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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움직여도

이마에서  콧 - 등을 타고 

땀 방울이 굴러 내립니다


그런데 앞 마당 

잔디 밭에  잡초들은 더위도 모르는지 

서로 서로 다투어 가며

키만 쑤 - 욱 쑤 - 욱 자라고 있습니다


그 옆에 작은 것들은 

하늘이 안보인다고 

구름이 보고 싶다고 소리 소리 지르고 있군요

나는 

얼른 론-모우어 가지고 

많이 자란 풀들을 키작은 것과 꼭 같이  

짤라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앞마당은 조용해 졌습니다.


하여

교회안을 들여다 보았지요

입만 자란 잡초들이 가득 채워저 있었습니다.


오, 주여 

성전을 정결케 하시던 것처럼........


아, 벌써 청소를 하고 계셨구만요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





*1   시 51:10                                                                                   6-22-15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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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경님의 댓글

no_profile 장도경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목사님 (저의 은사님)의 건강이 엄청 좋아 보입니다.
거의 단축 바라톤 정도로 뛰어도 잠시 땀이 날려다 말아버리는 저의 체질에 비해서

"조금만 움직여도" 의 시작은

한없이 부럽게 바라보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성전정결의 대청소까지 하시려면
얼마나 땀이 흐를가요/


부러움과 경탄에 젖은 잎파리가 벌써
멍이들고 있나봐요.


어쨋거나
잡초 소생이 멀리서 인사드립니다.


여기는 점점 인적이 드문곳으로 변하고 있읍니다
아마도 저같은 잡초가 무성하기 때문이겠지요.


비록 주님이 성전을 정결케 하신다 해도
전처럼 많은 이들이 들어와서
빗자루 질도 좀 하면 좋겠는데


시골생활 떠들어 싸면서 이리도 게시판 보다 조용하고
쇠비름(?)도 많이 자라는 글동네에 왜 들어 오지는 않는지
참 모를 일입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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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삼 주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안 삼 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지원 며칠전 옛날 앨범을 뒤지다 보니
1961년에 찍은 사진 같은데  충무 학교에서 계단에서내려와
사택으로 들어 가기전 돌담 앞에서 장목사와  내가 사진 찍은 것이 하나 있고
그 때 학생들 모두 다 있는 사진도 있고 해서 그 것 보면서 옛 날 생각 했지 
그러고 보니 50년전이네. 목회에서 물러나서 여기 있는 지도 6년이 지났오
그런데 목사라는 신분이 여러가지로 코가꿰어 부자유 서럽소
나는 평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목사도 아니고 뭔지 모를 때가 많구료
그러나 내 나머지 생활에, 하고 싶은 것, 하나님과 약속한 일 그것을 하고 지나고 있소 
나는 아직도 장목사 앤드루스 다니고 있을 때 나에게 해 주었던 말 기억하고 있오
그 때 ㅇ ㅅ ㅂ 목사도 함께 있었지
그럼 다음에 기회 있을 때 예기나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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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경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장도경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지원 목사님 아니 선생님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충무 삼육국민학교에 부임하셔서 오신 해가 아마도 1961년 제가 열살이던 시절이네요.
바닷쪽으로 창문이 있었으나 바다보다 먼저 화단이 보이는 교실이었습니다.
일제의 잔재라고 보이는 측백 (향) 나무 몇그루와 노오란 난초꽃이 피어 있던 그 화단 말입니다.

공부를 하던 기억보다는 언제나 벌을 받았던 기억만 남아있는 교실이었고
뎃상을 위한 아그립바 각상처럼 반듯하면서도 각이 두드러 졌던 선생님의 얼굴이 
지금은 안타깝게도 많이 무너져 보입니다.


알곡처럼 계절따라 영글어 가는 탐스러운 떡잎도 보이지 않는
언제나 개구장이 내지는 문제아로 자라던 기억을 지울 수 없어서
이제사 뒤돌아 보면 그때 얼마나 선생님들을 실망케 했을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 가라지 같은 것을 뽑아 버리지 아니하시고
오직 좌충우돌이라는 혈기만 왕성하던 줄기에 당신의 알곡을 넣어주려고
나의 하나님은 무던히 힘을 쓰시고 계십니다.


아직도 열매가 보이지 않는 상태로 다만 날뛰는 혈기만은
줄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세상의 주입식 교육이라던가 주입식 종교를 통해서 신앙을 하고 싶지 않다는
궤변 하나 붙들고 살다보니 그 궤변이 알곡보다 훨씬 크게 자라나지 않았나 하고
스스로 염려될 만큼 이론이 무성해 졌읍니다.


제가 선생님이신 목사님에게 비록 앤드류스에서 라도 무슨말을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나지만 어떤 말을 했을것이라는 희미한 기억이 살아나고 있읍니다.
그때 "그래" "그래볼께" 라고 하는듯한 얼굴도 지금 기억하고 있습니다.


