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생명--- 1888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에서 대표자들에게 배부된 E. J. 와그너의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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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생명
‘그러나 실제로는 그리스도께서 1800여년 전에 십자가에 죽으셨지 않은가?’ 그러하다. ‘그러면 어떻게 내 개인의 죄가 그분에게 지워진다고 할 수 있으며 또 내가 지금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가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는 할 수는 있으나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생명, 곧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 영원한 생명”(요일 1:2)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에 그 사실에 대해서 좀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 1:4, 9).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눈이 볼 수 있는 인간, 나사렛 예수보다는 더 크시다. 혈과 육 곧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혈육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 17)로 드러낼 수가 없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도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9, 10).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라도 아무리 나사렛의 목수를 친숙하게 알고 있을지라도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를 주라고 부를 수 없다(고전 12:3 참조). 성령에 의해서 지상의 모든 각 사람들 안에 그 자신이 개인적으로 임재하여 거하실 수 있으며 하늘에서 마찬가지로 그 자신의 개인적인 임재로 충만케 한다. 이것은 육신을 쓰신 예수께서는 하실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떠나 가시고 성령을 보내신 것이다.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 17). 나사렛의 예수는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셨지만 그러나 육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육은 무익하기” 때문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며 그 능력으로 우주 만물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이 세상으로 말한다면 세상이 세워질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갈릴리와 유대 지방을 다니면서 착한 일을 행하실 때에 그는 아버지의 품에 계시면서 세상의 죄때문에 허물어진 것을 회복시키는 일을 하셨다.
갈바리의 사건은 지금까지 죄의 존재로 일어났던 일과 모든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까지 일어날 일, 곧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를 크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죄를 짊어지셨다. 죽음과 부활의 이 한 행위는 영원토록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킨 행위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시는 희생 제물이 거듭하여 되실 필요가 없다. 그 생명은 만물을 충만케 하고 또 만물을 붙들므로 믿음으로 그 생명을 받는 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희생의 모든 유익을 받는다. 그 자신이 몸소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히 1:3)셨다. 그 생명을 거절하고 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이라는 것을 시인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갈바리의 희생의 혜택을 상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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