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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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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계시
갈라디아 3장 13절에서는 갈라디아 2장 20절과 3장 1절에서 말씀한 주제―영원히 있는 십자가―로 되돌아 간다. 이 주제는 다함이 없다. 다음의 몇가지 사실은 우리가 이 주제를 마음으로 깨닫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속은 십자가를 통해서 완성되었다(갈 3:13 참조).
2. 복음은 모두 십자가에 들어 있다.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 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는 죄에 빠진 인류에게 오직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분으로 드러나 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행 4:12)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전하신 모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혼란되어 무엇이 무엇인지를 모르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바울이 알고자 했던 모든 것이며 어느 사람이나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이다. 이와같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한 가지 일은 구원이다. 만일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면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만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들의 눈앞에 다른 어떤 것을 두시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만을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공연하게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으로 하나님은 전하시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생명을 얻지 못하거나 계속 죄가운데 있는 것에 대하여 변명할 수가 없다.
4. 그리스도는 오직 십자가에 못박히신 구속주로 사람들 앞에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저주에서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담당하시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주가 있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그 저주를 담당하는 그리스도가 있다. 이미 본 바와같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담당하신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다. 그는 역시 땅 자체의 저주도 담당하신다. 왜냐하면 가시 면류관을 쓰셨고 땅에 선고된 저주는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 3:18)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저주 아래서 신음하는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속을 받았다(롬 8:19-23).
5.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담당하시는 것은 오직 십자가 위에서이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를 위해서 저주가 되신 것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나타났다.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저주로부터의 구원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복자요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로 저주 그 자체는 십자가를 제시하며 우리의 구원을 선포한다.
6. 저주는 어디에 있는가? 아니 저주는 어디에 있지 않는가? 아무리 소경일지라도 그 자신의 오관의 증거를 인정한다면 알 수가 있다. 불완전함은 저주이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저주이다. 이 지상에 관련되어 있는 모든 것위에 불완전함이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땅에서 자라나는 아무리 아름다운 초목이라도 흠이 없을만큼 완전하지는 않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서 우리의 훈련되지 않은 눈에는 그 절대적인 필요를 볼 수 없다 할지라도 개량의 가능성을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땅을 창조하셨을 때에 모든 것이 “좋았더라.” 히브리어의 표현을 빌리면 “매우 좋았더라.” 하나님 자신이 개량할 기회나 가능성을 보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원예사는 그가 가꾸고 있는 과수나 꽃을 개량하기 위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노력을 한다. 땅에서 생산되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저주를 나타내는데 하물며 왜소하고 보잘것 없는 식물들이 시들고 비리한 싹과 잎사귀와 과일들, 해만 끼치는 잡초들에 대해서 무슨 말을 더할 필요가 있겠는가? 어디에나 저주가 땅을 삼키지 않는 곳이 없다(사 26:4 참조).
7. 그러면 이 모든 일의 결론은 무엇인가? 실망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살전 5:9).
어디를 가나 저주를 눈에 볼 수 있지만 모든 주위에서 변화와 쇠함이 보이지만 그러나 만물이 살아있고 사람들도 살아있다. 그러나 저주는 사망이므로 어느 사람과 피조물이라도 사망을 지니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살아계시다. 전에는 죽었지만 지금은 영원히 살아 계시다(계 1:18 참조). 그리스도만이 저주―사망을 짊어지고 여전히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저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땅과 인간 안에 생명이 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디에나 있다는 증거가 된다. 모든 풀잎사귀, 모든 나무 잎사귀, 모든 수풀과 나무, 모든 꽃과 과일 심지어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까지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도장 찍혀 있다. 우리 자신의 몸 안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 이 십자가는 어디에나 있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그것이 곧 복음이다. 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이 그가 만드신 모든 만물 안에 나타나 있다. 그 능력이 곧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엡 3:20)이다. 로마서 1장 16-20절을 고린도 전서 1장 17,18절과 비교해 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만물 안에 심지어는 우리 자신의 몸 안에 나타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선포하기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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