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 - 소경의 눈을 밝히신 생명의 빛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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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9장에 등장하는 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신 사건은
단순히 눈을 뜨게 한 기적을 넘어, 소외되고 상처받은 한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깊고 입체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입니다.
이 사건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을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해석해
볼 수 있다.
1. 편견의 시선을 거두어주는 '인격적인 사랑'
당시 유대 사회는 누군가의 불행이나 장애를 대할 때 "누구의 죄 때문인가?"
라는 인과응보적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께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라며 질문을 던집니다.
맹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당사자에게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깊은 낙인이자
상처였을 것이다. 이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그 누구의 죄도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한복음 9:3)
예수님은 그를 '죄의 결과물'이나 '구걸하는 구경거리'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의 고통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시며, 세상의 차가운 편견
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존엄성을 찾아주셨습니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
하고 방어해 주시는 인격적인 사랑입니다.
2. 고통의 자리에 직접 찾아와 만져주시는 '행동하는 사랑'
예수님은 말로만 그를 위로하지 않으셨습니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당시 맹인은 사람들의 접촉을 받기 어려운 소외된 존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눈에 직접 진흙을 바르시는 행위는 그의 신체적, 정서적 고독을 깨뜨리는
따뜻한 스킨십이었습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그가 실로암 못까지 걸어가는
과정은 순종의 여정이자, 그동안 남들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지 못했던 그에게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주체성과 치유의 기회를 제공한 구체적이고 행동하는
사랑이었습니다.
3. 영혼의 구원까지 책임지는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
기적적으로 눈을 떴지만, 이 사람은 바리새인들에게 심문을 당하고 결국 유대
사회에서 출교(쫓겨남)를 당하게 됩니다. 가족마저도 화가 미칠까 봐 그를
외면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예수님은 그가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그를 다시 찾아가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요한복음 9:35)
육신의 눈을 고쳐주신 것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에서 다시 홀로 된 그의 영적
고독까지 살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시며 그를 영적인
눈을 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주십니다. 세상은 그를 버렸지만,
예수님은 그를 끝까지 찾아내어 영원한 관계를 맺으시는 책임지는 사랑을
보여주셨다.
요약하자면
요한복음 9장의 사랑은 단순히 질병을 고쳐주는 시혜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세상의 낙인을 지워주고, 상처 입은 몸을 어루만지며, 사회적 고립 속에서도
끝까지 영혼을 찾아와 구원해 주시는 완전하고도 세심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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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빛" 으로 보는 관점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460p
하나님은 빛이시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하나님과의 하나 되심과 또한 온 인류와의 자신의 관계를 선언
하셨다. 태초에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고후 4:6)게 하신 분은 예수님
이셨다. 463p
“내가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으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라고 선언
하셨다. 연로한 시므온은 예수께서 지금 가르치고 계시는 성전에서 그에
대하여 “이방을 비취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32) 465p
인간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
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리스도는 진리이시다. 마음을
약하게 하고 영혼의 자유를 파괴함으로써만 죄는 승리할 수 있다. 465p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또 그렇다고 공언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다. 이제 많은 백성들도 제사장들과 랍비
편에 서서 예수께 던지려고 돌을 들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
서 나가”셨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4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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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Jewooklee님의 댓글
지금이 새벽 5시 50분 입니다.
세상은 아직도 깜깜한 밤입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닭 울음 소리가 새벽을 깨우는 시간입니다.
이제 곧 새벽을 뚫고 밝은 햇살이 솓아 오르듯,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과 은혜와 사랑이 온 누리를 감싸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나면서 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밝혀 주신 것보다 더 귀한 복음이 어디 있을까요?
이게 복음의 빛이요, 능력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아멘!
요한복음은 사랑과 능력과 은혜와 축복의 덩어리 입니다. 은혜는 점점 더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