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된 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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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유업
약속된 것과 모든 약속의 절정은 유업이라는 것을 갈라디아 3장 15-18절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방금 본 16절과 17절에서 말씀하는 것은 약속이 이루어지고 재확증된 지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그 약속을 헛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갈 3:18). 이 약속된 유업은 방금 인용한 구절과 로마서 4장 13절을 비교하여 보면 알 수가 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그러므로 지금 있는 하늘과 땅은 “불사르기 위하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질 때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 13).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사모하였던 하늘나라이다.
저주가 없는 유업
“그리스도께서…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이 “성령의 약속”은 새롭게 된 다시 말하면 저주에서 속량된 모든 땅을 소유하는 것임을 보았었다.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갓 나와 새롭고 모든 면에서 완전한 땅을 인간이 소유하도록 주셨었다(창 1:27, 28, 31 참조). 인간이 범죄하여 스스로 저주를 취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인간과 피조물의 저주를 몸소 담당하셨다.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셨던 대로 영원한 소유가 되도록 땅을 저주에서 구속하시며 또한 인간도 저주에서 구속하시어 이러한 유업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도록 하신다. 이것이 복음의 요지이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이 영생의 선물이 유업의 약속 안에 들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영원한 기업”(창 17:7, 8)으로 이 땅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의 기업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는 약속은 믿음의 의에 의해서 되기 때문이다. 의와 영생과 그 가운데서 영원히 살 땅―이것들은 모두 약속 안에 들어 있으며 그러므로 이것들은 우리가 소망하고 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된다. 인간을 구속하나 그에게 살 땅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완전하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일은 하나의 완전을 이루는 두짝이 된다. 우리를 구속하는 능력은 창조의 능력―하늘과 땅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다. 모든 일이 이루어질 때에 “다시 저주가 없”(계 22:3)다.
약속의 언약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은 동일한 것임을 갈라디아서 3장 17절의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 약속을 파하는 것으로 말씀하는데서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고 가나안 땅을 주고 그것과 함께 온 세계를 영원한 소유로 주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나 갈라디아 3장 18절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그것을 주었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사람과 맺는 언약은 그들에게 하는 약속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5, 36). 같은 가치의 것을 기대하지 않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흔하지 않으므로 신학자들은 이것은 하나님에게도 같다고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언약이란 “두 사람 혹은 둘 이상의 사람들 간에 어떤 일을 하거나 또는 하지 않기로 하는 상호 협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과는 거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들의 몫을 이행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홍수 후에 하나님은 땅의 모든 짐승과 새들과 언약을 세우셨다. 그러나 짐승들이나 새들이 이에 답하여 약속을 하지 않았다(창 9:9-16 참조).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은혜를 받았을 뿐이다. 우리들에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것을 선물로 약속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우리 자신을 드리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자신을 주시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모든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이 주님을 완전히 시인하려고 할 때에라도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이 “상호간”의 일―그들이 하나님과 동등하게 생각되는 거래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거래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 자신의 조건 위에서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또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며 또 모든 것이며 그리고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하나님과 거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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