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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행치 않음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롬 13:10) “이웃”이라는 말은 가까이 사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그가 접촉하는 모든 것에게 미친다.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모든 사람을 사랑하여야 한다. 사랑은 차별한다고 이의를 말하고 남편과 아내와 가족들의 경우를 그 예로 들른지 모른다. 그러나 가족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면 이의를 고집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정은 하나의 연합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사랑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천명을 물리치고 두 사람이 만명을 도망치게 한다”는 말에서 보여주는 바와같이 힘이 단순히 두배가 되는 것이 아니고 연합함으로 십배로 증가한다는 원칙에서 볼 때에 연합은 사랑의 힘의 가치를 곱셈식으로 증가시킨다. 만일 두 사람이 각기 인류에 대한 이타적인 사랑을 가지고 연합한다면 그들의 연합은 십배나 더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게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은 너무 높은 표준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아주 높은 일―우주에서 가장 높은 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늘에서 나온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세상에서 더럽혀진 사랑을 말하고 있지 않다. 비천하고 연약한 인간에게는 가장 최고의 사랑이 필요할 뿐이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사랑은 전쟁과 싸움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본 바와같이 사실 다른 사랑은 없다. 어떤 철학이라도 사람을 죽이는 것이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라고 말하게 할 수 없다. 군인들이 침례 요한에게 와서 그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추종자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눅 3:14)라고 대답했다. 묻는 자들이 난외주석에서 보는 바와같이 “현역 군인”들이었다. 역시 난외주석에서 요한의 대답은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지 말라”고 달리 번역하여 말하고 있다. 이 명령을 따른다면 그것은 매우 부드러운 전쟁이 될 것이다. 만일 군대가 기독교인들―참된 그리스도의 추종자들―로 구성된다면 그들이 적을 만났을 때에 총을 쏘는 대신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발견하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여 줄 것이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0, 21).

“조심하라”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 형제들이 악한 가르침을 따름으로 어떠한 위험에 빠졌는가를 보라. 믿음의 단순성에서 떠남으로 저주 아래 있게 되었으며 지옥불의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의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약 3:6). 혀가 칼보다 더 많은 것을 삼켰다. 왜냐하면 제멋대로 구는 혀가 없었더라면 칼을 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혀를 길들일 수 없고 하나님이 길들이실 수 있다. 갈라디아 형제들 가운데서 그렇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입이 축복과 찬송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다시 어떠한 큰 변화가 일어났었는가! 후의 가르침의 결과로 축복에서 말다툼으로 내려갔으며 덕을 세우기 위하여 말하는 대신에 서로 물고 삼키려고 하였다.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라는 질문 후의 8,9절은 갈라디아에서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 왜냐하면 물고 먹는 것은 바로 진리를 순종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시다. 평강의 왕이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마 12:19)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딤후 2:24)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평안의 복음”(엡 6:15)이다. 교회 안에 물고 싸우는 일이 있을 때에는 복음이 슬프게도 잘못 전해진 것이다. 어느 누구도 불화하는 마음이나 화가 나서 싸움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동안은 믿음의 정통성이나 확고함을 자부하지 않도록 하자. 불화와 싸움은 전에 믿음 안에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믿음에서 떠난 표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롬 5:1)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평강―그의 평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거룩하지 못한 불의 혀로 서로 물고 싸우게 하는 이런 새로운 가르침은 그들을 복음으로 부르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단지 한 발자국을 옆으로 내디딘 것이 넓게 벌어지게 만든다. 두 철로선이 평행하게 놓여 있는 것같지만 서서히 벌어지면 드디어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아무리 하찮은 오류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모든 악의 씨앗이 들어 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단 하나의 잘못된 원칙에 매달리면 모든 생애와 인격이 난파될 것이다. 작은 여우들이 온 포도밭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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