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은 아름다운 이야기 나누어 주리라! > 글동네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글동네

내가 들은 아름다운 이야기 나누어 주리라!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내가 들은 아름다운 이야기 나누어 주리라! - 박옥종


내가 들은 아름다운 이야기
나누고 싶어
내 마음 불붙는 것 같아도 
내 앞에 아무도 없을 때
나는 쓰네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자
그 얘기 열심히 쓰네

막달라 마리아처럼
옥합을 깨뜨려
주께 부어드리지 못하오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의 사랑의 향기를 전하게 하소서

사마리아 수가 우물가에서
주님께서 주신 생수를 마신 여인처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샘을 
내 속에 터쳐 주소서
그리하여 그 생명수를 
목말라 애타는 영혼들에게 
나누게 하소서

도루가처럼
가난한 이웃에게
도움의 손 되게 하시고
브리스길라처럼
진리를 증거하게 하소서

뵈뵈처럼 츄니아처럼
루포의 어머니처럼
성도들을 위한
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의 딸로
다시 태어난 우리
주께서 비추어 주시는
빛 속에서
날마다 아름다운 열매로 익어가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 되게 하소서

1998. 10. 31
"숨겨진 여인들의 삶의 모습 - 앤드류스 한인 교회 여성선교회 편" 중에서


***kasda.com 칼럼과 8healthplan.com 칼럼에서 박옥종 집사님과 정무흠 목사의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profile_image

정무흠님의 댓글

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새벽 3 시 반에 기상하면 기도 드리고 성경 읽고 주님께 드리는 시를 쓰고 하루 일과를 계획하며 메모하고 일사불란의 자세로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여 순종하며 살았다.

주님과 나 사이엔 아무 가로막는 것이 없는 듯 하였다. 비록 가난하여 벽에 얼음이 만져지는  영하 3 도의 방안에서 낮에도 이불을 뒤집어쓸 만큼 춥고 배고팠지만 나는 행복의 절정에 있었다.

과거 어느 때보다,  한 가정의 사랑 받는 아내요 온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행복한 여인이라는 소리 듣던, 그 시절의 행복을 과연 이 행복과 비교할 수 있을까?

참으로 세상 사람은 알지 못할 무한한 행복이었다. 

      하루 하루, 그날, 그날 하루의 모든 짐을 다 주님께 맡긴 평안과  완전한 신뢰감에서 오는 평강은 이 세상의 행복이 아니었다. 하늘이 주는 평강 속에 나는 내 속에 계속 솟아나는 생수의 샘을 간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박옥종 집사님 자서전 "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4부 중에서

***더 읽기 원하시는 분들을 kasda.com 칼럼과 8healthplans.com 칼럼으로 초청합니다!***

***그 영광의 빛 속으로!!!-6.25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불치병과 가난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세주를 만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박옥종 Lilian Chung)***

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5부 감사의 노래
그 영광의 빛속으로 제 4부 침례! 새출발! 인생역전!
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3부 한국 동란! 고난의 세월! 가난 속에 핀 꽃!
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2부 행복한 결혼! 해방! 아들, 딸의 출생! 
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1부 출생과 배경

profile_image

정무흠님의 댓글

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진하
2013.10.19 13:55

정무흠 목사님.
제가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일찍 함께 잠을 자자고 조르는 바람에 저녁 9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 1시쯤 잠에서 깨어
정목사님이 올려 놓으신 어머님의 자서전같은 글들을 4시간여 읽었습니다.

구구절절.... 진심과 정직, 하늘을 향한 끊임없는 믿음,
윗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와 자녀들에 대한 지극함,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언제나 반듯하게 살아 오신
어머님의 삶이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최근 들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남의 글들을 읽은 적이 없었는데
정말 정목사님의 어머님의 글은
결코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진지함과 더불어 흥미를 갖게하는 놀라운 힘이 있었습니다.

