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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노래 

박옥종 

안개 속에 조는 듯한 
가로등은 조용히 길을 지키고 
아직도 별이 반짝이는 새벽 하늘을 이고 
걸어가면 주님은 내 마음에 
샛별로 떠 오르신다 

어두움도 안개도 사라지고 
동녘 지평선에 여명이 찾아와 
맑게 분홍빛으로 물들어갈 때 
아직은 태양이 뜨지 않았으나 
내 마음엔 주님이 태양으로 떠 오르신다 

어둠이 아무리 짙은 세상일지라도 
안개가 아무리 두터운 길일지라도 
그 모든 것 뚫고 주님은 태양으로 
온 누리를 밝게 비추신다 
죄로 어두워진 인간의 마음을 비추신다 

낙담과 좌절 딛고 일어나 
소망과 안위로 밝아진 마음 
힘찬 생애로 이어지리 
영원한 길로 영원한 길로 
승리의 개가 부르며 행진하리 

***저의 어머님 박옥종 집사님이 새벽기도 다녀오는 길에 지은 시입니다*** 
***날마다 새벽기도 드리시던 신앙심 깊은 어머님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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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집사님의 삶을 더 가까이서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귀한 경험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결혼하고 남편을 통해 우리 가정의 은인 같은 분이라고 자주 들어오던 분, 멀리 미국에 계셔서 자주 뵙진 못하고 막연하게 그 고매한 인격을 존경하기만 하던 집사님을 남편이 학위를 위해 앤드류스에 잠깐씩 두 번 머무는 동안 가까이서 뵐 수 있었고 그분의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큰 특권이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 체류 기간동안{2006년 2월-2007년 8월} 집사님의 원고를 영어로 옮기는 초벌 작업을 도우며('할머니의 마음은 거문고' The Heart of Grandma is Harp, '그 영광의 빛 속으로' Into the Glorious Light) 집사님의 삶을 더 가까이서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귀한 경험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다지도 마음이 순수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정직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렇게 열렬할 수 있을까' 한 문장 한 문장 서투른 영어로 글을 번역하며 집사님의 거울같이 맑은 영혼의 모습에 감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집사님의 글을 통해 제 삶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되었고 어느덧 집사님의 아름다운 품성을 닮고자 애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일들에 때로 얼버무림으로 거짓을 말하고 싶을 때 집사님의 엄격한 정직의 모습이 떠올라 그 유혹을 물리치곤 합니다. 

남의 어려운 형편을 자신의 일처럼 마음아파하고 그 일이 해결될 때까지 기도로 물심양면으로 돕는 모습에 제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뉘우치곤 합니다. 

자투리 천 조각 하나라도 버리지 않으시고 재활용하시며 알뜰하신 분이 남을 돕는 일에는 가장 크게 손을 펴는 집사님의 모습에 진정한 이웃사랑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실 집사님이 쓰신 위 두 편의 책에는 저의 잊지 못할 기도 응답의 사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006년 2월 저희 가족은 남편의 박사학위 논문을 마치기 위해 모두가 앤드류스로 갔습니다. 당시 남편은 1년 먼저 앤드류스로 가서 논문을 쓰고 있었고 저는 삼육대학에 남아 여대 기숙사 관장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논문이 기한 내에 마쳐지지 않아 아무런 경제적인 대책도 없이 저도 앤드류스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어느날 아침 성경과 예언의 신을 읽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것, 특히 경제적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여 저도 직장을 그만두고 앤드류스로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학생 가족 비자라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던 저는 매달 식료품 비용만이라도 벌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무렵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청년들에게 영어로 읽힐 책도 쓰고 편지도 쓸 수 있도록 영문법 과외를 받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영문법 공부를 하다가 아예 원고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집사님은 매달 제가 하나님께 기도한 꼭 그만큼의 비용을 주셨습니다. 논문을 마칠 때까지 저는 집사님의 글을 영작하며 집사님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배우는 특권과 함께 경제적인 도움까지 받는 이중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느날 집사님의 시집을 읽다가 '시련 속에서'라는 시가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아 세미나리 학생에게 부탁하여 배경그림을 넣어 프린트해 드리며 집사님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때 물건 고르실 필요가 없겠다고 이렇게 귀한 시들을 선물하시면 가장 좋은 선물이 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생각을 기뻐하시고 그 후로는 지인들에게 시로 선물을 대신하시곤 하셨습니다.

