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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와 증세치료 (교회 행정에 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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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합회의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이 되었고 그 지도자의 인격적이고 양심적인 바탕이 여타의 후보에 비해

월등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여기저기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는 축제같은 흐름이 새냇물처럼 흘러 가고 있다.

앞에서 쓴 글에서 종달새 수컷은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가장 큰 소리로 울어야 하는 사명이 있고

암컷 종달새는 그 수컷의 울음을 들으면서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생명속에 온기를 넣어서 그것들이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또 다른 사명을 간수하면서 둥지에 갇혀서 산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연합회의 지도자가 전임이나 후임이 인격적으로나 양심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는 분들이 아니다.

이제 더 양심적이고 더 인격적인 지도자가 선출이 되었으니 교회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시는가?

그것은 다만 전임에 대한 모욕일 뿐 아니라 행정이라는 (소위 다스림이라고 하는) 대단한 능력 (카리스마)과 기능이 필요되는

핵심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높은 곳에서 소리지르는 수컷의 사명에만 모든 관심을 표명하고 있을 때 그 아래 어디에선가

수컷하고는 생각이 다른 암컷 종달새들이 수컷 종달새나 주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아성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알아야 한다..

어쩌면 새로운 지도자가 인격적이고 양심적일수록 그렇게 영악하고 그렇게 노골적인 땅아래의 암컷들을 상대해서

싸우는 지략이 없거나 용기도 결여 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을 한번쯤은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의 인격이나 기능은 양면을 늘 갖게 된다. 온유하고 겸손하라는 의미를 예수의 것으로 받아 들이지

못하고 오직 공자의 것으로 받아들인 상투어가 난무하는 교회가 되고 있다. 공자의 개념으로 쓰여졌다면 그 다른면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을 말한다. 나의 아버지는 실상 온유와 겸손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온유하고

겸손하셨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행정적으로 무능하셨다. 예수의 겸손과 온유의 다른 면은 선과악의 대쟁투에서 환히 비추이듯이

당신의 죽음으로 상대를 심판하는 비둘기 같이 순하고 뱀같이 지혜로운 모습이다.

그렇다고 지도자 까지 비양심적이고 비 인격적인 사람의 되어선 더더욱 안되겠지만 현재 사방에서

들려오는 탄식과 부르짖음의 원인을 현미경처럼 파악하고 면도칼처럼 도려낼 수 있는 지략과 용기가 뛰어난

지도자가 필요한 시기이며 또 지도자의 인격이나 양심적 유전자가 들어있지 않은 자신만의 무정란을

품고 앉아서 이십이일이 지나도 부화되지도 않을 알을 품고 있는 암컷 종달새를 교체하는 것이 수컷의 교체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한국연합회가 진정 필요한 인물은 좀 덜 인격적이고 좀 덜  다듬어졌다고 해도

순교자의 정신으로 이런 문제를 파헤치고 거기서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신종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것이 가장 더 높이 올라가서 가장 큰 소리로 울어대는 수컷 종달새의 사명과 동일한 것이다.

어쩌다 연합회를 들리게 되면 회장님의 사무실 근처는 출입이 자유롭지 않고 사뭇 삼엄한 경계의

분위기가 들기도 했다. 서구의 지도자상에 비해서 조금은 빗나간 흐름이지만 일단 선출이 된

연합회장의 생각이나 의견이 어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권위와 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자리가 탐이나고 그자리만 눈에 띠게 되는 것이다.

그런 대단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임기만을 채우고 끝이 나는 그 인격과 그 양심이

어떤면에서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공자의 수제자였는지는 모르지만.

한편 잘못된 모든 일들이 지도자가 앉아 있는 그 자리에만  있다고 생각하고 자리의 주인만을

바꿔보는 일들은 오직 현대의학이 가고 있는 증세치료와 닮은 꼴이다.

교회가 건강하려면 암컷 종달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둥지들이 건강해야 한다.

암켯들을 잘 관리하고 때로는 원수처럼 갈라선다 해도 그리고 욕한번 허벌나게 먹는다 해도

흔들고 비틀고 채찍까지도 내리치던 유대인 성전의 그분처럼 할 수 있는 것이 지도자의 인격이고 성품이고

양심일 것이다.

십자가라는 가장 높은 곳에서 피를 토하는 가장 애절한 소리가 되어

심판이라고 여겨지는사십이라는 상징적 숫자의 유대인의 성전을 삼일 삼야의 칠흑같은 시간 바쳐서 지금의 교회 (은혜의 왕국)로 바꾸셨는데

이 교회에서 자신의 것을 챙기고 자신의 권위나 이득이 앞장서는 암컷 종달새들이 또 다시 판을 치는

요란한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수십년을 함께 살아온 수컷과 암컷의 관계가 개선이 되려면 쉽지 않을 것이다.

하도 오랫동안 친구처럼 학연과 지연관계로 얼굴이 익혀진 이런 관계 속에서

안면 까부시고 오직 예수를 위하여 모가지를 바칠 수 있는 지도자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흔들고 비틀고 채찍까지도 내리치던 예수님은  목회 (?)를  딱 삼년반 동안만  하시고 돌아가신 분이시다.

교회의 암컷 종달새들이 품고 부화시켜야 할 종달새의 알이 있다면 바로 이분의 정신이다.

죽기전에 그런일 한번 보고 죽을 수 있으려나...


지도자의 덕목은 양심도 중요하고 인격도 중요하지만 우선 불의를  찾아 양떼를 보호하고

불의를 보면 목슴을 걸고 사나운 곰 까지도 때려잡았던 다윗처럼 본능적으로 제거하려하는 의지가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여우를 잡아내려고 하면 지략이 뛰어나야 하고 곰같은 힘을 꺾으려 하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그런 말이다. 누구는 기도할 줄 몰라서 기도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암컷들이 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영악하고 꼼수가 발달이 된 암컷들은 대부분  이미 좋은 둥지를 차고 앉았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고 양심적이고 인격적인 암컷들은 권력과 권위의 후방으로 밀려나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이 드는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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