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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아원장 'Green Essay' 신인상 수상, 한국문단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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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과 함께 살아가기

 

                                                                                           엄영아 

 

    그 점은 나를 확인하는 아이덴티티다. 사람들 눈에는 잘 뜨이지 않을게다. 멀리서 바라본 오륙 도처럼 그 점과 좀 뜨악했을 때는 보일락 말락 했다. 한 때 인기여배우의 볼과 턱 사이 점 하나가 화제였다. 그것이 성형이라니, 자연산이 맞다 느니, 호사가들 입방아가 분분했다. 점이 매력 포인트이기 보다는 여성복장의 디자인이 체형윤곽 위주이듯 점도 약간 가림이 좋겠다.

    점이란 어휘는 참 많으면서도 묘하다. 내 생애는 수많은 점과 점으로 얽혀있음을 최근 알았다. 그 중엔 내 태생의 점(Birthmark)과 삶의 성적표(Point)점 그리고 내 삶의 연속성 의미인 점점은 나와 불가분이 아니겠는가? 내 왼 손등에는 작은 점 하나가 있다. 여태 한 몸으로 살아온 처지에 그 왼손이 뭐 그리 예쁘고 고우랴 마는, 손등부위 작은 점을 나는 참 예뻐해 주고 있다. 그 점 위로, 기분이 우울하거나 쑥스런 일이 생길 때면 내 눈길은 피난처처럼 거기에 머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긴장감이 풀려지고 평정해진다. 내 몸 작은 부위에서 하찮아뵈던 점이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게 된 것은 아마 소녀시절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픈 마음에서 그럴 거다.

    중학생이었을 때, 가사과목을 가르치셨던 선생님이 계셨다. 하얀 피부에 다소곳한 성품이 순백의 백합꽃을 연상케 하는 그런 분이셨다. 어느 날 가사 수업시간에 그 선생님이 칠판에 백묵글씨를 쓰고 있었다. 문득 선생님의 손등 위에 있는 까만 점이 내 눈에 띠였다. 글씨를 쓰느라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하던 손목의 움직임을 따라 보일 듯 말듯 내 눈 앞에 아른거렸던 그 점이 참 귀엽고 예뻐 보였다. 선생님의 하얗고 고운 손 살결 위의 까만 점이 어찌 그리 예뻐 보였던지. 그 이후로는 가사시간마다 선생님의 손등 위에 있는 그 점을 훔쳐봤다. 내게도 저런 점 하나가 있다면 나도 그 선생님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열네 살 소녀 때였어도 그 가사 선생님의 모든 것을 다 닮고 싶었다. 고상한 품위와 귀태가 흐르는 아름다운 분위기도. 그런 선생님이 계신 학교를 즐거운 마음으로 다니며 유년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을 향한 내 짝사랑도 그 선생님의 전근으로 종지부를 찍게 됐다. 선생님의 그 점에 관한 기억도 희미해질 만큼 세월이 흘러갔다. 그 때 나는 결혼과 함께 미국에 이주했다. 아이들의 엄마로, 교회와 지역 사회를 섬기는 사역자로 바쁜 일상을 살았다.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그 선생님의 추억은 잠시 수면아래 가라앉은 듯 했다. 그런 어느 날, 문득 내 손을 만지다말고 내 손등에도 까만 점 하나가 선생님의 손등처럼 있지 않은가. 놀라웠다. 기억의 저편, 잊고 지냈던 옛 일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그 그리움에 흠뻑 젖어들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라. 닮고 싶어 했던 가사 선생님! 그리고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선생님의 그 점과 비슷한 위치에 너무 닮은 모양으로 내 손등에도 까만 점이 있었다니. 내게도 있었던 그 점을 있는지도 모르고 여태 선생님의 점을 부러워했던 그 시절이 떠올라 별아 별 생각이 떠올랐다. 점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후반기 사람들의 얼굴에서처럼 없던 것이 생길 수는 있겠다. 하여간 뒤늦게 발견된 그 점이 너무 신기하다. 내 앞 생애에 좋은 예감일 듯 마음 부푼다.

    그렇겠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서 내가 미쳐 발견해내지 못한 귀하고 훌륭한 소재들이 얼마든지 있었겠다. 지난 세월 속에서 그런 것엔 큰 관심을 기우리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내 안목과 자율훈련이 미흡해 그 존재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못했던 것들이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귀하고 값진 것일수록 내 가까이에 있다는 평범한 이치를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지금도 내 눈엔 들어오지 않아도 언젠가 알아질 수 있을 귀한 보물들까지......

    세월을 많이 살았다는 것이 때로는 서글프게 느껴져도, 마음 한 편으론 삶에 대해 이전보다 한층 여유로워 좋다. 지난날엔 무심하게 넘겨버렸던 작은 것들에 대해 고마움과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기쁨이 있다. 젊었던 때, 남의 것을 부러워했던 시절만큼 이제는 내 것에 더욱 감사하며 내 주변의 작은 것들 하나하나의 귀중함도 새롭게 인정해 줄게다. 칭찬도 많이 해주며 삶의 시간들을 채워가고 싶다. 내 손등의 까맣고 작은 점은 반사 빛을 내지 않는 나의 별이다. 오늘도 내 가슴에 따뜻한 생기를 전해줘서 내 마음 주름살로도 말간 미소로 바꿔내 보리라.