훗날,
하늘에서 정목사님의 어머님을 뵈올 것을 생각하며

이 새벽 어머님을 사랑하시고
정목사님의 가족들을 사랑하신 그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profile_image

정무흠님의 댓글

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명지원 교수***
2014.06.01 08:57

은혜로운 글, 마음에 오래 남는 댓글들.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 그 힘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박옥종 어머니의 글과 시를 꼭 읽고 싶네요. 박옥종 어머니의 자손들은 참 행복한 분들입니다.
푯대를 명확히 하신 어머니는 위대한 분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모든 자손들의 발길 이르는 곳마다
늘 발자욱에 묻어나 또 다른 발자욱으로 이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박옥종 어머니의 글이 드디어 저에게까지 왔네요. 수천 수만 명 중에 하나로 포함되어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정무흠 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 속에서 막내로 자란 저로서는
박옥종 어머니의 삶이 나의 어머니의 그것처럼 가슴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shalom!

profile_image

정무흠님의 댓글

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옥종 집사님 조의 표하면서 조시 "우리들의 숲에"***
김 명호
2009.09.15 13:05:45

우리들의 숲에는
거목도 있고

막 자라 오르는
새 나무들도 있다.

때가 되면
조용히
삭으라드는
거목들

거목의 그늘에서
튼실하게 자라난
새 나무들이

삭아서 없어진
거목의 빈자리를 채운다.

아직은 아쉽지만
세월의 훈련을 따라
머지않아
듬직한 거목으로 설 것이다.

이어가는 이치를
터득한 거목들이기에

때가 되면
조용히 자리를 비운다.

오늘
숲 한쪽 비탈에
없는 듯 서 있으며

모진 풍상 막아서
새 나무들 가꾸어 온
고고한 거목 하나

조용히 자리를 비우고
오열을 소망으로 대신하는
새로 자란 나무들이

우리들의 숲 그 빈자리
말없이 메우려고

하늘을 우러러
마음의 눈을 뜨고 있다.

2009년 9월 15일
박옥종 집사님 부음을 듣고
김명호 삼가 조의를 표하면서

profile_image

정무흠님의 댓글

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주님과 동행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산 집사님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결혼하고 남편을 통해 우리 가정의 은인 같은 분이라고 자주 들어오던 분, 멀리 미국에 계셔서 자주 뵙진 못하고 막연하게 그 고매한 인격을 존경하기만 하던 집사님을 남편이 학위를 위해 앤드류스에 잠깐씩 두 번 머무는 동안 가까이서 뵐 수 있었고 그분의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큰 특권이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 체류 기간동안{2006년 2월-2007년 8월} 집사님의 원고를 영어로 옮기는 초벌 작업을 도우며('할머니의 마음은 거문고' The Heart of Grandma is Harp, '그 영광의 빛 속으로' Into the Glorious Light) 집사님의 삶을 더 가까이서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귀한 경험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다지도 마음이 순수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정직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렇게 열렬할 수 있을까' 한 문장 한 문장 서투른 영어로 글을 번역하며 집사님의 거울같이 맑은 영혼의 모습에 감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집사님의 글을 통해 제 삶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되었고 어느덧 집사님의 아름다운 품성을 닮고자 애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일들에 때로 얼버무림으로 거짓을 말하고 싶을 때 집사님의 엄격한 정직의 모습이 떠올라 그 유혹을 물리치곤 합니다. 

남의 어려운 형편을 자신의 일처럼 마음아파하고 그 일이 해결될 때까지 기도로 물심양면으로 돕는 모습에 제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뉘우치곤 합니다. 

자투리 천 조각 하나라도 버리지 않으시고 재활용하시며 알뜰하신 분이 남을 돕는 일에는 가장 크게 손을 펴는 집사님의 모습에 진정한 이웃사랑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실 집사님이 쓰신 위 두 편의 책에는 저의 잊지 못할 기도 응답의 사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006년 2월 저희 가족은 남편의 박사학위 논문을 마치기 위해 모두가 앤드류스로 갔습니다. 당시 남편은 1년 먼저 앤드류스로 가서 논문을 쓰고 있었고 저는 삼육대학에 남아 여대 기숙사 관장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논문이 기한 내에 마쳐지지 않아 아무런 경제적인 대책도 없이 저도 앤드류스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어느날 아침 성경과 예언의 신을 읽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것, 특히 경제적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여 저도 직장을 그만두고 앤드류스로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학생 가족 비자라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던 저는 매달 식료품 비용만이라도 벌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무렵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청년들에게 영어로 읽힐 책도 쓰고 편지도 쓸 수 있도록 영문법 과외를 받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영문법 공부를 하다가 아예 원고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집사님은 매달 제가 하나님께 기도한 꼭 그만큼의 비용을 주셨습니다. 논문을 마칠 때까지 저는 집사님의 글을 영작하며 집사님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배우는 특권과 함께 경제적인 도움까지 받는 이중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느날 집사님의 시집을 읽다가 '시련 속에서'라는 시가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아 세미나리 학생에게 부탁하여 배경그림을 넣어 프린트해 드리며 집사님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때 물건 고르실 필요가 없겠다고 이렇게 귀한 시들을 선물하시면 가장 좋은 선물이 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생각을 기뻐하시고 그 후로는 지인들에게 시로 선물을 대신하시곤 하셨습니다.

