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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신은 솔직히 그전에는 신 신학에 대하여 말로만 들었고 그저 현 시대에 맞는 진보된 신학으로만 생각해온 사람이었습니다. 금년초 카스다에 성육신 진리를 올릴 때 신 신학 사상이 우리 교단에 교묘하게 들어와 셋째 천사의 기별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놀 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의 이 지면을 통하여 오늘 우리 교단의 많은 목사님과 지도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신 신학과 논쟁을 벌리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신 신학 이란 무엇인가를 더 확실히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제가 아는데 까지 신 신학이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 전통 재림신앙이 무엇인가를 간단하게 요약하며 비교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 고 저 자신의 구원과 신앙생활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성육신 진리가 얼마나 중대한 진리인가를 제가 배운대로 고백하려고 합니다.
가톨릭교는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죄의 육신을 취하셨다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실 수 없 다고 주장합니다. 죄가 없는 육신을 취하신 예수님을 주장하기 위하여 교황 피우스 9세는 마리아는 아기를 잉태하는 순간 성은을 입고 기적적으로 원죄가 제거된 성모가 되었다는 소위 무염시태 교리를 칙령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그것은 성경에 전혀 없는 기괴한 교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영아들이 출생하는 순간부터 죄의 저주를 받은 존재가 된다는 원죄교리가 주는 공포를 제거시키는 방법으로 영아세례가 고안되었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이것 역시도 성경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예식인 것입 니다.
그런데 신 신학은 천주교와 유산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발견하였습니다. 신 신학은 예수님이 취하신 육신이란 아담의 범죄 후가 아니라 범죄 전의 죄가 없는 육신을 취하 셨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우리 재림교단의 전통적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가르침 입니 다. 신 신학의 가르침에 의하면 예수님이 취하신 육신이란 오늘 우리들의 육신과 완전히 다른 육신이며 비록 예수님은 우리들을 통찰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죄의 유혹이나 죄를 지을 수 있는 경험은 전연 없으신 분이시며 따라서 우리의 성화의 모범은 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이와 같은 신 신학의 가르침은 예수님을 모본으로 삼으려고 하였으며 노력 한 저 자신의 믿음을 무색하게 만들었으며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믿는 사람 들에게 의롭다하심을 허락하시고 성화의 생활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정말로 우리들과 다른 육신 을 가지신 분인가를 다시금 묻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로 우리 주님께서 죄와 상관이 없는 육신을 취하신 분이었다면 저는 이와같은 의문 들을 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우리 주님은 40일 동안이나 광야에서 홀로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가? 어째서 우리 주님은 때때로 홀로 기도하는 장소로 한적한 곳을 구하셨 는가? 어째서 우리 주님은 철야기도를 하실 필요가 있었는가? 특별히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 마네 동산에 피땀을 흘리시기까지 기도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정말로 우리 주님은 죄로 달려 가려고 하는 육신의 경향 혹은 육신의 고통은 경험하신 일이 전연 없으셨는가? 과연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은 육신의고통을 전연 경험하지 아니하신 분 이신가? 과연 그분은 하늘 아버지께 자신의 육신의 고통을 이기기 위하여 기도하지 아니하신 분인가? 등등.
우리 전통적 재림교회 신조의 한 조항은 로마서 8장 3-4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율법 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 말씀 가운데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으로 우리가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우리와 꼭 같은 육신을 취하신 사실 이 언급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에서 그러나 영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 를 이루신 사실도 언급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는 성경 진술은 예수님이 죄를 범할 수 없는 신성 은 물론이며 그리고 죄가 없는 육신으로 탄생하신 사실을 언급하는 말씀으로 읽어야 할 것인 가도 의문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성령으로 잉태하셨다는 진술은 그리스도는 원래 하나님과 함께 하신 신적 존재였으며 그러한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오늘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실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죄에 빠진 인류를 사랑 하시고 죄에 빠진 인류를 구하고자 그들과 같은 인성을 취하실 것을 자원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도 동의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의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는 죄의 유혹을 극복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이 지닌 신성의 능력을 일절 사용하지 아니하셨으며 오직 우리와 꼭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령에 의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그분의 뒤를 따라가는 우리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태어난 아담의 모든 자손들은 그들 피속에 죄의 인자가 유전되었 습 니다. 아담의 후손들에게 아담의 죄의 결과는 유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답의 죄는 그의 자손들에게 유전될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아비의 죄를 아들에게 추궁할 수 없으며 또한 아들의 죄를 그 아비에게 추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계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아담의 범죄의 결과는 우리들에게 유전되는 것이지만 그의 죄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들은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란 무엇인가? 죄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 이나 교육에서 각자가 자유의지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빛 혹은 거룩한 율법을 의도적 으로 범하는 일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면 우리의 모범이신 예수님은 어떻게 죄 없는 생애를 사셨는지 몇 가지만 말씀 드리 겠습니다. 예수님의 생활환경은 매우 험준하였습니다. 그분은 출생전부터 헤롯 왕이 살해하 려고 하였으며 천사들의 보호가 필요할 정도였습니다. 그분은 비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났습니 다. 성실한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양육 장소를 전전하였 습니다. 예수님의 소년시절을 보내신 거주지는 천민이 거주하는 갈리리 나사렛 동네였습니다. 예수님은 랍비학교를 다니지 아니하였지만 집에서 성경 공부을 자습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연계 에 나가시어 거기서 명상하시며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시간은 아버지 요셉의 목공 일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이러한 생활을 통하여 그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님께 순종 하기를 배웠으며 죄짓지 아니하는 순결한 생애를 사실 수 있었습니다/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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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신 2026.02.18 11:37