한 번은 '오늘을 기쁘게'라는 시가 하도 좋아 생신 때 액자에 넣어 드렸는데 글씨가 너무 작게 나와서 잘 안보이실 것 같아 새로 큰 것을 해 드렸더니 작은 액자는 제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지금도 그 시는 저희 집 피아노 위에 올려 져서 제게 하루를 밝고 기쁘게 살 수 있는 활력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제게 선명하게 남아있는 집사님의 생전 모습은 날마다 PMC로 기도하러 오가시는 모습입니다. 겨울에는 두터운 초록색 파카를 입으시고 여름에는 하늘색 외투를 입으시고 집에서 교회까지 꽤 먼 거리를 늘 오가시던 모습, 교회 입구에 무릎 꿇고 앉아 단정히 기도하시던 모습을 자주 뵈었습니다. 그 기도처를 오가시며 예수님과 나누는 마음의 대화들이 집사님의 시상의 많은 부분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고 일어서니 중년의 한 인자한 분이 곁에 계시다가 '당신의 기도가 다 응답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뵌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집사님은 예수님과 매일 가장 가까이서 동행하셨고 저희 모두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답니다.

저희가 앤드류스에 머무는 동안 잠깐 시댁 조카가 함께 지내 적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축구를 하다가 다쳐서 학교를 조퇴하고 집에 와서 누웠는데 침대에서 잘 보이는 곳에 말라기의 말씀,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를 크게 써서 붙여두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곁에 있는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저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어요. 그렇게 믿어져요.' 단순하지만 확신에 찬 그 말씀에 '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저의 믿음 없음을 회개하게 되었답니다. 요즘도 종종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그대로 믿는가' 돌아보곤 합니다.

집사님 그동안 내신  글들, 시집들, 책들, 자서전('그 영광의 빛 속으로')과 쓰고 계시던 '기도'(제목이 떠오르지 않는군요)의 글들을 통해 집사님 소원하시던 만명의 영혼, 아니 십만명의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고 마침내 넉넉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집사님의 얼굴을 조용히 그려봅니다. 집사님의 소녀같이 해맑은 미소가 떠오르는군요. 이상하게도 저는 집사님의 부고를 듣고도 마음이 그렇게 슬프지가 않았습니다. 멀리서 소식만 들어서 실감이 안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집사님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삶을 사셨기에, 삶의 종착역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인간의 욕심과 결점이 남아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미완의 작품이 아닌, 죄된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예수님의 사랑의 품성으로 온전히 물든, 하나님의 손으로 빚어진 완성품이 되신 분이라고 믿기에, 그 품성의 향기가 저희에게 너무나 강하게 남아있기에, 집사님을 떠나보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실 때까지 잠깐 쉬시는 모습, 한낮에 잠시 눈붙이셨다가 다시 일어나실 모습으로만 그려집니다. 집사님의 남기신 글로, 보여주신 모본으로 저희 속에 집사님은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집사님, 사랑합니다. 집사님처럼 그렇게 맑고 순결한 삶 살 수 있다는 것 모본으로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09년 9월 20일
멀리 한국에서 집사님이 사랑해주셨던 어린 딸 OOO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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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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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원 교수***
2014.06.01 08:57

은혜로운 글, 마음에 오래 남는 댓글들.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 그 힘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박옥종 어머니의 글과 시를 꼭 읽고 싶네요. 박옥종 어머니의 자손들은 참 행복한 분들입니다.
푯대를 명확히 하신 어머니는 위대한 분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모든 자손들의 발길 이르는 곳마다
늘 발자욱에 묻어나 또 다른 발자욱으로 이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박옥종 어머니의 글이 드디어 저에게까지 왔네요. 수천 수만 명 중에 하나로 포함되어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정무흠 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 속에서 막내로 자란 저로서는
박옥종 어머니의 삶이 나의 어머니의 그것처럼 가슴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shal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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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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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종 집사님 조의 표하면서 조시 "우리들의 숲에"***
김 명호 목사
2009.09.15 13:05:45

우리들의 숲에는
거목도 있고

막 자라 오르는
새 나무들도 있다.

때가 되면
조용히
삭으라드는
거목들

거목의 그늘에서
튼실하게 자라난
새 나무들이

삭아서 없어진
거목의 빈자리를 채운다.

아직은 아쉽지만
세월의 훈련을 따라
머지않아
듬직한 거목으로 설 것이다.

이어가는 이치를
터득한 거목들이기에

때가 되면
조용히 자리를 비운다.

오늘
숲 한쪽 비탈에
없는 듯 서 있으며

모진 풍상 막아서
새 나무들 가꾸어 온
고고한 거목 하나

조용히 자리를 비우고
오열을 소망으로 대신하는
새로 자란 나무들이

우리들의 숲 그 빈자리
말없이 메우려고

하늘을 우러러
마음의 눈을 뜨고 있다.