한 번은 '오늘을 기쁘게'라는 시가 하도 좋아 생신 때 액자에 넣어 드렸는데 글씨가 너무 작게 나와서 잘 안보이실 것 같아 새로 큰 것을 해 드렸더니 작은 액자는 제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지금도 그 시는 저희 집 피아노 위에 올려 져서 제게 하루를 밝고 기쁘게 살 수 있는 활력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제게 선명하게 남아있는 집사님의 생전 모습은 날마다 PMC로 기도하러 오가시는 모습입니다. 겨울에는 두터운 초록색 파카를 입으시고 여름에는 하늘색 외투를 입으시고 집에서 교회까지 꽤 먼 거리를 늘 오가시던 모습, 교회 입구에 무릎 꿇고 앉아 단정히 기도하시던 모습을 자주 뵈었습니다. 그 기도처를 오가시며 예수님과 나누는 마음의 대화들이 집사님의 시상의 많은 부분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고 일어서니 중년의 한 인자한 분이 곁에 계시다가 '당신의 기도가 다 응답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뵌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집사님은 예수님과 매일 가장 가까이서 동행하셨고 저희 모두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답니다.

저희가 앤드류스에 머무는 동안 잠깐 시댁 조카가 함께 지내 적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축구를 하다가 다쳐서 학교를 조퇴하고 집에 와서 누웠는데 침대에서 잘 보이는 곳에 말라기의 말씀,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를 크게 써서 붙여두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곁에 있는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저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어요. 그렇게 믿어져요.' 단순하지만 확신에 찬 그 말씀에 '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저의 믿음 없음을 회개하게 되었답니다. 요즘도 종종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그대로 믿는가' 돌아보곤 합니다.

집사님 그동안 내신  글들, 시집들, 책들, 자서전('그 영광의 빛 속으로')과 쓰고 계시던 '기도'(제목이 떠오르지 않는군요)의 글들을 통해 집사님 소원하시던 만명의 영혼, 아니 십만명의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고 마침내 넉넉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집사님의 얼굴을 조용히 그려봅니다. 집사님의 소녀같이 해맑은 미소가 떠오르는군요. 이상하게도 저는 집사님의 부고를 듣고도 마음이 그렇게 슬프지가 않았습니다. 멀리서 소식만 들어서 실감이 안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집사님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삶을 사셨기에, 삶의 종착역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인간의 욕심과 결점이 남아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미완의 작품이 아닌, 죄된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예수님의 사랑의 품성으로 온전히 물든, 하나님의 손으로 빚어진 완성품이 되신 분이라고 믿기에, 그 품성의 향기가 저희에게 너무나 강하게 남아있기에, 집사님을 떠나보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실 때까지 잠깐 쉬시는 모습, 한낮에 잠시 눈붙이셨다가 다시 일어나실 모습으로만 그려집니다. 집사님의 남기신 글로, 보여주신 모본으로 저희 속에 집사님은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집사님, 사랑합니다. 집사님처럼 그렇게 맑고 순결한 삶 살 수 있다는 것 모본으로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09년 9월 20일
멀리 한국에서 집사님이 사랑해주셨던 어린 딸 OOO 올림

profile_image

정무흠님의 댓글

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여명의 노래
박옥종

안개 속에 조는 듯한
가로등은 조용히 길을 지키고
아직도 별이 반짝이는 새벽 하늘을 이고
걸어가면 주님은 내 마음에
샛별로 떠 오르신다

어두움도 안개도 사라지고
동녘 지평선에 여명이 찾아와
맑게 분홍빛으로 물들어갈 때
아직은 태양이 뜨지 않았으나
내 마음엔 주님이 태양으로 떠 오르신다

어둠이 아무리 짙은 세상일지라도
안개가 아무리 두터운 길일지라도
그 모든 것 뚫고 주님은 태양으로
온 누리를 밝게 비추신다
죄로 어두워진 인간의 마음을 비추신다

