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재림교인이 되었는데

김명호 방 조회 수 1294 추천 수 0 2009.03.03 06:17:37
 

나는 이렇게 재림 교인이 되었는데

 

당시 나는 대구에 있는 장로회 신학교 학생이었다.

내가 다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어느 교회에 어떤 분이 나를 신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장학금을 마련해 주었고, 교회에서는 그렇게 나를 신학교에 보냈었다.

내가 학교를 가지 못할 사정으로 집에 있다가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백부님이나 숙부님이나 사촌들이 다 기뻐했다.

삼 대째 장로교 집안에서 아직 목사가 한 사람도 배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조카가, 사촌이 집안의 처음 목회자가 될 수 있는 첫 발을 내어디뎠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나는 당시 다니던 교회의 유년주일학교 교사이면서 총무로 일하고 있었다.

유년주일학교가 마치고 교회 예배를 시작하기 전 쉬는 시간에, 유년주일학교 교장인 박 집사님이 나무 그늘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별로 대수롭지도 않게 한 마디 내어뱉었다.

“명호, 이것 생각해 봤나?”

“예? 뭔데요?”

“성경의 안식일과 오늘날 교회의 주일이 어떻게 다른지 말이네.”

  박 집사님은 나에게는 부친벌이 되는 분이다. 그의 맏아들이 나와 같은 학년으로 학교에 함께 다녔었다. 그런 분이 느닷없이, 그것도 아주 수월한 표현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예? 주일이 안식일 아닙니까?”

“글쎄, 나도 그렇게 알았었는데, 그것이 아니야. 성경의 안식일은 제 칠일이라고 했거든. 그런데 주일은 일주일 중에 첫째 날이지 제 칠일이 아니란 말이다. 성경의 제 칠일은 오늘날 토요일이 맞은 것 같애”

나는 어디에 부딪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분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한 번 생각해보래.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자 예배 시간이 된 것 같으니 들어가야지.”

나는 삼 대째 장로교 집안의 모태 교인이다. 주일이 성경의 안식일인 줄 알고 꽤나 철저히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려고 애썼다. 집안이 다 그랬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그날 종일 박 집사님의 그 말이 귀에 쟁쟁거렸다. 성경을 연구해봐야지, 사람이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한 것을 어떻게 그대로 믿을 수 있겠나.

성경을 연구해보니 그 지나가면서 던진 그 말이 옳았다. 그렇다면 성경대로 순종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 무릎에서 성경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성경은 절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마음에 깊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의하여 옳다고 하면 따르는 것이 바른 예수 믿음이라는 사상이 내 전 의식을 무의식으로 사로잡고 있었다.

나는 이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성경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럴수록 안식일은 틀림없이 제 칠일이었으며 그것이 요즘 요일로는 토요일이 분명하였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안식일을 지키면서 신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까?

나는 토요일 수업을 빼먹고 안식일에 예배하는 교회를 찾아갔다. 그렇게 몇 번 했다.

거기서 들은 설교는 또 나를 신선한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듣는 설교는 성경 한 절을 본문으로 낭독한 후에 여러 세상 이야기들이나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예화들을 나열하면서 예수 이름으로 신앙 도덕 교육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안식일에 예배하는 이 사람들의 설교하는 모양이 아주 달랐다.

그들은 성경 말씀에서 어떤 주제 성경구절을 낭독한 다음, 구구절절이 성경을 찾아서 그 주제 구절의 의미를 확대하며 성경구절로 성경을 설명하는 그런 설교였다.

그런데 그 교회에 담임목사님이 없는지, 다음 집회에 가니까 다른 사람이 설교를 하고 있었고, 먼저 설교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나는 속칭 안식일 교회의 체제를 전혀 모르고 있었고, 또 그것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그냥 예배와 설교가 너무도 성경적이라는 느낌만 받았다.

