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벼랑 끝에 다다랐는데

김명호 방 조회 수 1093 추천 수 0 2009.03.20 18:39:07

시간의 벼랑 끝에 다다랐는데

 
성경의 종교는 종말 지향적이다. 이 세상은 종말을 향하여 달리고 있다고 계시한다. 그래서 성경의 종교는 역사성이 있다.

종말이 있다는 말은 쉬운 말로 이 세상의 끝이 있다는 말이다.

성경의 종교 외의 어떤 종교도 성경이 계시하는 것과 같은 종말에 대한 사상이 없다.

성경은 이 세상에 사는 것들은 다 끝이 있다고 계시한다. 그것들의 총체적인 끝이 세상의 끝이며 시간의 끝이다. 이 세상의 구원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은 현세의 종말에 그 영원한 구원을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에 시간 역사의 진행을 주관하신다. 그래서 처음부터 종말을 고하신다(사 46:10).

성경을 믿음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역사의 역사적 진행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를 믿고 계시의 말씀을 믿음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세상 시간 역사의 진행을 알 수 있도록 기록하게 하셨다. 이것을 예언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종말까지의 역사의 진행을 구체적으로 보시고 아시기 때문에 진행 사항을 그의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연대에 대한 예언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끝 곧 시간의 끝이 어떻게 이를 것인지 그의 백성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종말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 종말의 때를 연대 예언으로 가르쳐주셨다. 연대 예언을 하지 않았다면 성경이 말하는 종말에 대한 내용들은 신빙성이 없다. 종말이 온다, 종말이 온다는 말은 누구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은 막연하고 한 시대를 살다가 죽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성경의 종교가 종말 지향적이기 때문에 종말을 향해 달리는 세월이 어떤 지점을 지나고 있으며 그 지점에 어떤 사건이 있을 것인지 기록한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이런 세월의 마디들에 대한을 말씀이 연대 예언인데, 멀리는 노아 때의 120년을 비롯하여 바벨론 포로 70년 등 실제적 사건에 대한 연대 예언과 한 때 두 때 반 때와 70 이레, 2,300 주야 같은 상징적 연대 예언이 있다.

노아 때의 연대와 이스라엘의 70년 포로기에 대한 것은 그때 다 그 연대대로 사건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말세와 관련된 연대 예언은 다니엘서와 계시록에 상징적 연대로 기록되었다.

이 연대들은 그 시작을 역사에서 일어날 어떤 사건을 기산점으로 계산할 수 있도록 계시되었다. 한 때 두 때 반 때, 또는 42 달, 또는 1,260일은 같은 기간을 나타내는 다른 표현들인데, 이것은 다니엘서 7장의 넷째 짐승에서 나온 열 뿔 중에 세 뿔을 꺾는 작은 뿔이 일어나는 때부터 시작이 되고, 2,300 주야는 예루살렘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릴 때부터 시작된다고 계시된 것이다.

1,260일이 지나면 연대적으로 말세 연대에 접어든다고 계시한다.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단 12:7). 이 말씀은 한 때 두 때 반 때 동안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리니 그렇게 될 때 끝이 된다는 말이다. 이 표상적 예언연대를 성경의 원칙을 따라(겔 4:6) 계산하면 그 끝이 AD 1798년이 된다. 이때부터 역사적 말세이다. 그리고 2,300주야 곧 2,300년이 끝나면 역사적으로 예언된 연대가 없는 말세에 접어든다. 언제든지 이 지구 역사가 끝날 수 있다는 뜻이다. 2,300년의 끝은 1844년이다. 본격적으로 말세이며 이 시기 동안 영원한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

영원한 복음은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에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것이다(계14:6,7). 심판은,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고 그분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그 존재를 영원히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시간이 가까이 되었으니 창조주를 경배하여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존재를 영원히 확립하라는 것이다.

지금 21세기는 성경에 예언된 연대예언 후의 세월이다. 이제는 실제적이거나 상징적이거나 연대예언은 없다. 이 말의 뜻은 그만큼 예언된 연대는 다 지나가고 예언된 연대로서 남은 기간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계시로 이 사실을 가르쳐 주셨다. 계시록 10장 사건이 성취되면 이제는 연대로 예언된 시기가 없다고 선언하셨다. “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계10:6). 이 말씀에 “지체하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은 “o{ti(호티) crovno"(크로노스) oujk(웈) e[stai(에스타이) e[ti:(에티)” 인데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더 이상 정해진 시간이 없이 예언된 사건들이 닥쳐온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시간이 없는 것이다. 성경 전체에 나타난 예언적 연대를 보면 이 일 후에 더 이상 예언된 연대가 없는 것이 확실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정해진 예언된 기간을 넘어서 예언연대 후 시대의 초읽기에 접어든 세월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바둑에서 초읽기는 그대로 기간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간을 예측할 수 있는 초읽기 기간보다 더 절박한 기간이다. 성경에 예언된 연대가 다 지나고 그런 연대 없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된 사건들이 어느 시점에 일어날는지 모르는 그런 시기이다.

