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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유지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허공에 그물처럼 걸쳐있는 해발 4천 미터 위의 길을 본다 사내들과 야크들의 행렬이 피리소리처럼 가늘게 이어지고 있다 천 길 허공 아래 허기진 호수가 퍼런 입천장을 벌리고 있는 길을 사내들은 독백하듯 지나고 있다 위벽에서 살아남아 내장으로 향하는 밥알의 뜨거운 몸짓 같다 이따금 호수로 떨어지는 이파리를 지켜보던 길은 불면의 주름으로 깊게 패였다 바로 그때 길의 책장을 넘기다 등골 오싹한 문장 하나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쌩-하니 가로질러가는 바람의 생각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휘청, 길의 옆구리가 휜다


처음 건너는 겁먹은 야크들이 쏟아낸 동글동글한 된똥에 새순처럼 돋아나는 발굽소리가 몽환의 길을 벌떡 일으켜 세운다 허공에 뼈를 묻으러 가는 새의 울음소리라도 들은 걸까 사내들은 한 번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돌멩이도 몸 뒤집지 않는 협곡을 야크들은 사내들의 휘파람소리 하나로 천천히 건넌다 입 안의 혀 굴리듯 은근한 차향은 저 느림의 시간 속에 있다고 자루를 빠져나온 차향이 길 위에 스멀거렸다 낭떠러지에 내걸리는 돌멩이의 비명을 사내들은 단전 밑으로 지긋, 누르고 묵묵히 나아갈 뿐 길은 무대 밖 여배우의 삶처럼 너무도 평범하게 이어졌다 절실할 수 있을 때 더 절실해져야 한다고 눈감고도 길의 혈맥을 짚어가는 사내들 앞에서 길은 아스라한 난간을 감추고 평지처럼 납작 엎드렸다






*차마고도: 중국 윈난성, 쓰촨성에서 시작되어 티베트, 인도, 파키스탄 등지를 거쳐

                      이어진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무역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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