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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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유지인
사내들과 야크의 행렬이 개미 허리 같은 협곡을 지난다 돌멩이도 몸 뒤집지 않는 협곡에선 길과 사람이 하나로 흘러간다 첫 행상을 나서던 새벽 잠든 아이를 눈길로 여러 번 쓸어보았을 터 그 후 사내의 부풀려진 길의 행적을 가족들은 듣고 또 들었을 것이다 등짐을 휘도록 짊어진 외줄타기 달인 야크는 이곳에서 주연이다
폭풍 앞에서 종잇장처럼 펄럭이는 심장을 차향이 눌러 앉힌다 입안의 혀 굴리듯 은근한 차향은 저 느림의 시간 속에 있다고 자루를 빠져나온 차향이 길 위에 스멀거렸다 야크는 사내의 휘파람 소리 하나로 길을 건넌다 그것은 오일장의 각설이 타령이 아닌 드보르자크의 신세계교향곡 2악장 잠 속에서도 들린다
새순처럼 돋아나는 말발굽 소리가 몽환의 길을 벌떡 일으켜 세운다 시계의 괘종소리 같다 고도에선 길의 시간일 뿐 어디를 봐도 잡념의 돌탑 하나 없다 절실할 수 있을 때 더 절실해져야 한다고 눈 감고도 혈맥을 짚어가는 사내들 앞에서 길은 평지처럼 납작 엎드렸다
*차마고도: 해발 4천 미터의 길 중국 윈난성, 쓰촨성에서
시작되어 티베트, 인도, 파키스탄 등지를 거쳐
이어진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무역로이다.
시인 프로필
2011년 <시안> 신인상 등단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가정과 건강 시 해설 및 시 치유 에세이 3년 간 연재
시집 <안개가 잎을 키웠다> 문학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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