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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전성시대


구약의 개념속에는 여자는 숫자속에 포함이 되지도  않는다.
내가 여자라면 구약을 한번 뒤집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구약은 여자들에게 심한 성차별을
하고 있다.
문자적으로 읽는다면 그렇다는 말이다.우리교회는 거지반 문자적으로 읽고 있다.
그렇다면 아직도 우리 교회는....

그 성차별에 앞장을 서신 분이 하필 하나님이시다.
이를테면,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로 선언 하신것이다.
원어로는 마샬이라는 이 "다스린다"는 의미를 미쳐 설명하기도 전에 이 성경절을 같이 읽는것을 마지막으로
꽤나 총명했던 유학생 여자분과의 성경공부도 끝이 난 경험이 내게 있다.
구약이 갖는 독특한 주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지금도 재림교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여자목사 안수불가"라는 구약적 성차별 앞에서 전전긍긍 하게 되는것이다.

그 구약성경의 힘을 빌어서 아직도  잔존하는 남자 나부랭이들을 십수년전  예루살렘에서 보았다.
유대인의 회당 (synagogue) 에는여자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통곡의 벽에도 여자들이
출입하지 못한다. 비록 이방의 남자들은 들어가게 할찌라도.
그러니 이방인보다 못한 것이 이스라엘의 여자들이라는 말이다.

성경상 특별히 구약에서
남자의 남자됨이 확인되는 예식이 할례이다.
아브라함에게 천사들이 방문을 와서 독자 이삭이 내년 이맘때에 태어날 것인데 그것에 앞서서 해야 할 언약의
예식을 소개한다. 그것이 할례이다. 보충 설명을 하자면 우리는 선듯 이삭이 백세에 낳은 아이인줄로만
이해하지만 그 아이는 동시에 할례를 받은 후에 제일 먼저 태어난 제1호의 인물이었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오늘은 거기로 들어 가지 않으려 한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구약의 시나리오는 인류의 씨로 선택이 되어 창조된 아담이 범죄하므로 그의 씨에서 나오는 모든
인류는 자신들의 선택하고는 상관이 없이 똑같이 죽어야 하는 연대적 심판을 받게 되었다.
로마서 5장의 말씀처럼 한사람의 범죄로 온 인류가 죽음의 시간표를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창조주간에 만들어진 모든 피조물들은 사람을 포함해서 "종자 즉 씨"라는 개념으로 출발했다.

사람은 하나님이 먹으라고 하는 과일만 따 먹었다면 죽지 않도록 되어있던 그 종자의 원래 성분이

불순종 한번으로 변질되어 결국 죽게되는 생노병사의 종자로 변종이 되었다.


그런   선악과 아래에서 행한 딱 한번의 행동으로 반드시 죽음이 일어나는 씨-종자로  변종이 되었으므로

다시 죽지 아니하는 종자로 변이를 원한다면 딱한번의 순종으로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씨-종자를 기다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첫째 아담의 딱 한번의 행동 (선악과를 따먹은) 으로 "죄"가 모두에게 전가된 것이라면

