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김명호 방 조회 수 1299 추천 수 0 2009.02.18 11:36:55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이것은 찬미가 가사의 일절이다. 이렇게 쓰면 주어와 술어가 문법에 맞지 않는다. “믿는 것은”이라고 했기 때문에 “... 때문이다”, 또는 “받은 증거 많음일세.” 라고 해야 맞다. 그래서 찬미가에서는 “받은 증거 큼일세.”라고 문법에 맞게 했으나, 이 찬미 가사가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 문법적으로야 어떻게 되었든지 이 찬미가가 나타내고자하는 뜻은, 예수를 믿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증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찬미를 부를 때마다, 또는 이 찬미의 가사를 생각할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가 예수를 믿을 수 있도록 받은 많은 증거가 무엇인가? 누가 나에게 ‘당신 예수를 믿는 증거가 무엇이요?’라고 물으면 무어라고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얻은 증거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진지하게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여러 가지 대답을 생각해보았다. 소위 방언 은사를 받은 것도 아니고, 신유로 난치병에서 고침을 받은 경험도 아니고, 가난했는데 예수를 믿고 부자가 된 일도 없고, 그러니까 무엇을 예수 믿도록 된 많은 증거라고 대답할 것인가? 독자는 어떤가? 다른 사람이 묻는 것은 두고, 스스로 어떤 대답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부모님이 예수를 믿었으니까 부모님 등에 업혀 예배당에 다닌 것이 그냥 예수를 믿게 된 직접적인 계기일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모태 교인인 것이다. 자라나면서 한 번도 예수 안 믿는 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다. 그냥 믿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 찬미를 부르면서 어느 날 문득 내가 예수 믿도록 받은 많은 증거가 무엇인가라고 진지하게 묻게 된 것이다. 이 질문을 나에게 던졌을 때 당장 ‘이것 때문이다’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과연 어떤 대답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진솔하게 생각하는 중에, 내가 얻은 대답은 이것이었다.

[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진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의심을 하려면 얼마든지 의심을 할 것이며, 희한한 이야기들을 찾아내어 공격하고 경멸하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들의 말대로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바벨론 창조 신화를 유대인들이 자기들 민족 종교 정서에 맞게 각색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말하든지, 수메르 신화에서 사람 창조 이야기나 에덴동산 이야기를 차용했다든지 공격할 수 있는 자료를 찾으며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70년을 살았으니까, 이스라엘보다 훨씬 문명이 발달한 바벨론에서 그들이 문화적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이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에게 문화적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 드는 일이 아니겠는가. 문화는 문명국에서 미개국으로 흘러가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수메르 문화도 같은 맥락으로 말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이스라엘의 성소도 애굽 신전 구조와 같으니, 430년이나 애굽에서 종살이한 그들이 신전을 지을 때 그 구조를 모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이해일 것이다.

이런 모든 주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성경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시의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이런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그들의 사상과 정서에 맞도록 각색하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며 여호와 종교를 창설했다고 말하면서 어떤 신학자의 말대로 여호와는 이스라엘 씨족의 씨족신일 뿐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성경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라 이름 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시의 말씀으로 믿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증거인가. 맹신이라고 공격해도 괜찮다. 성경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믿고 따를 수 있는 성경이 제시하는 합리적인 논리를 나는 믿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이런 공격을 하면서 또 이런 공격에 성경이 절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증거를 나 스스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 말한 이런 주장을 듣고 읽으면서 성경의 계시를 근거로 하여 나는 그 역(逆)을 생각한다.

우주에 스스로 계신 분은 그 이름을 여호와라고 선포하신 하나님뿐이시다. 스스로 계시기 때문에 그 이름을 여호와라고 칭할 수 있다. 그래서 그분은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5)고 선언할 수 있다. 그분이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셨다. 물로 사람도 창조하시고 천사도 창조하셨다. 사람이나 천사는 스스로 있고 싶어 있게 된 존재가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있게 하시고 싶어서 있게 했기 때문에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의 존재를 유지할 수 없는 존재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를 바르게 유지하지 않으면 자기의 존재의 정체도 모르고 자기 존재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도 없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4:7). 그래서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행17:28)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의 머리이시며 처음이시며 시작이시다. 우주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시작은 그분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바벨론 신화이든지 수메르 신화이든지 애굽의 신전이든지 그 근원은 근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

사람이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을 대적하기로 굳게 작정한 피조물인 우두머리 천사가 세상을 장악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선물들을(약1:17) 자기의 달성할 수 없는 그 야망을 위하여 변형시켜서 선수(先手)를 치되 자기의 하수인이 된 사람들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변형시켜 왔다. 지금도 그는 성경의 사상을 변경시키고 있다. 많은 학자들을 통하여, 많은 목사들을 통하여, 많은 유식한 교인들을 통하여 그렇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분별하기 힘 든다. 그처럼 천사들도 우두머리 천사가 그렇게 하니까 그의 주장을 분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사단이 된 그 천사는 하나님의 것을 본 것이 전부이다. 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없다. 그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원천적인 것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을 변조하여, 사단을 인하여 범죄하고 타락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모든 제도와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어서 사단의 세력, 곧 사망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옮겨올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신 모든 계시의 핵심 사상들을 다 변조하여 선수를 쳐서 얼른 얼른 세상 여기 저기 늘어놓은 것이다. 세상은 사단의 하수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문화로 만들고 맹수 같은 폭력과 힘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였다. 또 교묘한 이론과 그럴듯한 사상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고 부인하게 하며, 성경의 진리를 기막히게 왜곡시켰다.

하나님은 세상이 사단의 계교와 암시에 따라 그렇게 할 것을 다 아셨으나, 자기 때에 자기 일을 하신 것이다. 세상의 시간적 순서로 세상의 문명국들이 먼저 행한 것 같아 보이는 것들도 그 근원은 다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런 것들의 근원이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께 있었다고 계시한다.

성경의 이런 계시를 그대로 믿는 나는 세상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바벨론 신화나 수메르 신화나 애굽 신화 등이 이스라엘의 성경보다 먼저 있었고, 이스라엘이 그들의 문화를 수입하여 자기들의 입맛에 맞도록 각색했다는 주장을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역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것은 태초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이 세상 어디에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다 인식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단은 그것을 이용하여 그들 민족의 정서를 따라 그런 신화 문화를 만들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들이 성경 기록보다 먼저 있었다 해도 그 오리지널은 성경의 내용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렇게 철저히 성경을 믿는다. 세상 시간으로 본 문화가 어땠든지 성경의 기록된 내용이 가장 근본이라고 믿는다. 어떤 사람 말대로 맹신인지 모른다. 그렇게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것이 조금도 의심 없이 철저히 믿어지니 이것이야 말로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큼일세”가 아닌가. 이것이 내가 예수를 믿는 가장 크고 많은 증거라고 고백한다. 정말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가 엄청나다. 성경 그것이야말로 내 신앙의 전부이다. 거기서 나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구주 예수님을 만나며 나를 이렇게 인도하시는 성령을 만난다. 얼마나 큰 복인가. 얼마나 큰 증거인가. 또 다른 증거가 필요한 것인가.

나는 성경이 절대 정확무오 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임을 믿으며, 그렇게 믿어지는 그것이 나의 믿음의 엄청나게 큰 증거임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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