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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새우잠 / 정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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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림문학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10.02.12 01:45 조회수 6,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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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잠 / 정영근

어이, 추워. 새우잠 잤네. 이불이 어디로 갔지? 곤한 잠에 이불을 더듬어 덮었다. 음, 따스하구만. 따뜻해. 아주 따뜻해 하고 난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좋아했다. 이러다 보니 잠에서 깨고 정신이 들었다. 어제 갔던 겟세마네 길이 마음에 떠올랐다. 그땐 햇빛이 유난히 빛났고 참 따스했지! 그 런데 밤이 되니 이렇게 춥거든…예루살렘 호텔이 말야 하면서 못 마땅하다는 듯이 또 중얼거렸다. 아, 예수님은 얼마나 추우셨을까! 겟세마네 야밤에… 아, 예수님이 새우잠 자셨겠네! 싶었다. 뜻밖의 생각이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하나님과 많이 대화하셨다 한다. 실은 겟세마네는 예수님의 집이나 다름없었다. 나사렛에서 홀로 계신 어머니 집을 떠나 예수님은 이렇게 노천에서 많이 지내셨다고 전한다. 이슬 막을 지붕도, 바람 막을 널판지도, 그리고 그가 누울 한 자락 자리 마져도 없는 겟세마네, 그저 주님은 거기서 주무셨나 보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누우면 좋을 벼게 하나쯤 드렸을까? 그는 밤이면 예사로 거기서 기거하셨다. 겟세마네가 하늘 궁정에서 오신 그분의 거처가 되었다니, 황송하게도 나는 각진 호텔 방에서 잠자면서도 새우잠 응석부리다니…

예수님은 그 몸이 얼마나 추웠을까? 봄, 여름 지나고 가을, 겨울이 오면 도대체 주님은 어떻게 지내셨을까! 정녕 새우잠 자셨겠지! 하늘에 계신 주님은 동상자국은 없으실까! 사람은 은혜를 많이 잊는다. 어쩌면 일상으로 많이 준 것이 그 큰 은혜를 많이 잊게 한 것 같다. 따스하게 덮고 자는 이불의 은혜는 어떤가! 어쩌면 그 따스함이 일상이고 보니 저절로 그것이 망각된 셈이다. 그러나 정작 보라. 이 이불이 이렇게 거친 날이면 추워서 새우잠 자는 것을…몸은 조여 오고 심줄과 핏줄을 마구 짜는 것만 같은 것이다.

새우잠이란 뭔가?  불편하게 모로 누워 몸을 안으로 한사코 굽히는 자세의 잠 행위이다. 옹색하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추우니깐.  내 장의 그나마 온도를 보존해야 그래도 살겠기에 추위에 대한 본능적인 항거행위이다. 인성을 쓰신 예수님도 그랬을 것이다. 분명히 예수님은 항상 새우잠 자셨을 게다. 오, 이 지상에 오신 예수님, 인류의 푸대접과 외면을 무엇으로 다 갚을 것인가 싶다.  주님은 신성이 인성을 옷입고 인성이 신성을 둘렀다. 물론 이원론이 아닌 신인합체 이시지만 어떻게 그 신성이 인성의 따스한 이불이 되어주셨으면 몰라도 그렇게 지내실 수 있었을까  의아스럽다. 그렇지만 신성을 저미는 인성의 추위와 아픔이 오죽했으랴! ‘겟세마네'는 히브리어 ‘깉세마니’에서 온 말로 ‘기름틀’이라는 뜻 이 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시니 기름틀처럼 그를 조이는 일 많았고 추위에 잠 못 이루게 한 게 아닐까! 주님은 진액을 쏟으셨다.

나는 이 일을 생각하다 보니 더는 견딜 수 없어서 잠을 벌떡 깨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말았다. ‘주님, 저는 주님의 사생활 뒷쪽을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추우셨던 주님, 송구합니다. 어찌 하리이까! 하고 기도할 따름이었다. 오늘 주님 나신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면 나도 새로 나고 싶어졌다. 주님께 대한 만회의 길이란 항상 주님을 닮고 주님의 심정을 이해 하는 길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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