둘째 아담의 딱 한번의 행동 (십자가)으로 "의" 가 이를 믿는 모두에게 죽지 않는것-영생 으로 전가 (imputation)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여자의 후손" 이란 복음적 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씨의 성분이 망가진 이 남자 (아담)의 씨에서 나오지 않는
다른 씨의 출현이 있을 것인데 그 씨가 비록 생노병사의 저주속에 갇혀있는 여자이지만 오직 씨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영생" 이라는 씨를
하와라는 여자가 받아서 메시야 (구주)가 출현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 이 할례의
 언약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아들 이삭을 낳기전에 시작된 이 할례는 그 의미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비록 백세가 된 죽은 아브라함의 몸에서 믿음이라는 의미로 나오게 되는 약속의 아들이지만 그 백세의
남자의 표피를 잘라내고 정결이라는 의미와 약속이라는 의미의 예식이 선행된 다음에 태어난 자가
독자 이삭이다. 그 할례의 예식도 없이 나온 자식이 시내산을 표상한 하갈을 통해 나온 율법의 분신인
이스마엘인 것이다.아마도 이스마엘이 있었음에도 이삭을 독자라 부르게 된것은 할례의 자식으로는
이삭이 유일 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그 예식이 메시야의 출현까지 이어지고 예수께서 오신 이후에야 다른 예식으로 바뀐다.      
첫 예식의 목적이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독생자 이삭이 오셨다는 말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초림을 위한 예식이다. 남자에게만 주어진 예식이다.
그 예식이 말하는 또 하나의 기별은 다른 시작 즉 다른 씨의 시작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반드시 안식일이라 해도 상관없이 여덟째 날에 실행해야 하는 예식이다.
성경에서 팔이라는 숫자는 노아의 홍수에서 등장하는 여덟 식구와 여덟째 아들인 다윗이라는 새로운 왕조의 시작등
할례 또한 팔일만에 하게하는 새로운 시작을 예표하고 의미하는 것이다.

독자 이삭에게서 나와서 광야 교회의 모형이 되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야곱이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요단강의 전신 (상류)인 얍복강을 건널때 하나님은 그와 씨름하시던 끝에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고 또 야곱의 환도뼈를 뿌러뜨리는 특별한 작업을 하신다.

환도뼈 (원어로는 Zera) 즉 씨방을 감싸고 있는 남성의 바로 아래의 뼈를 부서뜨리시는 것이다.
그 의미란 이런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비록 야곱은 오실자의 표상이지만 남의 발목을 잡는자라는 이름과 그러한
씨를 가지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면 안된다고 하나님이 생각하신것이다.

참 신기한 사실은 그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는 한번도 출연하지 않았던 딸 디나가 갑자기 출현하더니
그 땅의 할례받지 못한 자들로 부터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이어서 일어나는 할례의 피바람도
한번 깊이 새겨볼 일이다.

어쩌면 사단에 유혹당한 하와처럼 할례받지 못한 그 땅의 남자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나갔다가 강간을 당한 
그 디나가 신약에서 교회로 시작되는 부정한 여인들의 집단을 상징하는 여자의 전성시대를 예표하는
예고편인지도 모른다.

성경은 요단강을 깃점으로 두개의 다른 예식을 이야기 하고 또 남자와 여자의 달라진 위상과 운명을 구분하여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남자와 여자의 biological 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것이 아니다.
이런것에서 영생을 소개하기 위한
상징과 표상과 비유를 읽어내지 못하면 종교적 억압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다.

혹시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의 남자들은 그 구약적 제도의 일부를 고수하면서 그 속에 함께 있던
"남자의 전성시대" 를 꿈꾸며 침례 (씼어 주시는) 라는 예식 보다는 구별이라는 할례의 예식을 더 선호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적어도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는 우월하고 하나는 열등하다는 말을 하려고 한 일이 없어 보인다.
적어도 성경은 남자와 여자를 말하기 위해 시작한 이야기가 아니고 한 남자의 타락 또 한 남자의 순종을
이야기 하려고 그렇게 방대한 내용들 속에서 반복하고 발전되는 십자가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것을 정리 한다면
아담이라는 남자의 씨는 죽음의 씨가 되고 말았고 그 씨로 인해서 구약의 모든 남자들이 무덤으로 들어가는
역사의 이야기가 구약이다.  다른 남자인 둘째 아담 (썩지 아니하는 새로운 씨)이 오실때까지 순종하며 기다리는
예식이 할례이다. 둘째 아담이 반드시 할례를 받은 백성에게서 나올것이라는 예표이다.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가 나타나면서 할례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이제는 둘째 아담으로 가는 정결한 예식
즉 침례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우월한 남자를 인정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가 아니라 오직 종자 즉 씨라는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서
주신 제도가 구약의 제도이지만 그 제도 때문에 남자됨의 문자적 우월감에 갇힐  지금의 재림교회의 형편들을
하나님은 보지 못하신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신약의 시대는 여자의 전성시대라는 것
야곱의 열두 아들들 즉 남자들의 전성시대에서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 남자한테 강간을 당한 디나의
전성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다는사실을 알게된다 해도 "여자의 안수는 안돼!" 하실 참이신가?
그럴테면 이번 대총회에 회기에 앞서서 참석한 재림신도의 모든 남정네들은 침례말고 다시 할례를
먼저 받는 일들이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침례의 예식은 부정한 여자들에게 주었던 흐르는 물 (요단강의 의미)에 씼었던 모세의
율법에서 나온 예식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모두는 이제 그리스도라는 신랑을 기다리는 교회요 여자들이라니까.
할례받아야 할 고놈 (?)이 이젠 우리 영적인 몸에 아예 없다니까.

