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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블루>를 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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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네 권의 수필집을 펴냈다. 각 수필집마다 특별한 애정이 간다. 눈물과 한숨과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의 증언이요 역사기록이기 때문이다.

 

<코드 블루>를 향한 마음이 유난히 독특하다. 세권의 수필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정이다. 요한을 향한 예수님의 심정이 이랬을까 싶다. 솔직해지자면 이렇다. 나는 별로 생산적인 인간이 아니다.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세상을 사는 데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어려서는 부모님에게, 결혼해서는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살아왔다. 어느 것 하나 나 혼자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끼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마이너 혹은 아웃사이더의 성향 또한 고립된 삶을 부추겼다.

 

간호사가 된 뒤 나는 실질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매 이주마다 페이 첵(pay check)을 받을 때면 마음속으로부터 전율이 인다. 내가 대견해서 죽을 지경이다. 내가 이토록 가치있는 인간인 줄 미처 몰랐다는 자각으로 행복하다. 고귀한 심신의 노동이 물질로 환산되는 비극에 슬퍼하고 통탄하기 이전, 나도 이제는 건강한 사회를 위한 일원이자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기쁜 것이다.

 

병동에서 일할 때마다 행복한 이유를 최근에 하나 더 발견했다. 세상을 알고자하는 호기심과 흥미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그 저변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나 자신을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재미였다. 시시각각 돌변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히야, 하정아 당신 대단해.이렇게 도전적인 인간인 줄 미처 몰랐는 걸.’ 싶은 것이다. 내가 남몰래 움직이면 좀 더 나은 상황으로 바뀌고 부드러워지는 환경에 머물다보니 이제껏 몰랐던 내가 드러나 나 자신도 깜짝 놀라곤 한다.

 

<코드 블루>는 생산적인 나를 보여주는 글모음이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것이니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가만히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온갖 망상과 공상과 뜬구름 같은 백일몽으로 시간을 죽이던 때와 비교하면 얼마나 대견하고 싱그러운 자극인가. 눈물과 한숨과 절망으로 하루해를 지켜보던 때와 비교하면 얼마나 펼쳐진 인생인가 말이다.

 

간호학을 공부하면서 만난 한국 여성 세 명이 그들의 진로를 바꾸어 간호사가 되었다. 행복해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엄마처럼 흐뭇하다. 내가 이렇게 영향력 있는 인간이라니, 싶어 미소가 실실 난다.

 

<코드 블루>가 출간되고 나서 타인의 눈으로 읽어보았다. 장면 장면이 주마등처럼 생생하다. 심장이 빨라지고 느려지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가슴으로 낳은 책임에 틀림이 없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책속의 이야기가 글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 깊이 닿았으면 하는 외람된 생각을 감히 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환자 한명 한명이 목숨 걸고 전달하는 사랑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새겨들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직도 이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 마음만 먹으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생명을 어쩔 수 없이 내려놓아야 하는 사람들이 마침내 도달한 삶의 명제들이 있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다. 이 소중한 지혜들을 아프지 않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 일에 조금이나마 일조한다면 이 책은 충분한 존재 의미가 있다.

 

단 한명이라도, 단 한명만이라도 이 <코드 블루>를 읽고 그래, 일어나 기운을 차리자,’ 라고 맘을 먹는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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