예언된 연대가 끝난 후에 있을 예언된 사건으로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그 여자의 남은 자존이 일어날 것이며,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경배하기를 강요하는 사건이 있을 것이다. 그 짐승에게 경배를 강요하기 위하여 짐승의 표를 줄 것인데 이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을 핍박하되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백성을 압박하기 위하여 경제 문제를 수단으로 사용할 것이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경제권을 독점하고 그가 발행한 짐승의 표가 없으면 경제활동을 못하게 할 것이다.

작금의 세계 경제 위기가 이런 일이 이루어지려는 모습이 아닐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급하게 그렇다고 단정 짓고 현세대를 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현세대가 절박하다는 말이다.

대 재림운동이 일어나서 예수 재림 신앙을 뜨겁게 달구던 그 시절부터 세월은 160년 이상을 흘렀다. 재림 열망의 열기가 식으면서 재림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그 후예들이 재림은 남의 이야기처럼 여기는, 다 졸며 자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예언된 연대는 다 지나가고 이제는 예언된 특정한 연대가 없는 종말 시대에 처하여 사는데, 그런 이정표가 없으므로 해이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다니엘서 12장의 연대를 종말 연대에 적용하면서 그것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 연대라고 우기고, 그러면서 또 거기 대입하는 계시록의 날짜에 대한 것은 상징적으로 풀이하여 갖다 붙이는 모순을 어엿이 주장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재림이 더디고, 세상이 흘러가는 형편을 보니 이미 이루어졌다고 해석한 천연계의 징조들도 정말 이루어진 것일까 의심이 일어나고 있다. 계시록 6장의 큰 지진이나,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았다는 사건이나, 별들이 소나기처럼 떨어졌다는 사건들이 과연 계시록 6장에 계시한 여섯째 인을 떼실 때의 사건일까? 그래서 어떤 아주 보수적이고 정통 재림 사상을 가진 학자까지도 그것들은 재림 직전에 있을 천연계 현상일 것이라는 해석을 시도하여 지상(誌上)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각시대의 대쟁투에 성취되었다고 기록된 천연계의 징조 후에 리스본 지진 보다 더 큰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1833년의 별 소나기보다 더 굉장한 별 소나기가 주기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계시록 6장 예언이 성취된 재림의 징조로 해석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은 1780년 5월 19일의 사건은 Canada에서 엄청난 산불이 나서 그 연기가 뉴잉글랜드 지역 온 하늘을 뒤덮은 사건일 뿐이라고 말하였다.

어떤 사람은 엘렌의 예언적 언급들이 그가 살던 시대적 산물일 뿐 말세에 이루어질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재림신앙이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인상을 풍긴다.

이런 풍조가 생기는 것은 주님의 재림이 생각보다 더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있으리라고 한 사건이 더디 이루어질수록 기대하는 사람들의 본심이 드러나게 된다. 지금이 바로 소위 재림신자들의 본심이 가장 잘 드러나는 그런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본심이 드러나는 것을 흔들림이라고 한다. 정말 예언연대 후 시대는 재림을 고대한다는 재림신자들의 본심을 시험하는 흔들림의 시기이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우리는 다음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이 측량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김없이 당신이 하실 일을 성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그런 신뢰는 반드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성경에 나타나신 여호와라 이름 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때가 차면 모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보고 우리는 넘치는 감격으로 찬양하게 될 것이다. 지금 호흡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이 호흡이 끊어지지 않고 그날을 맞을 사람이 있을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가 말씀에 신실하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면 그날 영광스러운 재림의 아침에 모든 예언이 성취된 감격 속에 우리 영광의 주님 나의 구주시며 생명이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만나서 포옹하게 될 것이다. 그 넘치는 사랑으로 푸근하고 넉넉한 가슴에 마음 놓고 안기게 될 것이다. 우리의 본심은 과연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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