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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시와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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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강위덕

 

살아있는 자들은 집이 있습니다
죽어있는 자들도 집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자들은 문패가 적지만
죽은 자들은 문패가 큽니다
방랑하는 자들도 집이 있습니다
미로의 중심은 산이 집이고 바위가 집인데
뒤뜰에는 산새 울고 들 꽃피는 소리가 다소고시 들립니다
대문도 없고 문패도 없지만
가난한 자의 열린 집은 대낮같이 밝습니다
집안은 없는 자의 고독이 켜켜이 쌓여
밤에도 빛나는 구술처럼 반딧불처럼
외로움이 반짝입니다
몸 없는 바람처럼
마음 없는 구름처럼
방랑자의 집에는 문패가 없습니다.
 

 

해설
 경주시 안강읍에 소재한 옥산서원에서 안쪽 계곡으로 좀 더 들어가면

회재 이언적의 고택 사랑채를 만날 수 있는데 이를 독락당이라 합니다.

독락당은 이름 그대로 홀로 즐기는 집입니다.

소인배 김안로의 미움을 사서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향리로 들어와 독락당을 일으켜 산과 물을 벗 삼아 즐겼습니다.

선생의 고매한 학문과 정신을 받들어 지금도 성균관 대성전에는

동방오현의 이름으로 그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홀로 즐기는 집은 벼랑꼭대기에 있고 오르내리는 길이 없으며,

대월루는 세상이 아닌 하늘의 달을 마주 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주인은 내려오는 길을 부숴버렸습니다.

이를테면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가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 형국입니다.

은둔자를 자처한 셈인데

 ‘까마득한 벼랑 끝에’ 고절의 날을 세워 수직의 정신만을 품고 달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락당은 어느 누구도 감히 범접치 못하고

스스로도 부수지 못할 마음의 누각입니다.

은둔은 얼핏 일상을 회피하고 세상을 피해서 도망치는 소극적인 행동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세상의 많은 오류와 위선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더 깊고 명징한 삶의 예지를 키우기 위한 적극적 행위에 가깝습니다.

요즘은 ‘잠수’라고 이름 붙여 더러 조롱 비슷한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은둔자는 오히려 이러한 세상을 조롱합니다.

세상과의 궁합이 맞지 않아 세상의 질서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선택한 독야청청의 길은 쉬운 길이라기보다는

고통스러운 자기와의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정신의 높이가 견고하지 않으면 즐길 수도 없으며 견디기도 힘듭니다.

이 ‘독락당’은 시인이 추구하는 세계의 모습과

시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정신의 산정을 의미합니다.

그 벼랑 끝이 눈부신데,

깨끗이 독락당으로 들어앉으면 딱 좋을 낡은 정치인들이

그 기회마저 놓치고 구차하게 버티다가 몰락하는 꼴을 보는 것은

우리로서도 보기가 불편합니다.

겨울나기 무구덩이를 팔 때나

텃밭에 도라지를 캘 때나

두근거리는 가슴 깊숙이 참을성 없이 싹둑 끊어질까 삽날로 살살 어르고 달래며

연근 뿌리 끝가지 캐보고 싶은 심정으로

詩의 구근을 끝까지 살리려 조심스럽게 마지막 손질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대와 나 사이 어딘가 한 삽 폭 떠낸다면

명징한 물소리 콸콸 흐를 막힌 관계의 물꼬들 쌈박하게 뜨고 싶기 때문입니다.

문패도 없이 하늘을 지붕 삼아 떠도는 방랑자는

딱 하나 마음이 편하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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