 

                         비비추꽃을 바라보다 

                                                                    

    얼마만의 낭보인가. 3월의 그 화신(花信). 엘 리노 예보를 비켜간 남 가주는 대지가 메마른다. 절수 령이 내린지 오래니 오죽하면 그랬으랴. 그래도 계절의 전령은 어김없이 꽃소식을 전했다. 어느 집 앞뜰에 자목련이 피었나 싶더니 가로수 배꽃나무도 눈 싸라기 꽃잎을 흩뿌렸다. 그것을 본 것만도 흡족한데, 잊고 있은 비비추꽃 향연 초대는 고대했던 희()소식이다.

    겨울이 길면 봄이 멀지 않다는 그 말이 내겐 참 오랜만의 체감(體感)이다. 그것은 계절의 순환질서처럼 인간사 순리에도 안도를 주었기로 깊은 숨을 불어냈다. 아무리 급하거나 슬픔이 있어도, 기뻤어도, 내 사정과는 상관없이 흘러간 시간이 때로는 야속했다. 그래도,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이런저런 아픔과 슬픔, 후회와 상처까지 품고 보듬으며 함께 했던 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백지장도 맞드는 마음으로 그늘진 곳의 내 작은 소임을 맡아 온지도 23년이 다됐다. 그랬는데, 연전 3, 한 결혼식에 초대됐던 장면은 파노라마처럼 떠올려진다.

    새 가정을 이루는 신혼부부를 축하하던 나는 목안이 메였던 감회를 억누를 수 없었다. 20여 년 전 일이지만, 내 기억은 생생히 떠올렸다. 그 때 올망졸망한 자녀 3명을 데리고 절박한 심정으로 쉘터를 찾아왔던 그 엄마가 큰 딸 결혼식에 나를 초대하고 가족테이블로 안내했었다. 그 이전, 그녀 남편은 물불의 가림도 없이 걸핏하면 폭언과 폭력을 휘둘렀기로 견디다 못해 자기생명 같던 어린 자녀 3명을 데리고 쉘터에 들어와 지냈던 때가 어제인 듯 내 눈에 선하다.

    한 순간의 반성은 진정한 회개엔 이르지 못하는 면피성으로 끝나는 걸까? 남편의 간절한 용서와 다짐을 받고, 주변 친지들 권유도 있어 그녀는 한줄기 희망을 의지하고 다시 그 집에 들어가 새 삶을 시도했다. 그래 4번째 자녀까지 출산했다. 그럼에도 바람불은 뒷날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분노조절이 안 되는 배우자 폭행은 관광지 옐로스톤 간헐천(Old Faithful Geyser)을 거꾸로 닮았던 걸까. 그것이 지하에 뜨거운 물과 증기, 가스가 차면 주기적으로 속구 쳐올림과 같은 증상이면 쉬 치유가 어려운지 모르겠다. 어느 날 그녀는 자녀 4명을 차에 태우고 운전해 집에 들어왔을 때 야구 방망이로 차 유리창을 부수고 아이들 면전 구타는 더 견뎌낼 수 없었단다.

    그 자리서 넷 자녀를 대동하고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그녀는 상담과 치료를 받은 후에 부부사이는 이혼으로 정리됐고, 그녀는 자녀 4명을 키우느라 이루 말할 수없는 각고를 겪어야만 했다. 어느 오페라엔가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갈대...” 연약함을 노래했지만 엄마는 강하단 말이 다시 한 번 실감됐다. 그 힘의 원천을 살피다 말고 내 시선이 설핏 창 밖 작은 화단에 머물렀다. “아 저기 그...” 여태 못 봤던 그 엄마와 4자녀의 인물상이 현몽처럼 그려졌다.

    겨우내 동면(冬眠)했던 땅 밑 뿌리가 새순을 한 뼘 넘게 밀어 올려 자홍색 비비추꽃을 피웠다. 진하지도, 탁하지도 않은 천연채색. 청순한 이미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환절기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도 세상 먼지 따위는 꽃대표면에 미끄러지는 듯 범접을 못했다. 그만한 꽃 자태면 밑뿌리도 한 점 흩뜨림이 있겠는가. 그랬다. 지난 해 뒤뜰 중간 화단에서 그 뿌리를 띠어내 옮겨심은 터라 살펴봐서 알고 있다. 생강뿌리를 닮은 뿌리는 연결된 마디마디 잔털이 틈새를 싸고 있었다. 그녀도 4자녀를 키운 엄마라서 비비추꽃 같은 한 가족사의 밑그림이 돼 눈에 꽉차왔다.

    비비추꽃은 외관만 봐도 쉬이 꺾기거나 쓰러질 화초가 아니다. 쑥대처럼 꽃대 모가지가 길긴 해도 꽃 바침은 접시꽃처럼 넓이를 키우진 않는다. 가뿐한 중량대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세찬 바람도 단단한 꽃대가 풍향 따라 좀 흔들릴 뿐. 이내 용수철 같은 반전으로 곧추선다. 우리네 체중과 소유, 언행, 감정까지도 넘치거나 모자라지도 않을 수신(修身)의 무언 계시일 듯하다. 그 생각을 하면 내 작심삼일이 걸음마를 뗀다. 비비추꽃을 떠올리면 울림도 사물화 되지 않을까.

    비비추꽃, 그 삶의  얘기가 유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를 눈물겨운 여성들에게 들려져서 상처를 치유 받고, 여력이 축적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연약한 손일지라도 전화이복(轉禍爲福)기회를 꽉 부뜰고 밝은 새 날을 맞았으면 한다. 꿈을 놓지 않는 그들이면 올곧고 조화로운 화음처럼 비비추꽃으로 피어나리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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