바르게 성경에 대한 자기 사상에 접목시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성경은 누구를 위하여 기록한 책인가?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3차원적으로 읽어도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뜻을 알 수 있도록 기록하여 준 책이 아닌가? 3차원 세계에 살고 있는 죄인 인생들이 읽고 구원을 받으라고 기록하여 준 책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3차원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 그 책을 읽고 어떻게 깨달아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나는 3차원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피카소의 그림을 3차원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피카소의 추상화를 피카소의 의도대로 이해했다 해도 그것은 역시 3차원의 이해 이상이 아닐 것이다. 창세기의 기록을 문자대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의도대로 해석을 한다고 해도 역시 3차원 세계에 사는 인간이 해석하기 때문에 3차원 이상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 정직한 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대로라면 인간 자체가 3차원적 존재이기 때문에 3차원 이상의 세계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3차원 인생이 차원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이해한다는 것도 이해 안 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추상화 감상법대로 자기 감상으로 하나님의말씀을 해석하는 것일 뿐일 것이다.

3차원적으로 이해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기록을 문자대로 이해하는 것이고 4차원적으로 이해하면 진화론이 된다는 말인가. 3차원적 인생인 나는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는 담론이다.

하나님은 3차원적인 인생들이 이해하고 깨달으라고 3차원의 글자와 문장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서 바로 3차원적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차원을 초월하신 그 하나님이 3차원적 존재인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 왜냐하면 인간이 이해하고 믿고 따르며 깨닫고 구원을 얻어 영생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서이다.

구주 예수님은 근본이 하나님이시다(빌2:6). 그런데 사람이 되어 오셨다. 모든 차원을 초월한 자리에서 이 인생을 초월한 차원으로 오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당신께서 친히 3차원 인생으로 오셨다. 이 3차원 세상에 사시면서 3차원 인생들과 어깨를 비비고 다니시며 그들에게 3차원적 언어로 말씀하시고 깨닫도록 하셨다.

그래서 성경은 3차원적 사상으로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으며, 3차원적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기록하신 것이다. 기록한 문자대로 하나님은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 하루씩 6일 동안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은 기독교는 성경을 믿는 기독교가 아니며, 여호와라 이름 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3차원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이성과 해석을 믿는 종교이다. 기독교의 성경을 들고 성경의 하나님과 예수 이름을 불러도 그들은 우상숭배 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 우상은 인간의 이성과 해석이라는 우상이다.

참 애석하게도 오늘날 기독교는 사람이 해석한 예수라는 우상과 사람이 해석한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 같다. 그 이름이 하나님이고 예수라도 성경을 그대로 받아 믿지 않으면 그들의 하나님과 예수는 이름만 같을 뿐 우상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예수를 다른 예수라고 기록하였다(고후11:4).

아마 이런 이해를 3차원적 이해라고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들은 더 높은 차원으로 이해하도록 두고 나는 그냥 3차원적으로 이해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래서 사람이 짐승의 후예가 된들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나는 미련해서 성경의 기록을 기록한 말씀 그대로 믿는다. 성경을 이해하는 것도 성경이 성경을 풀이한 그 한도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것을 3차원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성경은 분명히 경고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하지 말라고(신4:2). 가감이라는 것은 성경말씀에 다른 내용을 보태어 쓰는 것을 뜻하는 말만이 아닐 것이다. 성경 스스로가 풀이하는 것 이상으로 풀이하고 또 축소해서 풀이하는 것도 가감이 될 것이다. 성경은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말한다(고전4:6).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교만이라고 지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똑똑하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만일 것이다.

 

지금 우리교회 안에도 하나님보다 더 똑똑한 인물들이 아주 많은 것 같다. 그들도 성경을 4차원 5차원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하는 것 같다. 모든 차원을 초월해 계시던 그분이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신 사실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그분이 왜 그렇게 했는지를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이 미련한 사람들을 구원하여 그 영원한 곳에 함께 있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미련한 것을 탓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미련하신 예수, 그런 미련한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 예수를 성경에 기록한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래서 미련한 자가 성경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 같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신다(고전1:26-28).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예수님만이 나의 의와 구원과 지혜와 거룩함이라고(고전1:30) 믿는 미련한 자리에 그냥 서 있는 이 행복을 인하여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이것은 3차원적인 인생인 나의 믿음이다.

2009년 2월 6일(금) 6:38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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