늘 성경공부를 가르치기 위하여 고심하시고
또 은퇴후에 목사라는 직함으로 행동의 반경이 독방처럼 좁아지는 어려움을
아마도 저는 선생님 보다 더 빨리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추억을 반추하는 이빨은 허물렁 허물렁 거리는데 그 입속에 뱅뱅 도는 추억이란
아직도 시퍼렇게 싱싱하기만 합니다.


죽었다고 소문을 들은 허 찬실이
그리고 그후에 행방을 모르는 공 명숙이가 초등학교의 동창일 뿐인데...


혹시 기억하십니까
성극 경연대회에 제가
"탕자" 를 연출하고 그 주인공을 했던 장면을...


젊어서 돌아가는 탕자가 그래도 부러운 죄인 이지만
이제라도 지팡이 짚고 돌아가는 해묵은 마음에
내 아버지는 맨발로 쫓아 와서 좋아하시고 목을 껴안아주고
송아지도 잡아 줄것이라는 믿음은 젊은이 못지 않다고 느낍니다.


이미 그렇게 돌아가서 살고 계신 선생님께서
제가 찾아가는 길목에 그분과 함께 나오셔서 HUG 해 주실것을 믿습니다.


일전에 콜럼비아에서 만나본 따님은 선생님을 많이 닮았으나 더 많이 웃는 아름다운 얼굴이었읍니다.
사위와 함께 교회의 기둥으로 봉사하는것을 보면서 선생님 생각 많이 했더랬습니다.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안에서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선생님의 제자됨이 부끄럽지 않도록 나머지 여정 빛나게 해 주실것도 믿습니다.


시카고에서

제자 장 도경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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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삼 주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안 삼 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지원 나를 선생이라 불러주 니 고맙소 
내가 충무에 다시가면 인제는 벌 안씨울께요


세월이 흘러 갈 수록
예수님 다시 오시는 것이 더 빨리 될 것 아니오 
그런데다가 
요새 세상 되어가는 꼬라지가
소돔 고모라가 다되었다 생각이 되요


그러면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예수님 오신다 말이요


장목사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 기요


내 먼저 준비하고
내 가족과 이웃이 준비되도록 도와 주어야  할 것이요


계7:13-14과
마24:15-33 말씀 드리겠소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들리거든, 듣게 되거든 
다음 할일은 카스다 계시판에 올려서 필요한자들이 모두다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 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가 되게요
다음 숙제는 다음에 또 드릴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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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경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장도경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지원 같이 늙어가는 듯 황혼이 드리운 시간속에서
오십년 해묵은 관계 하나를 붙들고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이 편지가
어떻게 보면 밀레의 만종처럼 붉게 물드는 그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부부가 기도하는 그런 광경이 아니고 사제지간에 손잡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바꾸어 본.


제 일생에서 아마도 가장 어지럽게 쏘다니고 좌충우동하던 시절에 만난 선생님이 십니다.
그 당시에는 공부도 안중에 없었고 신앙도 안중에 없던터라 사실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도
그리 많지도  않았으리라 하고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그렇게 보니 선생님은 그때부터 지금껏 사뭇 진지한 얼굴과 마음에 변화없이 일념으로 살아 오시고

저는 롤러 코스터를 타는듯한 변화무쌍한 격랑을 거쳐 이제나마 조금씩 평안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숙제를 내어 주신다 하니
우리 사이엔 죽을 때 까지 사제지간으로 가야할 그런 운명적 만남이 되었군요.


초등에서 대학까지 한번도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기억이 다시 떠 오릅니다.


카스다엔 제 마음이 아직도 평안한 곳이 되지 않습니다.
온갖 신학이 난무하는 그곳이지만 그곳의 어떤 신학도 제 마음에 평안을 선물하지는 않습니다.


혹 신학의 어느 부분이 덜 익은 것들이라 해도
그 신학을 담아내는 신앙인들의 마음이 신사적이기를 아직 희망해야 하는 곳입니다.
신사적이기만 하면 비록 덜익은 과일이라도 거기서 다시 익는 과정이 될 수도 있을것인데.


그래서 떠난 게시판이고 다시 돌아갈 아무런 동기도 떠 오르지 않습니다.


때로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무척 다정하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에 벗어난다고
생각이 들면 이따위 관계정도는 청산 할 수 있어! 의 의미가 충만한 곳입니다.
그래서 이웃 동네를 (아마도 사마리아쯤으로 생각하는) 집창촌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하지 않나요?


누군가 여기 카스다에서 선한 사마리아인 한분 그곳으로 내려와 집창촌 치료나 정화에 힘쓰실 수 있는 날을
꿈꾸어 봅니다.


밥퍼! 목사보다 못해서야 어디 십사만 사천일 수 있나요?


숙제에 관한한 아직도 문제의 학생인 제자가 죄송한 마음으로 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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