2009년 9월 15일
박옥종 집사님 부음을 듣고
김명호 삼가 조의를 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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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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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하 목사***
2013.10.19 09:50

정무흠 목사님.
제가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일찍 함께 잠을 자자고 조르는 바람에
저녁 9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 1시쯤 잠에서 깨어
정목사님이 올려 놓으신
어머님의 자서전같은 글들을 4시간여 읽었습니다.

구구절절.... 진심과 정직, 하늘을 향한 끊임없는 믿음,
윗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와 자녀들에 대한 지극함,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언제나 반듯하게 살아 오신
어머님의 삶이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최근 들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남의 글들을 읽은 적이 없었는데, 정말 정목사님의 어머님의 글은
결코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진지함과 더불어 흥미를 갖게하는 놀라운 힘이 있었습니다.

훗날, 하늘에서 정목사님의 어머님을 뵈올 것을 생각하며
이 새벽 어머님을 사랑하시고 정목사님의 가족들을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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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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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하나님은 알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 박옥종


"일본 사람들이 진주만 공격으로 대승리를 거두었다고 성대한 축하 행진을 하고 완전히 들뜬 기분을 내고 있던 그 해에 우리 외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내 나이 만 12세(우리 나이로 14 세), 부산 여고보 1학년 때였다. 내 생애에 처음으로 가까운 분이 돌아가신 슬픔과 무상을 느낀 첫 사건이었다. 사춘기의 소녀의 가슴에 큰 충격이었다...

나의 외할아버지에 대한 가지가지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특히 오빠들과 내가 한 해 겨울 방학에 외가에 갔을 때 보았던 사건이 생각이 난다.

새벽같이 어린 소녀가 엄마 등에 업혀서 할아버지가 계시는 사랑 앞에 들이닥쳤다. 화상을 크게 입은 아이였다.소녀의 아버지는 술버릇이 나쁜 사람이었는데 이 새벽에 술에 만취가 되어 집에 돌아오자 화로를 들어 집어 던졌는데 그 불이 잠자고 있던 딸을 덮친 것이었다. 

그 엄마는 어쩔 줄을 모르며 울며 할아버지께 애소하는 것이었다.
“불쌍한 이 어린 것 살려 주이소! 살려 주이소!”

외할아버지는 그 엄마를 위로하며 안위시키며 그 딸아이의 화상 입은 얼굴과 목과 가슴과 팔에 흰 고약을 바르셨다. 매일 그 엄마는 딸을 업고 왔고 그 어린 딸의 상처는 나아갔다. 나중에 들으니 그 소녀가 상처 없이 깨끗이 나아서 예쁜 처녀가 되었고 시집을 가서 잘 살고 있다고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연구심이 많은 분이었고 다른 사람을 도우시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예비하시는 분이었다고 생각된다. 외할머니가 발찌가 났을 때 대구 동산 병원에 입원하셔서 치료를 받으셨다. 그 때 그 병원에서 두 가지 연고를 쓰는 것을 보시고 외할아버지는 그 제조법을 물어서 그 연고를 예비해 놓으셨고 그 연고를 써서 그 화상 입은 여아를 상처 없이 낫게 하셨던 것이다. 

외할아버지의 별세는 온 동네의 슬픔이었다 한다.

“한 5년만 더 살아계셨어도 우리가 잘 살게 되었을 텐데…….”
하고 동네 사람들이 한탄을 하였다고 한다. 

이웃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신 외할아버지, 그 분은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 곧 기독교의 하나님은 알지 못하셨지만 천의(天意)를 깨닫고 천의(天意)에 따라 살았던 분이라 생각된다...

외할아버지 별세 후에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다니러 오셨다. 언제나 두 분이 같이 다니셨는데 혼자 오시기는 처음이었다. 우리는 외할머니한테 얘기해달라고 졸라댔다. 외할머니께서 그 때 들려주신 얘기가 있는데 그 얘기는 이러했다. 

어떤 가세가 기울어진 양반집에 모자만이 살고 있었다. 그 많던 노비들도 다 떠나고 모자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아들아, 우리 집 노비들이 아무데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 노비문서를 가지고 찾아가서 그들을 면천(免賤)시켜 주고 그 대신 그들의 형편대로 그들의 성의를 받아오면 이 곤경을 면할 것 같구나.”

아들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종들이 한 동네를 이루고 살고 있다는 곳으로 떠났다. 옛 주인을 종들은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그들의 노비 문서를 다 불사른 후 사정을 이야기하자 종들은 다 감동하여 어진 주인의 가정의 형편에 마음 아파하며 자기들의 힘대로 삼천 냥을 모아 말에 실어 젊은 주인을 보냈다. 

