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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이 강을 꼭 건너야 하오 3_네 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는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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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와 산소가 결합하는 시간이 말 그대로 순식간이어서

물이 결합하는 순간을 사람이 본일이 없지만 한국인의 기술로 만들어진 제 4세대

방사광 가속기의 출현으로 그 결합 과정을 볼 수 있다고 하는 기사를 읽었다.

수소는 약한 양이온을 띠는 원소이고 산소는 약한 음이온을 띠는 원소인데

수소 두개와 산소 한개가 만나면 서로 완전한 한개의 분자가 되고 이 공유결합은

매우 강해서 왠만한 힘으로는 끊어낼수가 없다. 칼로 물베기란 말이다.


물은 극성을 띠므로 극성을 띠는 물질이나 이온 결합 물질을 잘 녹일 수 있는데

그것을 영어로 water soluble 이라고 한다. 물이 가지는 또 하나의 기능은 water

washable 이다. 물은 용재로서의 용해역할과 세재로서의 씻음역할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두가지의 역할이 극대화되는 상태는 물이 흐를때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이 땅에 오신 아들이 언제부터 그런 극성 공유결합을

하셨는지는 우리는 잘 모른다. 다만 그 결합은 하늘이라는 양이온과 인간이라는 음이온이

극성으로 결합한 최초의 결합이라고 믿는일 외에는.


에스겔서 47장에는 에스겔에게 보여준 성전의 조감도가 나온다.

그 성전이 비록 자로 측량하는 모세의 성전처럼  자세하게 설명이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성전을 이땅에 지으려 하지 않았다.

그 성전이 어린양의 죽음과 그 십자가에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조감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전의 오른편 (언제나 오른편은 십자가의 방향이다-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시던 그 오른편) 에서 물이 새어나오기 시작하고 그 물은 흘러서 동쪽으로 흐르는데

처음 일천척에서 사천척에 이르면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된다.


그 강이 이스라엘이 모세와 함께 건너지 못하고 오직 여호수아와 함께 건너던

요르단강이다.

요르단강은 흐른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의 요르드에서 나온 이름이다. 병정들이 찌른

예수님의 옆구리는 아마도 오른쪽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십자가에서 처형된

죄인들은 모두 무릎을 꺾었지만 오직 한사람 예수는 무릎을 꺾지않고

그 옆구리가 찔리고 물과 피가 흘렀다.

동쪽으로 떠나가서 마침내 사해라고 하는 죽음의 바다를 이룬 당신의

백성들을 따라 흘러서 도달하는 요단강의 기적을 말함이다.

물은 첫째로 water soluble 이어야 하고

둘째로은 water washable 이어야 하며

세번째로는 흘러야 한다.


에스겔서 같은장 11절에는

"그 진펄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흐르지 않고 있는 바다 즉 사해를 빗대어 흐르지 않는 당신의 백성을

꾸짖는 말이다.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중에 붙들려온 벌거벗은 여인은 두 종류의 물을 만난다.

하나는 진펄과 개펄같은 정죄의 물이고 다른 하나는 water soluble 과

water washable의 기능을 가진 용서의 물이다.


다시 9장에는 날때부터 소경된자를 앞에 놓고 소위 진펄과 요단강의

입씨름이 벌어진다. 율법의 행위속데 갇혀있는 바리새인들과 보내심을

받은자 즉 아버지의 말씀대로 흐르는 물이신 예수님과의 대화이다.


요한복음은 1장에서 부터 끝까지 줄창 율법의 행위속에 갇혀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요단강을 건너는 복음의 물결속으로 집어 넣고

싶어하는 하나님과 그 아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시내산과

모세가 있었던 광야는 바로 그 율법의 행위속에 가두어진

감옥이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서 율법의 행위를 정의할만한 성경적

근거는 없지만 율법의 행위속에서 나오는 증후군 즉 증세는

언제나 발견되고 있다고 했다.


정죄와 손가락질이다.

언제나 그들은

"누구의 죄"냐고 묻고 싶어 한다.


요단강이 대답한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란 soluble 이고 또 washable 이고

또 한편

어찌보면 날마다 반복이 되어야 할 용서의 강물이다.


그 다음에 결론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십자가 이후에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을 물으셨다.

네 몸은 이제 내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산 나의 몸이니

네 이웃을 이제는 네가 다시 받은 그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날마다

어린양의 피에 우리의 옷을 빨아야 남은 무리가 된다.


친구야 오늘도 우리 빨래하러 가자.

요단강으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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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배님의 댓글

no_profile 강석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장목사님
e mail 주소 부탁합니다. 아님 전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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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경님의 댓글

no_profile 장도경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성함만 보아도 반가움이눈에 서리는데 어찌 선배 목사님께서  제 이름을 부르며주소를 물으십니까
fallbaram@yahoo.com 입니다
편안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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