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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김치교실 / 주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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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교실 / 주영희

 

    장동료 윈이 김치를 만들었다면서 작은 병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잘했는지 평가를 해 달라는 것이다. 김치가 세계 5대 건강식품 중에서 2등으로 자리매김을 한 다음부터 내 주위의 많은 미국인이 김치에 관심을 두고 물어오고 있다. 김치의 조리법이며 더불어 한국의 된장에 대한 관심도 상승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김치를 갖다 주기도 하고 김치조리법을 만들어 복사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돌리기도 했다. 김치 레스피를 요구하면서 다들 만들어본다고 했지만 만들어서 내게 평가를 받겠다고 갖고 온 사람은 여태까지 이 친구가 처음이었다.

 

    런데 윈이 만든 김치는 내가 준 레스피대로 안 했던 것이 자명했다. 김치의 색깔은 검정색깔에 가까웠다. 양념 재료들만 믹스기에 갈라고 했는데 배추까지 갈았던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김치 모양이 아니고 배추를 잘게 썰어 넣은 시커먼 다진 양념같이 생겼다. 맛을 보니 쓰기가 한량없다. 생강을 얼마만큼 넣었느냐고 물었더니 한주먹 정도 넣었다고 했다. 생강을 무척 좋아했던 까닭에 레스피의 재료 양은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색깔이 왜 이러냐고 하니 검은색 고추를 사용했다고 했다. 윈은 내 눈치를 살피더니 점점 겁먹은 듯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는 기가 막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지만 윈이 무안해 할까봐 겨우 참았다. 내가 윈에게 김치를 갖다 준 것만 해도 다섯 번이 넘는데 어떻게 배추를 저렇게 만들 수 있는지 각 사 람의 눈과 귀가 다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수십 번을 했던 설명을 또 다시 한다 해도 김치다운 김치가 나올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한국 출장 간 후에 우리 집에서 김치 만들기 실습을 하기로 했다. 시간을 겨우 맞춰서 남편 오기 며칠 전에 날짜가 잡혔다.

 

    여름의 열기가 주춤하던 하늘이 드높고 햇빛 찬란하던 칠월의 어느 날, 우리 집에서 김치 교실을 열었다. 8명의 백인 친구들과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중국계 영양사와 베트남계 친구가 우리 집 부엌에 모였다. 12시에 모이기로 했는데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의 태리와 같이 김치 담을 때 못 온것을 늘 아쉬워하던 메리와 그의 언니 머나는 15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금발이 고운 메리는 같은 교회의 교우인데 중풍으로 어눌해진 언니를 잘 돌보는 안팎이 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멀리서 오는 사람도 있고 해서 좀 늦게 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3시까지 오후 근무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기다리지 못하고 시작했다.

 

    는 김치 교실이 있기 전날 저녁에 배추 한 포기를 소금에 절여 두었다. 지난번에 윈에게 적어준 레스피는 포기김치였다. 하지만 처음 배우는 미국인들에게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서 한입에 들어갈 만큼 썰어서 절였다. 그리고 젓갈 대신 사용할 채소 국물을 다시마, 마른 표고버섯, , 양파 등을 끓여 미리 만들어 냄비 채로 두었다. 그리고 각종 재료와 점심도 사람들이 오기 전에 다 준비해 두었다.

 

   람들이 모이고 드디어 김치교실은 시작되었다. 나는 아들이 페루에서 사다 준 예쁜 앞치마를 둘렀다. 연습장과 볼펜을 각 사람에게 나눠주고 김치 만드는 과정을 잘 적으라고 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롭고 과학적인 사랑이 깃든 건강음식을 이 행성의 많은 종족에게 나눠보고자 함이다. 온 세계에서 증명된 우리 음식의 위상을 잘난 척하며 뽐내고 싶지만,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더럽히는 것 같아 겸손한 몸짓으로 엄숙하게 김치 교실을 열고자 마음먹었다.

 

    간 정도 크기의 배추 한 포기를 전날 저녁에 했던 그대로 썰어서 잠길 만큼 굵은 바닷소금 물에 절이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전날부터 절여서 이제는 잘 절여져 있는 배추를 보여주면서 지금처럼 절인 배추가 18시간이 지나니까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절인 배추를 여러 번 씻어서 소쿠리에 건져 두었다.

 

    음에는 양념을 만들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무를 채를 썰어 소금에 절였다. 양파 작은 것을 8등분하고, 빨간 색깔 피망 한 개 4등분 하고, 마늘 6, 생강은 완두콩만 한 크기, 바닷소금 반 큰술, 건 통고추 큰 것 3, 현미밥 3 큰술, 사과 중간크기 반쪽과 어제 만들어 두었던 채소 삶은 물 한 컵과 채를 썰어 소금에 절였던 무를 꼭 짜서 나오는 물도 함께 믹스기에 넣고 갈았다. 재료 간 것에다 마른 고춧가루를 넣고 농도를 걸쭉하게 맞췄다. 거기다 무채를 넣고 파를 썰어 넣고 통깨 한 큰술 넣으면 양념 만들기는 끝이다. 양념도 전날 만들어두면 적당히 숙성도 되고 색깔도 더 선명해진다. 이제 장갑을 끼고 배추와 양념을 버무리면 끝이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유리병이나 항아리에 넣고 실온에 하루 정도 두면 적당하게 발효가 되어서 먹을 수 있다.

 

    게 온 사람들을 위해 여러 번 되풀이해서 설명을 자세히 했다. 친구들은 장면마다 사진을 찍고는 질문을 폭풍같이 해 댄다. 채수는 얼마 동안 끓여야 하나, 마른 표고버섯은 어디 가서 사나, 모든 재료구매에 대한 질문들, 계절에 따른 숙성시간, 나는 대한의 주부답게 능숙하게 모든 대답을 부가설명까지 붙여서 청중들을 충분히 만족시키는데 성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떤 배추가 맛있는 것인지 배추 고르는 법까지 일사불란하게 끝내고 나니 더는 질문이 없다. 이제는 즐거운 시식 시간이다.