아직 메시야가 오시지 않았다고 믿고 있는 유대인들의 할례는 이해가 가지만
이미 메시야가 오셨다고 믿고 있는 재림교회의 남자 지도자들이 왜 그리도 할례적
개념에서 자유롭지가 않고 틈만나면 유대적으로 돌아가고 싶으실까?
그렇다면 유대인처럼 지금도 함께 예배하지 말아야 한다.
문자적인 남자의 개념에서는 유대인들이 여전히 앞서고 있다.
안식일 준수라는 개념에서도 앞서 있는 것처럼.
      
다시 노파심에서 한마디 더하고 싶은것이 있지.
돕는 배필로 만족하지 않고 아담 즉 남자가 되고 싶어서 율법 운운하는 자들이 있으면
그자들이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바로 고 독사를 닮은 애기 독사들이다.

칭의에 있어서도
성화에 있어서도
구주를 닮아 가자는 일에도
여자를 만드신 원래의 목적인
돕는 배필의 특권 이상으로 앞서가는 자들은 배암이다.



구약은 말한다

우리의 남자 아담안에 있는 죽은 씨라고.


신약은 말한다

우리에게 다른 남자가 다시 왔다고.

그속에 있는 씨는 살아있는 씨라고


그 남자 이외에 다른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빨리 죽여야 한다.
이제 새 이스라엘은 할례받는 남자들의 역사가 아니고 침례를 받는 여자(교회의 표상)들의 역사이다.
이 역사를 거스려 이미 한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로 상징한 교회에서

남자의 역할을 억지 주장하고 있는 이 모순적 남자 나부랭이들을 하나님이 어찌 하실까?


구약에서 하나님은 남자를 표상으로 사용하셨다.

더도 덜도 아니다


이제 예수앞에 선 교회안에서

남자가 무슨 유세인가?????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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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삼 주님의 댓글

no_profile 안 삼 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장도경 목사님 
글도 미남이요
오랫만에 좋은글 읽는 것 같소이다
그런데 에덴동산 교회에서의 시대는 여성 전성 시대 같은데 ? 
하와가 아담을 손에 쥐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하와 전성 시대로 보면 인류를 사망으로 가도록 행정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대로  하와는 아담의 돕는 배필이었지요 
그다음 신학적인 문제는 아주 멋있게 잘설명해 주셨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 많이 써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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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경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장도경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지원 아이고 선생님!
학생의 글이 선생님에게  생각할 만한 글이었나요?
하기사 하나님의 보좌에서 부터 시작된 하극상이
그의 사주를 받은 하와가 남자를 아래로 끌고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로 끌고 가는 광야 교회의 이야기

적반하장의 역사가 우리 죄인의 역사 아닙니까.
거기에 한 제자가 한 선생님의 시선을 끌고 다시 그리로 내려가고 있는
이 풍경도 그렇습니다.




손으로 받는 할례와 물로 씻는 침례 사이에서 우린 생각이 모자라지 않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둘다 정결예식입니다.
하나는 남자 (구 이스라엘-광야교회)의 예식
그리고 또 하나는 여자 (교회)의 예식.


물로 침례를 받은자는 더 이상 남자가 될 수 없읍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라는 신랑을 기다리는 여자들입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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