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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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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쏘는 것
사망은 저주라는 것이 13절 뒷부분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는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가 있다. 그리스도는 나무에 달리시므로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우리를 위하여 저주로 삼으신 바 되었다. 그러나 죄는 사망의 원인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 그러므로 율법에 기록된 대로 모든 것을 계속하지 않는 자들은 죽은 자들이라는 것이 10절의 요지이다. 다시 말하면 불순종은 사망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씀한 대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는 말씀과 같다. 죄에는 사망이 들어 있으며 그러므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다. 생명이 충만한 것같이 행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그리스도의 말씀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고 하였다. 이것은 살아있는 죽음 곧 사망의 몸이다(롬 7:24 참조).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며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러므로 저주는 가장 매력적인 죄 속에 숨기어져 여기 저기로 옮겨 다니는 사망이다.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저주로부터의 구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여기서 잠간 멈추고 앞으로 연구할 구원의 도를 염두에 두고 이 사실을 생각해 보자. 이 말씀을 매우 주의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줄곧 읽고는 이내 광적으로 외치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속하셨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며 이 구절이 마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불순종의 저주에서 구속하신 것처럼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나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한다. 지금까지 본 바와같이 저주는 불순종이다.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율법에 불순종하는데서 구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롬 8:4)하셨다.
어떤 사람은 경솔하게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옳다. 우리가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율법으로 볼 때에 옳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구속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구속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나이다”(눅 19:14)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거절한다. 그러나 구속은 만인을 위해서 있다. 그리스도의 귀하신 피 곧 생명으로 모든 사람을 샀다. 그러므로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될 수가 있다. 그 피로 우리는 “망령된 행실”(벧전 1:18)에서 구속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를 잠깐 멈추고 생각을 해 보자. 이 말씀은 율법의 모든 의로운 요구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지 않는데서 우리를 구속하셨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지을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죄의 쇠사슬을 산산조각을 내셨기 때문에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분의 구원을 받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보다 선한 삶을 살기 위하여 간절히 사모하고 실현되지 않은 희망을 헛되이 후회하는 데에 우리의 생애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거짓된 소망에 마음을 부풀게 하지 않으시고 죄의 포로들에게 오셔서 “자유다. 너희의 감옥문이 열렸다. 나오라”고 외치신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이 악한 세대”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의 승리는 곧 우리의 것이 된다. 우리는 그 승리를 받기만 하면 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심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라는 말씀은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롬 4:25)었다. 무죄한 자가 유죄한 자를 위하여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 6). 그러나 사망은 죄로 말미암아 이르러 왔다. 사망은 단순히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내린 저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셨”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고후 5:21)바 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그는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벧전 2:24)시고 나무에까지 달려 죽으셨다. 우리의 죄를 “그의 몸으로” 짊어지셨다는 것에 유의하자. 그가 하신 일은 피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상징적으로 죄를 짊어지신 것이 아니고 실제로 죄들이 그 안에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바 되었으며 그 결과 우리를 위하여 죽음의 고통을 당하셨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진리가 비위에 거스릴른지 모른다. 이 도가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되었지만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24)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 몸으로 짊어지신 것은 그 자신의 죄가 아니고 우리들의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바 되었다고 말씀하는 같은 구절에서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알도록 하자.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며 실제로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바 되지만 어떤 죄도 짓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영원히 영광스러운 일이며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우리의 영원한 구원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죄가 그에게 지워지지만 그에게 어떤 죄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다. 몸소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져 가셨지만 그의 생애에서 죄가 나타난 일은 없었다. 사망을 삼키는 무한한 생명의 능력으로 죄를 받으셔서 완전히 삼키셨다. 죄를 짊어질 수 있으시지만 죄로 더럽힘을 받을 수는 없다. 이러한 놀라운 생명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그의 생명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육신 속에 있는 온갖 죄로부터 해방을 받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셨다. 그렇다. 그러나 아무도 그로부터 목숨을 빼앗지 않았고 그 생명을 다시 얻기 위하여 버리셨던 것이다(요 10:17, 18 참조). 사망의 고통에서 풀려 나셨다.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4). 왜 그리스도께서 자원하여 사망의 권세 속에 그 자신을 던졌는데도 사망이 그를 붙들 수가 없었는가?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셨기 때문이다. 그 몸으로 죄를 담당하셨었지만 그러나 그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을 받으셨었다.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셨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히 2:17; 4:15; 요 5:30)으셨지만 그리스도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으므로 아버지에게 그를 지켜 주셔서 죄의 정복을 당하여 사망의 권세 아래 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기도가 들으신 바 되었다. 그리스도에게 이 말씀이 성취되었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사 50:7, 8).
그러면 누구의 죄가 그리스도를 무겁게 눌렀으며 그리고 그는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으셨는가? 그 자신의 죄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으셨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죄와 나의 죄이다. 우리의 죄들은 이미 정복되었고 쓰러진 바 되었다. 우리는 벌써 패배당한 원수와 싸울 뿐이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에게 나아가서 우리 자신을 그의 죽으심과 살으심에 바칠 때에 우리는 그의 이름을 헛되이 지니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서 짊어 지셨고 지금도 여전히 짊어지고 계신다는 것과 그리스도는 정복자요 승리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며 즉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7; 고후 2:14)고 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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