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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잇몸으로 산다 / 고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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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몸으로 산다 / 고대석 

 

    인생길은 순탄치 못하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하얗게 태어난 치아가 제 수명을 다 못하고 퇴출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어떻든 남는 것은 잇몸뿐이니 그것으로 살 수 밖에 없는데 그러자니 잇몸의 기능만으로 살든가 아니면 잇몸을 의지한 도구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불편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원치 않는 삶이 되는 것이다.

    오래 전 30대 초반인 미모의 백인 여성이 달랑 잇몸만 가지고 찾아 왔다. 너무 일찍 모든 치아를 잃어 버렸다. 잘 맞는 틀니를 만들어 끼고 돌아가는 날 그녀는 새로 태어나는 기쁨과 만족감으로 그 뒤 몇 년 동안이나 감사의 표시를 전해 왔다.

    내 어릴 때 만해도 이가 없어 호물락 입이 된 노인들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었다. 그 분들은 잇몸으로 살 수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치아를 대신할 수 있는 기술들이 발달해 있다. 우선 치아를 잃게 되는 원인들로는 치아가 상했거나 잇몸병의 결과이든가 사고로 인한 것일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간에 뼈가 든든히 남아 있으면 치아를 대체할 방법들이 있다. 고정 틀니로서 크라운 브리지를 해 넣을 수도 있고 부분 틀니나 완전 틀니로 해 넣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최신 기술로 시술되고 있는 치아 이식은 더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시술 방법들은 조건충족이라는 한도 내에서 성취된다.

    언젠가는 줄기 세포를 이용한 방법으로 새 치아가 생겨 나오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니 기대해 볼 만하다.

    의술의 기술적인 면이야 어떠하든 간에 혜택 받는 사람의 마음이 문제일 것이다. 위의 방법들은 수리하여 그 기능을 어느 정도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것인데 어떤 분들은 이것들이 원래의 치아 같기를 기대하기도 하며 유지관리를 게을리 하기도 하여 따라오는 결과에 대해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어느 한인 노인 분은 서너 개 남은 치아를 뽑고 완전 틀니를 넣었다. 삼일 후 돌아온 그 분은 잘 되지도 않을 것을 왜 시작했느냐며 역정을 발하셨다. 시작 전 드린 모든 설명은 다 지워 버리고 당장의 고통에만 분노하는 것이었다. 적당한 기다림이 결여되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 되었다.

    다른 경우도 있다. 치과 대학 학생 때 일이다. 틀니 만드는 과정 중 제일 마지막 단계인 왁스 잇몸에다 이를 심은 중도 틀니를 환자의 입에 넣어 잘 맞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다. 확인 후 학생인 나와 환자는 모두 흥분되어 그 틀니를 빼 내는 것을 잊었고 환자는 돌아 갔다. 얼마 후 틀니를 찾던 나는 환자와 연락도 되지 않아 속 태웠다. 두어 시간 후 되돌아 온 환자는 다 녹은 왁스 틀니를 내 놓으며 웃었다. 고급 식당에서 점심으로 뜨거운 수프를 먹고 있는데 틀니의 왁스가 흐물흐물 녹으며 플라스틱 이빨들이 수프 그릇으로 주루룩 떨어져 내렸다는 것이었다.

    황당한 경우인데도 웃으며 자신이 실수를 했다고 사과도 잊지 않는 것이었다. 사과는 내 몫이라고 인사하고 더 정성껏 마무리 하여 그 백인 할머니를 기쁘게 해 주었다. 잇몸으로 사는 데는 고통도 있고 인내심도 요구되며 별별 예기치 않은 일들도 생기는 것인가 보다.

    경기가 나빠 잇몸으로 살 듯 한다고 한숨들이다. 이럴 때일수록 잇몸으로 사는 방법과 지혜를 터득하여 서로에게 활력을 넣어 주면 좋겠다. 친절로써 좋은 상품을 소개하며 이해와 인내로써 타당한 결과를 끌어내는 지혜를 찾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상도와 상관없이 사람 사는 원칙이라 생각한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먼저 대접하라'는 말씀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한국수필' 신인상 등단.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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