그러나 그 아들은 그 돈을 집에까지 못 가져오고 중도에서 다른 일로 없애고 만다. 강을 건너려고 할 때, 그는 한 늙은 남자와 두 여인이 울면서 깊은 강물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하고 그는 그들에게 물었다.

"나의 독자가 빚을 갚지 못해 감옥에 있습니다. 오늘 중으로 3000냥을 갚지 못하면 그는 처형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외아들이 처형당하기 전에 나의 아내와 며느리와 함께 자살하려 합니다." 

"제발 자살하지 마십시오. 내가 3000냥을 드리겠습니다."라고 그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전 재산을 그들에게 주고 돈 한푼 없는 빈털털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고대하고 있던 어머니에게 모든 이야기를 소상히 아뢰었을 때 그 어머니는 무엇이라 말했을까? 

“아들아, 인명을 구하는 것이 가장 귀한 일이니라. 네가 참으로 잘 하였도다. 한 사람의 생명 때문에 다른 세 가족의 생명도 위경에 놓여 있었다니 네가 어찌 네가 얻은 돈이라고 사지에 이른 사람들을 못 본 체하고 올 수 있었겠느냐? 

바로 너를 그 시간에 당도하게 한 것은 천의(天意)였느니라. 천의가 무심치 않아 그들을 살리셨거늘 어찌 너와 나의 생명인들 굶어 죽게 하시겠느냐?”

참으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었다.

지금 내가 하나님을 믿고 보니 하나님의 뜻은 정직하게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하고 계시는 것이다...


2. 근검절약(勤儉節約)

나의 외가에서 본 추억들 중에는 마치 활동 사진의 필름이 전개되듯이 선연하게 나타나는 장면들이 여러 개 있다.
그것들은 거의 10세 미만 때의 회상이다. 

내가 그 때 일을 일부러 생각해 보려고 해서 오는 현상이 아니라 문득 문득 내 생애에서 내가 외할아버지가 생활하시던 장면을 회상하며 나도 본 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축대에 떨어져 있는 쌀을 하나하나 주우시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외할아버지의 모습 때문에 한 알갱이의 곡식도 한 톨의 밥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외할아버지는 부자였고 존경 받는 어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질하다가 그랬는지 어떻게 되어서 쌀이 떨어져 있었는지는 모르나 그것을 발견하신 외할아버지께서 아무 말씀 않으시고 그 한 알갱이 한 알갱이를 줍고 계셨던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가난한 이웃과 친척을 돕는 일과 또 모든 사람에게 손 대접하는 일이나 가족들에게나 후한 분이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 자신의 곡식 한 알갱이도 소홀히 하지 않으시는 근검절약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집안사람이나 자손들이나 친척들이나 온 동네 사람들까지 그 혜택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셔서 한 머슴에게 정해놓은 시간에 종을 치게 하시고 가난하여 학교에 못 보내는 집 아이들을 외할아버지 사랑방에 모아 공부를 가르치시고 사랑채의 한 방에 차려져 있는 한의원의 모든 재료로 동네 사람들에게 무료로 치료를 베푸시며 들레지 않고 조용히 언제나 누구에게나 선을 베푸시던 외할아버지였다. 

부지런해야 된다는 것을 생활로써 모본을 보이셨다..." 

***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1부 출생과 배경 중에서*** 

***그 영광의 빛 속으로!!!-6.25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불치병과 가난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세주를 만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박옥종 Lilian Chung)***

*kasda.com 칼럼과 글동네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18 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5부 감사의 노래 - 박옥종 정무흠 2013.10.11 33
17 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4부 침례! 새출발! 인생역전! - 박옥종 정무흠 2013.10.11 26
16 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3부 한국 동란! 고난의 세월! 가난 속에 핀 꽃! 박옥종(Lilian Chung) 정무흠 2013.10.11 32
15 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2부 행복한 결혼! 해방! 아들, 딸의 출생! 박옥종(Lilian Chung) 정무흠 2013.10.11 30
14 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1부 출생과 배경 - 박옥종 정무흠 2013.10.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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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성애 성령충만한 시대의 소망에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글이 있다.
" 이방인 가운데서 하나님을 모르고 섬긴 자들 즉 인간의 도움을 통하여
한 번도 빛을 받지 못한 자들일지라도 멸망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였으나 자연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율법이 요구하는 일들을 행하였다.

그들의 행위는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화시킨 증거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는다."

시대의 소망 80쪽,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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