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모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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뱟모섬의 눈물!
밧모섬은 당시에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그리 크지 않는 돌산 섬이었다.
지금은 계절 따라 얼마간의 그리스인들이 사는 그리스(헬라) 영에 속한다.
밧모섬은 사도 요한이 1세기 말에 유배갔던 섬이다.
황제가 자칫하여 마음이 바뀌는 날이면 사도 요한은 언제라도 다시 죽임
을 당할 수 있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감옥생활이나 다름없었다.
사도 요한은 마음이 울적할 때 마다 주님 품 안에 안겼다.
그리고 안드레와 같이 주님의 처소를 찾아가서 첫 제자가 된 그 시절을
생각했다. 그리고 항상 주님 곁에 앉아 사랑받던 그 시절을 생각해 냈다.
요한은 이때쯤 90세가 넘은 나이였다.
그는 바위들이 많은 밧모섬의 채석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산허리 맨 위 바위 굴 속에서 홀로 살았다. 어떻게 살았을까?
의아스럽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날 때 마다 힘이 없어 돌벽을 부여잡고 일어났다 한다.
아마도 그의 마음이 울쩍하고 답답할 때이면 힘을 다해 산허리 한 바위
위에 올라 서역의 석양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예언서 글쓰기에는 하늘에는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고
하였다.
종신형, 미래가 보이지 않는 세상, 얼마나 암울하고 외로웠을까!
해가 질 무렵에는 요한은 자신의 인생석양을 생각하곤 했던 것 같다.
석양의 대양 위로 햇빛의 편린이 일때 마다 요한은 하늘의 진주문을 바라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눈물이란 무엇인가!
단지 눈의 물인가.
요한의 눈에서 힘들고, 아프고, 서러울 때 눈에서 나는 물이 눈물이었다.
진한 눈물이다. 눈의 물은 뺨 위로 흐른다.
석양이 어두움으로 잠잠해질 때 까지 요한은 눈물을 많이 흘린 적이 있었
던 것 같다.
주님이 더 많이 그리워 많이 많이만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여러 제자들이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죽어간 옛 정에 눈시울을 붉히면서
많이 울었던 것만 같다.
지금까지의 고난의 시절 서러워 눈물을 흘린 것 같다.
요한은 항상 대담하고 천연 스럽기 만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눈물이지만 하늘 이상을 바라보면서 계시록의 싱그러운
예언서를 집필하였다.
요한은 종신형이었지만 황제가 아내에 의해 살해되자 왕법이 폐지됨으로
사도 바울이 2년 만에 밧모섬을 떠날 때는 다행히 예언서가 다 마쳐졌다.
눈물이 서려 차마 동굴을 떠나가기 싫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어디론가 또 정처없는 곳으로 또 가야만 하기에 그러했다.
‘내 몸을 따스하게 안아주었던 동굴!’ 했던 것 같다.
‘동굴아! 그동안 네가 나를 지켜주었구나!’ 했다.
요한은 강직하지만 정서의 사람이었을 것이란 말이 긍정적인듯 하다.
비척 비척 비척걸음으로 걷는 사도 요한의 발걸음에는 그를 지키는
감격의 눈물도 있었다. 이것이 그의 큰 힘이었다.
사도 요한!
밧모섬의 사도 요한!
우리도 그와 같이 산다!
우리도 그와 같이 살고만 싶다!
사도 요한이 얼마나 많은 향기로운 신학의 체험 속에서 살았을까!
결코 예수 없이 신학이란 있을 수 없다.
그에겐 주님이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는 향기로운 신학이었을 게다.
우리도 할 수만 있으면 그를 이해하는 이해의 신학 속에서 계시록의
영감성을 바라보면서 같은 눈물로 사도 요한과 같이 주님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의 감격의 눈물, 소망의 눈물을 우리의 가슴으로 안 는다!
그 언젠가는 오! 저가 사도 요한, 하고 달려가 그를 맞을 날이 쉬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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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90 John writes his epistles
AD 95 John writes Revelation*
AD 96 John writes his Gospel
AD 98 John 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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