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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감상} 시작법 들여다보기, 의인화 / 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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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감상}

시작법 들여다보기, 의인화 / 이문재

도립병원, 암수 서로 정다운 은행나무 두 그루 사이로
검은 장의차 한 대가 빠져 나온다

하루에도 두세 번 문을 열었다 닫는
은행나무 부부가
장의차 위로 샛노란 은행잎 몇 장을 띄워 준다

인간보다 오랫동안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해 온 저 은행잎이
오늘은 죽은 자를 안내할 것이다(‘터미널 8’ 이홍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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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힘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시도다. 생각을 생각하게 하는 생각, 생각의 생각이다. 하지만 문학적 상상력은 이와 조금 다르다. 오늘의 문학이 요청하는 상상력은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일찍이 도정일 교수가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 한다>에서 규정해 놓은 바 있다. 문학적 상상력은 감정이입과 의인화라는 두 채널을 통해 활성화한다. 여기에 알레고리, 은유, 상징, 패러디 등이 보태지면서 문학적 상상력은 우주까지 인간화한다.

감정이입과 의인화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기본기’다. 감정이입을 투철하게 하라. 의인화의 대상과 맥락을 다양화하라는 주문은 습작기 시인들도 여간해서는 경청하지 않는 ‘진부한 기술’이다. 하지만 ‘망본초란(忘本招亂)이라는 경구가 있다. 기본-근본을 무시하면 혼란이 빚어진다. 시가 감정이입과 의인화라는 기본에 충실하지 않을 때, 시는 무너진다. 시가 무너진다는 것은, 독자와 소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지금 한국시는 어떤 감정이입, 어떤 의인화를 구사하고 있는가. 여기서는 의인화에 집중하기로 한다.

인용한 시는 의인화가 없었다면 성립하기 어려운 시다. 1연에서 “암수 서로 정다운”이란 구절이 은행나무를 인간의 영역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도립병원에서 영결식을 마친 한 삶이 장의차를 타고 ‘온 곳으로’ 돌아간다. 2연에서 은행나무 부부의 역할이 제시된다. 도립병원영안실 앞 문지기다. 하루에 두세 번씩 문을 여닫는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문, 그런데 은행나무 부부가 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장의차 위로 샛노란 은행잎 몇 장을 띄워주는 것이다. 자발적이다.

은행나무 부부는 은행잎 몇 장을 띄워주는 것으로 보다 확실하게 인간의 세계로 진입한다. 아니, 3연에서 은행나무 부부의 위상은 보다 높아진다. 인간의 어른, 인간의 스승으로 올라선다. 은행나무 부부는 인간보다 더 오래 살면서, 인간보다 훨씬 많은 만남과 이별, 탄생과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매년 봄이면 새 잎과 만나고,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나뭇잎과 영결한다. 은행나무는 매년 수많은 탄생과 죽음을 겪으며 수백 년 ‘살아있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죽은 자를 안내” 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1~2연의 의인화는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의인화이다. 이 의인화가 지금까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구사해온 방식이다. 그런데 3연에서 의인화가 다시 한 번 이뤄진다. 인간세계로 편입된 은행나무 부부가 도리어 인간을 안내하는 것이다. 이런 의인화를 나는 ‘역의인화’라고 명명한다. 역의인화는 재의인화, 2차 의인화가 아니다. 역의인화는 주체의 위치가 역전되는 것이다. 주어-인간과 목적어-비인간의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을 바라보게 하는 것!

그동안 모든 의인화는 여기-인간이 저기-비인간을 인간화하는 방식이었다. 풀과 나무는 물론 토끼와 거북이, 해와 달, 심지어 사과와 자동차조차 다 의인화를 통해 인간의 이야기 속으로 초대되었다. 하지만 동식물과 사물, 우주가 인간의 이야기 속으로 호명되어 재정의 될 때, 모든 기준은 인간이었다. 의인화의 여부, 이야기에서의 역할, 의미의 사회화 등 모든 과정에서 의인화의 대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수단-재료였다. 의인화의 주체는 입법자이고, 의인화를 당하는 객체는 피지배자였다. 이 얼마나 낯익은 구도인가. -후략- (시인, 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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