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야고보의 주장은 충돌인가, 아니면 상호 보완인가.

 

성경의 종교와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부활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롬4:17).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하나님의 계시를 믿지 않으면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 수 없다. 즉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여호와라 이름 하신 하나님이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은 전적으로 믿음의 결과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도 믿음으로 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눅24:25,26).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 제자들이 선지자들의 말한 것, 곧 성경의 기록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주셨을 때 성경의 기록을 믿는 믿음의 눈이 그들에게 열린 것이다. 그제사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믿음으로 안 것이다.

성경은 여호와라 이름 하신 하나님이 창조주시며 부활의 주님이신 것을 믿을 수 있도록 증거하신다. 그것은 창조의 결과인 천연계와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로 나타내셨다. 이 증거를 믿을 때 그제야 진정으로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분이 행하신 것들을 믿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19,20)

성경은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예수를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임을 명백히 제시한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17:31).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15:17,18).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예수의 부활을 믿을 때 믿는 사람이 예수의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3-25).

아브라함은 창조와 부활의 하나님을 믿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롬4:17).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주께서 존재와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활동할 수 있다. 만일 창조주가 창조해주지 않았으면 그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창조했다는 사실은 그것을 믿음으로 알 뿐이다. 동시에 죽은 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죽은 자는 생명이신 분이 그를 살려주실 때만 그 생명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 창조와 부활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행위이다. 사람은 그것을 믿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것을 믿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의로 여기신다. 그래서 의와 구원은 다 하나님의 창조라고 성경은 계시한다.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같이 듣게 할지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사45:8).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신 재창조 곧 부활의 생명을 얻으면 의를 얻는 것이며 그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 그때는 그 사람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곧 하나님의 의가 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

이렇게 믿음으로 부활의 생명 곧 의를 얻으면 그 생명이 우리를 생활하게 한다. 그것이 믿음으로 행하는 행함이다. 이 생명이 없으면 행함이 나올 수 없다.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행17:28). 믿음과 행함은 생명과 생활의 관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6:4).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성경적 실상을 알아서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했으면 좋겠다. 바울과 야고보는 이 사실을 잘 알고 그렇게 기록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6). 야고보도 바도 생명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이 있으면 행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행하지 않는 믿음이란 생명이 없는 것이며 그것은 성경이 계시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을 믿음으로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되는 것이고, 그 생명으로 생활하는 것이 행함이며, 그것이 바로 성화이다. 의와 성화나 믿음와 행함은 결국 같은 사실을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바울과 야고보는 결국 똑같은 사실을 각각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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