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왜 그 일을 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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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일을 하시는가?
왜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연약함에서 벗어나게 하셨는가? 그 여자가 자유스럽게 다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전에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일을 하도록 그녀 자신의 자유 의지를 계속 행사하도록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왜 예수께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가? 우리가 죄를 떠나 자유스럽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율법의 의를 행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육신으로 오시고 모든 육신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능력으로 강하게 하시고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 이루어져서 우리로 하여금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도록 하셨다. 어떤 방법으로 이 일을 이루시는 지는 우리가 말할 수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아신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실제로 이루어진 일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누리는 자유
아직까지도 매여 있어서 그 몸을 쳐들 수 없는 처지인데도 그 여자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라고 하신 것에 유의하라. “놓였다”라는 말은 현재형이다. 이 말씀은 곧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모든 포로된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셨다. 이 여자는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곧바로 섰다. 이렇게 할 수 없는 몸이었지만 곧바로 일어섰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들이 하나님에게는 가능하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시 145:14). 믿음은 사실들을 만들어 주지 않고 오직 그 사실들을 붙들어 줄 뿐이다. 사단이 얽어맨 죗짐으로 꼬부라져서 펴지 못하고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자유가 그에게 있다. 이 자유를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 이 기별을 멀리 전하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 모든 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소식을 모든 사람이 듣게 하자. 수천명의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는 우리를 저주에서 구속하신다. 이미 우리를 구속하셨다. 우리를 자유하게 하신 자유는 저주가 오기 전에 있었던 자유이다. 사람은 왕이 되었다. 왕이 된 자는 처음으로 창조받은 일개인만이 아니고 온 인류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되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 5:1, 2).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6-28). 그러므로 다스리는 권세가 모든 인간 남녀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통치권은 모든 인류에게 주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히 2:8)다. 이 통치권은 지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셨을 때에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사 만물 위에 인간을 두셨다(히 2:7 참조). 그러므로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히 1:10)는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곧 저주가 들어오기 전에 자유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통치자는 적어도 그의 통치권이 미치는 영역까지는 절대적인 자유를 가져야 함이 자명한 사실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는 통치권자가 될 수 없다.
지금 모든 만물이 인간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나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 그러므로 이와같이 하여 잃어버린 통치권의 저주로부터 구속하셨다.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관은 왕관을 의미하므로 그리스도의 관은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신 만물 위에 사람을 두셨을 때 그 사람이 가졌던 관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육신을 쓰신 인간으로서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마 28:18, 19)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똑같은 권세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말해주며 이것은 하나님의 엄청나게 큰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하는 다음의 영감의 기도에 의해서 확증되고 있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엡 1:18-22). 그리고 이 기도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시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라는 말씀이 뒤따르고 있다.
그리스도는 인간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고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저주로부터 구속하셨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면 역시 그와 함께 일으킴을 받았고 그와 함께 하늘에 앉게 되었으며 만물이 우리의 발 아래 복종하게 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모른다면 성령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계시하도록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우리의 마음의 눈이 성령에 의해서 밝혀져서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일어난 자들에게 하시는 권면은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롬 6:12)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인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죄를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으므로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속 곧 죄의 용서함(엡 1:7 참조)을 받았으며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을 때에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계 1:5, 6)셨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통치권인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유인가! 비록 그 가운데 둘러쌓여 있기는 하나 저주의 권세로부터 자유하다. “이 악한 세대”―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로부터의 자유! 우주(하늘과 땅의 권세)의 자유, 그러므로 “공중의 권세잡은 자” 나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단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가지셨던 자유와 권세이다. 사단은 즉시 물러갔다. 이것은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눅 10:19)이다. 하늘과 땅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를 강요하여 우리의 의지에 반대되는 어떤 일을 하도록 할 수 없는 그러한 자유이다. 하나님은 강요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어느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이것은 만물을 지배하는 권세이므로 만물이 우리를 지배하는 대신에 우리를 섬길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시인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며 그러므로 저주가 우리를 지배할 권세가 없을 것이며, 우리의 몸과 마음은 모든 기후 변화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건강은 신속하게 좋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자유를 필설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성령이 알려 주신대로 믿고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굳세게 서라. 그렇다. 굳세게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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