교회에 설교 계획표가 없었는지, 내가 만난 두 번째 설교자가 먼저 안식일에 설교한 같은 주제로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그가 먼저 안식일에 그런 설교를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고, 회중들도 들었던 주제라고 반응하는 사람도 없었다. 열심히 들으면서 적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내게는 놀랍게도 다른 사람이 같은 주제로 설교를 하는데 그가 찾아가는 성경구절 또한 거의 같았다. 겨우 몇 구절이 다를 뿐이었다.

나는 감탄하였다. ‘저 두 사람이 의논하고 같은 주제를 설교하지 않았을 텐데, 어찌 그 찾아가는 성경구절까지 저렇게 비슷하며 강조하는 말씀도 비슷하지! 맞아 설교는 저렇게 해야 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같은 주제를 나타내는 말씀은 누가 찾아도 같아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겠어.’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렇게 깨달은 다음 나는 안식일마다 학교를 결석하고 안식일 지키는 교회로 예배드리러 갔다. 이런 사실을 안,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어느 금요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를 불렀다. -당시 우리 식구는 교회 사택에 살면서 교회 사찰(舍察, 관리인, custodian)로 있었다. 새벽종을 치고, 예배일에 시간을 알리는 종을 쳤다. 그리고 교회 청소를 하고 주위 환경을 가꾸었었다. -그러므로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를 불러내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항상 새벽기도회에 참석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몇 번째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 나를 그날 금요일 새벽기도회 후에 불러낸 것이다. 당회가 모인 것이다. 그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명호, 요새 안식일 지킨다면서?”

“예.”

“너는 안식일 지키고 우리는 주일 지키니 어떻게 같이 있겠노. 오늘부터 너는 우리 교인 아니다. 속히 나가도록 해라.”

출교명령이었다. 그렇게 나는 삼 대째 다니던 교회를 떠나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로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나를 따라 모든 식구가 다 교회를 옮겼다. 자세한 이야기는 언젠가 할 것이다.

사택에서 떠나야 하였으나 당장 나갈 집도 없었다. 교회에서 생활비를 보태주었으나 그것도 끝이 났다. 누구 말대로 당장 길거리에 나가 비럭질을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말이다. 그런 것이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진리를 깨달은 기쁨만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가 아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깨달은 진리를 입에 침을 튀기며 증거했다. 마음을 채우는 그 희열을 아무도 끄지 못했다.

그리고 또 예수 재림의 임박성을 배우게 되었다. 다니엘서를 확인하고 계시록을 배웠다. 기록된 징조가 차근차근 그때그때 이루어진 것을 일목요연하게 보게 되었다. 정말 예수님은 곧 오시겠네. 나는 재림 맞을 준비를 위하여 시골 생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배웠다. 배우자 나는 곧 시골로 떠났다.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곧 시행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겠는가. 그때 그렇게 뜨거웠다.

지금도 주님은 여전히 속히 오신다. 내가 처음 재림교회에 온 때보다 재림은 훨씬 더 가까워졌다. 그런데 우리 재림성도들의 마음은 세속에 너무 빼앗긴 것 같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다잡고 재림신앙을 불붙게 해야 할 것이다.

재림교회에 온 세월이 금년이 만 50년이다. 처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하늘에 있어야 하겠지만 주님은 아직 지체하고 계신다. 모든 사람이 회개하도록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재림성도로 살면서 종말론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역사적 종말론과 인격종말론이 그것이다. 인격종말론이라는 말은 나의 술어이다. 개인적 종말론이라면 더 쉬울 것이다. 우리는 언제 개인적으로 종말을 맞을는지 모른다. 그날이, 바로 그날이 각 개인이 예수님의 재림을 맞는 순간이다. 죽은 사람에게는 세월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 종말이 아니라도 역사적으로도 종말의 종말에 이른 것을 몸으로 느끼는 시기이다. 예수께서 곧 오실 것이며 이 죄의 세상은 속히 끝날 것이다. 처음 이 기별을 받았을 때 그 흥분으로 하루하루를 재림의 기쁜 소식 중에 바른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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