성육신의 기별은 성서 전체의 가장 큰 관심사이며, 그리스도교의 구원이 어떠한 것인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연결시키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금고리이다. 이 문제는 우리의 연구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실제적인 인간이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인간이 되심으로 당신의 겸비에 대한 증거를 주셨다. 그렇지만 그분께서는 육신으로 계신 하나님이셨다. 우리가 이 문제를 연구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떨기나무의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고 하신 말씀을 주의깊이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참회하는 정신으로 배우는 자의 겸비한 태도를 가지고 이 문제를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에 대한 연구는 숨은 진리를 깊이 탐구하는 연구자에게 보상을 주는 풍성한 결실의 밭이다." -1기별244

성육신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육신
<incarnation>
(成肉身)
신적인 존재가 인간의 육체 안으로 들어와서 인간 가운데 거하는 것을 이르는 말. 종교사학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종교(힌두교·불교 등)도 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성육신론이 일반종교의 그것과 다른 점은 그리스도교의 성육신이 구원론(救援論)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또 그 육체의 개념이 다른 데 있다. 그리스도교가 사용하는 육(신)의 개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첫째는 문자 그대로 육체(고기)이고 둘째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려는 정욕적인 성향 또는 그러한 삶의 방식을 뜻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성육신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요한의 복음서》의 말씀(요한 1:14)을 한자로 표시한 것이다. 이 사건은 성서 전체의 가장 큰 관심사이며, 그리스도교의 구원이 어떠한 것인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의 말씀(로고스)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그의 아들을 의미하고 이 아들이 육신이 되어 우리의 구원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창세기》 3장은 올 구원자가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어야 함을 암시하였고(창세 3:15), 신약성서는 이 구원자가 죄가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은 분으로 왔다고 증거하고 있다(히브 4:15). 놀랍게도 성서는 ‘말씀’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육’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때의 육(신)은 단순한 고기 또는 육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약성서에서는 위에서 본 대로 이 단어(sarks)를 두 가지 뜻으로 사용하였다. 우리는 두번째 개념을 ‘육’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원자는 세상의 죄를 짊어지기 위하여 인간으로 오되 이 육을 입고 온 것이다. “그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와서 육신에 죄를 정하사…”라고 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온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이 경우 죄의 몸은 단순한 육체를 의미하지 않고 육의 체제를 의미한다. 이러한 육의 상태에 있는 인간을 구원하려면 바로 이러한 상태 속으로 구원자가 들어와서 우리 대신에 모든 율법을 이루고 희생되어, 강력하게 죄의 능력이 지배하는 육의 체제를 파괴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일을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써 수행하였다. -두산백과 99


신신학을 폭로하고 있는 "영원한 본체를 붙잡다" 35페이지에 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교 안에서 다시 배워야 할 근본적인 진리가 있다.
하나님의 화해시키는 사랑을 등지고 증오와 모독의 가장 사악한 장소인
우리 인성의 중심 안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들어오신 하나님의 임재가 성육신이라는 사실이다.
... 이와같이 성육신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자신의 죄 있는 본성을 그분 스스로 취하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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