낙담과 좌절 딛고 일어나
소망과 안위로 밝아진 마음
힘찬 생애로 이어지리
영원한 길로 영원한 길로
승리의 개가 부르며 행진하리

***날마다 새벽기도 드리시던 신앙심 깊은 어머님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profile_image

정무흠님의 댓글

no_profile 정무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국일보 시카고 기사! "끝없는 감사와 찬양의 삶" "시선 [영원을 걸으며] 펴낸 박옥종 여사]"
"[청상의 망부석] 40년의 한과 고통 2백편의 신앙시로 승화시킨 역작"

25살의 아름다운 나이에 6.25 사변으로 남편이 행방불명, 40년간 [청상의 망부석]이 된 박옥종 여사(69세)가 최근 [영원을 걸으며]란 시선을 펴내고 기뻐하고 있다.

[시조사]에서 발간된 동 시선에는 [엔학고래], [소망의 별], [나의 기도]등 험한 인생의 여정 속에서도 구원의 밧줄을 놓지 않고 기쁨과 탄원, 슬픔과 고통을 줄줄이 꿰어 하나님께 바친 2백편의 주옥같은 글들이 3백여 페이지에 가득 차 있다.

시카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담임 정무흠 목사의 어머니인 박옥종 여사는 경남여고 출신으로 대구 청구대 국문과에서 수학했으며 1991년 레익 미쉬간칼리지에서, 도 삼육대 신학과에서도 공부의 근을 놓지 않고 배움의 집념을 불태우며 수많은 시들을 써왔다가 이번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경북고교 출신의 남편을 맞아 모든이의 선망의 대상이 된 행복한 결혼생활이 전쟁으로 7년만에 끝이 나고 온실속의 꽃이 냉혹한 바깥 땅에 내동댕이 쳐진듯 밤마다 단말마의 고통에 시달리다가 [복잡다기 요급심장치료]라는 진단을 받게된 어느날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이 가슴을 비수로라도 열어봤으면"하고 몸부림쳤다는 박옥종 여사.

그러나 부처도, 육신의 부모도 살려줄 수 없었던 생명의 외경 앞에서 빈사의 상태에서 드린 기도와 탄원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오늘의 행복한 삶을 얻게 되었다는 것.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사랑하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인가 방문을 여시고 한밤중에라도 아버지가 오시면 즉시 문을 여러드려야 된다시며 옷입은채로 주무시던 어머니, 아침 식사 때면 제일 먼저 밥그릇 떠서 아랫목에 묻어두시던 너머님이, 요즘은 자식들과 손자, 손녀, 외손자들까지 다 믿음안에서 공부 잘하고 건강해서 무척이나 행복하시다"고 정무흠 목사는 말한다.

"이제는 남편 잃고 잠안오는 밤의 말할 수 없는 번뇌를 쏟아놓는 글을 쓰지 않고 나의 생명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의 찬양의 글을 바치며 이 넘치는 은혜를 이웃에게 나누고자 살아가고 있다"고 박여사는 최근의 심경을 고백하고 있다.

"안된다. 죽어서는 안된다. 너는 두 어린 생명의 너머니가 아닌가. 네가 죽으면 두 아이는 고아가 될 것이다..."

그 고통스런 죽음의 순간에 어른거렸던 한살짜리와 세살짜리 아이들이 커서 어엿한 정신과 의사 출신의 목사가 되었고, 한국의 미 공군 병원 부원장 김영섭 장로의 부인도 되었다.

시집출판 못지 않은 인생의 또다른 역작이 된 것이다.

또한 손자, 외손자까지도 로마린다 의대에 진학, 학교 부근에서 그 핏줄들을 돌보며 남북통일의 소원을 품고 [도르가]와 같이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며 성경대로 실천하려 애쓰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

"나 낙심되어 주저앉았을 때
내 귀에 안위의 말씀을 주셨으며
슬픔에 싸인 내게
주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셨기에

아아 주님,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내 곁을 떠나가도
주는 영영 나와 함께 하시리니...."

시집의 제목처럼 [영원을 걸으며] 함께 동행하실 이가 있는 행복한 그 길을 박옥종 여사는 이제, 기쁨에 겨워 편편의 자작시로 남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배미순 기자 (한국 일보 시카고 1993. 2.27)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