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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의 사막(시와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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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의 사막

강위덕 


애리조나의 사막은 모래로 된 바다같다

아편냄새 풍기는 햇살이

바다의 은유에 깊이 천착한다

네이멍구*에서 날아온 황사가 햇살의 알갱이를 싣고

어디론가 온 힘을 다해 사막을 끌고 간다

연두 빛 우거진 수평선 끝으로 노 젓는 소리가

억 천의 모래알을 가동시킨다

모래알이 베어링처럼 바람에 쓸린다


젊은 날의 알갱이를 다 적시고도 남을

외로움도 바람에 쓸린다


 


* 쿠부치 사막과 함께 황사의 발원지


 


해설

저는 딴 재주는 없어도 바람을 자르는 재주는 있습니다.

애리조나의 사막 중심에 서 있으면

바람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의 몸칼에 견디지 못하고 두 갈래가 됩니다.

반분된 허공을 떠다니는 곡예사,

경쾌한 스텝, 불거진 근육, 쉼표 없는 시선들, 명멸하는 궤적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염원을 묶어 쏘는 그들의 화살이

아쉬움과 탄성으로 동서를 오가는 곳

스타카토, 모데라토, 안단테의 선율이 가쁜 숨 토해내는

연주회스매싱 꽂히는 시선을 먹고사는 연주자와 관객은

하나가 되고 저편,

튕기듯이 쏟아지는 섬광

소나타의 날개로 퍼덕였던 기억의 편린들이

팽팽한 사선너머 보란 듯이 부활 합니다

바람이 갈라진 2악장엔 호랑가시나무 열매처럼 익는

공원 하얗게 비상하는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재당도 초시도

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시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갈라진 바람을 쪼입니다.

시어에서 맴도는 묘한 운율,

얼핏 촌스러운 시어의 평범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신선함과 세련됨이

가슴에 먼저 와 닿습니다. 

바람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것들이 모여

작지만 따뜻한 바람을 쏘이고 있습니다.

새끼 오리, 헌신짝, 소똥, 갓신창(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끈의 한 종류),

개니빠디(개의 이빨), 너울쪽(널빤지쪽), 짚검불,

헝겊조각, 개터럭(개털) 등

시 속에 등장한 모든 생물과 무생물들이

하나의 가족 개념을 이룹니다.

바람은 세상으로부터 업신여김 당하고

쓸모없는, 그래서 더욱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받아서 바람으로 감쌉니다.

그리고 바람 주위에는 버려진 물건들만큼이나 초라한

인간 군상들과 강아지까지

누구나 와서 따뜻함을 분배받으면서 온몸을 쐬고 녹입니다.

바람은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서 타닥타닥 바람을 공급합니다.

바람을 쐬고 있는 이들은 신분의 높낮이,

나이나 가족 나아가 인간과 동물간의 구분도 없습니다.

바람이라는 구심점을 향해

둥글게 모여 앉은 모두가 상하좌우 경계 없이 평등합니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가슴 속의 서러움마저도 녹아내리게 하는 것이 바로 바람입니다.

고통스럽고 서러운

몽둥발이(딸려 있던 것이 다 떨어져 나가고 몸뚱이만 남아 있는 사람)가 된

할아버지의 ‘슬픈 역사’마저 내적 화해로 녹여버리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늘 성찰하지 않으면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보는 사람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사람입니다.


젊은 날의 알갱이를 다 적시고도 남을 외로움도 바람에 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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