비해뒀던, 두부가 뜨고 있는 보글보글 끓고 있는 뚝배기 된장찌개를 상 가운데에 갖다 두었다. 오늘 만든 김치는 아직 맛이 안 들었지만 맛보라고 한 종지 갖다 두고 잘 익은 김장김치도 한 사발 고봉으로 올렸다. 울긋불긋한 잡채, 그린 빈 간장 조림, 콩나물 무침, 무생채, 우리 뒤뜰 표 방울토마토, 오이, 깻잎, 상추도 큰 접시에 소담하게 담고 쌈장도 곁들여 올렸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우! 진수성찬!’

       아름다운 무지개 색깔!’

       겁나게 멋있는 항아릴세!’

       나는 의연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먹고 살아.'

 

    리가 식사기도를 하고 우리는 완전한 한국 식사를 시작했다. 질문공세가 또 터졌다. 반찬 하나하나에 관해 설명해주고 뚝배기는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도 답했다. 나는 상추 위에 깻잎을 올리고 그 위에 현미밥 한술 얹고 김치, 무생채 등 반찬과 쌈장을 올리고 싸서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려서 먹는 시범을 보였다. 모두 따라서 쌈을 싸 먹으면서 깻잎에 대해서 한마디씩 한다. 독특한 향의 매력에 모두 폭 빠져들었다. 깻잎이 고혈압에 좋다고 하니 윈이 나는 저혈압이라 먹으면 안 되겠다.’라고 한다. 나는 또 일장 연설을 했다. 이것은 혈관을 깨끗하게 해서 콜레스테롤도 내려주면서 혈압을 내리는 것이라 부작용이 없으니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고 했다.

 

    국 음식은 이렇게 약이 되는 음식이 많다. 한국 주방에서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할 병이 없다고 한다. 오늘 먹은 점심 한 접시 한 접시가 약이 될 수도 있다.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보다 사실은 우리 조상들이 먼저 된장의 항생제 역할을 알고 상처에 된장 갖다 바른 것이 아니었던가. 인간을 만든 조물주는 또한 인간을 치료하는 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하였을 것이다. 약을 따로 쓸 필요 없이 매일 먹는 식사만 잘하면 그 안에 약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얼른 뚝딱 T.V 보면서 끼니 때우는 열량 만점, 영양 빵점짜리,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패스트푸드는 아니다. 오천 년 역사의 과학적이고 사랑의 음식인 우리 한식이 그 몫을 훌륭하게 해낸 것이 온 세상에 증명되지 않았던가.

 

    이 약이 되는 것의 일등공신은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다. 가족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따라 민감하게 준비한 밥상, 가족이 둘러앉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심신에 무슨 구름 낀 일은 없었는지 서로를 사랑으로 살펴보는 일이 밥상 앞에서 일어난다. 혹 밖에서 상처 입은 일이 있어도 밥상 앞에서 식구들과 살갗을 맞대고 눈빛을 교환하면서 치료가 이미 시작되는 것이다. 엄마의 손으로 쭉쭉 찢은 김치가 얹혀있는 밥숟가락이 입에 들어가서 씹히면서 회복이 된다. 밥과 함께 사랑도 같이 씹어 삼키는 것이다. 밥은 집 나간 자식도 돌아오게 하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 녹아 있기에 힘이 있다. 그러니 한국 음식은 사랑이고 약이고 고향이고 행복이다

 

    국에서 부모 따라 어릴 때 이민 온 베이는 극구 말렸는데도 그 많은 설거지를 기어코 다하고 갔다. 2년 전에 그 아이의 엄마가 죽은 후 너무 그리워서 몸에 엄마의 성을 문신했단다. 그것을 내게 보여줬을 때, 내 성과 같다고 하니까 금방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남자친구가 한국 사람이라 한국말로 나를 엄마라고 불러도 되겠느냐고 애절한 눈빛으로 물어오길래 그러라고 했더니 병원 복도에서 만나면 멀리서 엄마하고 뛰어와서 안긴다.

 

    이 들깨 씨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묻는다. 내년 봄에 들깨 모종을 필요한 사람에게 다 나눠주겠다는 나의 선언에 모두 환호를 질렀다. 모두 행복한 얼굴로 김치    교실을 떠났다. 베이의 생일에 약밥을 생일 케이크 대신해 줬더니 무척 행복해했다. 어렸을 때 월남에서 온 티가 아기를 낳았을 때 미역국을 끓여 갖다 줬더니 눈물로 행복해했다. 30년 이상 이곳에서 살면서 이제는 불편함이 없고 잊고 살 때도 많지만 내가 이방인이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 나라에 대한 그리움과 내 나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고플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를 엄마 품으로 데리고 가는 내 나라 음식의 우수함을 나를 품어주는 이국인 친구들과 나눈다. 음식을 사랑과 함께 나누노라면 그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엄마가 나를 보고 느꼈을 그런 행복을 나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더 아주 많이 행복하다.

 

     주영희: 한국 수필전문지 에세이문학등단.

 

   (작품: ‘한국산문’ 20156월호 수록)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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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경님의 댓글

no_profile 장도경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장노님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랫만에 인사 드립니다.
건강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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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진님의 댓글

no_profile 박봉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장도경목사님
여전 건강 건필하시네요.

 '카스다'에서 액티비티한 필경을 잘 하고 계시니 반갑습니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라 했던가요. 기회 되는 대로 자주 뵙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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