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만의 승리의 결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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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 전에 쌘프란시스코를 출발하여 로스안젤리스까지 간 일이 있었다.
거의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 하차 준비를 하면서 ‘멀고도 멀구나!’ 싶었다.
이런 심리적인 현상은 그날의 건강과 기분에 많이 달린 것이지만 사실 멀고
도 먼 거리였다.
6-7시간이 걸리는 거리 였으니 깐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이때 불현듯이 생각나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아!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운명하실 때 까지가 꼭 6시간이었지!’ 했다.
한 생명이 죽어가는 시간, 만고에 다시 없을 처절하고도 쓰라린 아픔과 고통
의 시간 6시간이었다.
사람처럼 인성을 쓰신 주님에게 얼마나 길고도 긴 시간 이었을까! 싶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시간은 ‘제 3시’로써 오전 9시에서, ‘제 9시’ 곧
오후 3시(막 15:25, 34 참조) 까지, 곧 6시간 만에 운명하신 것이다.
우리처럼 인성을 쓰신 주님께서 그 6시간이 지루한 시간이 아니라 아파서
견디기 힘든 최악의 기나긴 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 되었다.
나의 여행처럼 지루한 시간이었을 것이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인 것이다.
밤 새도록 시달린 몸, 가시면류관의 아픔, 채찍에 마진 자리의 아픔, 창에 찔
린 자국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두 손과 두 팔에 큰 못이 박힌 채 매달리는 그
아픔의 한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때 내 마음은 갑자기 숙연해졌다. 숙연하기 보다는 눈물 나는 일이었다.
사람들 더러는 십자가의 운세 라고 말하지만 그 깊고 깊은 통증과 고난의 실
상은 어찌 말로 다 묘사할 수 있으랴 싶었다.
한편 어쩌면 주님이 당하신 그 고통의 시간은 십자가를 진 다른 이들 보다는
더 짧은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때로는 수일 동안 십자가 상에서 온갖 고통을 당하다가 겨우 숨을 거두는 사
람들 도 허다했다고 한다.
주님은 능히 신성의 주님이시기도 하기에 만장앞에서 수치스러운 십자가
지기를 거뜬히 거부하면서 재치고 일어나 천지를 진동케 하실 수 있으셨으
나 결코 그리하지 않으신 주님이셨다.
어쩌면 사람으로 말하면 아마도 6시간 내내 이리 할까, 저리 할까 하는 유혹
의 시간이 되었음직도 하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하지 아니하셨다.
우리는 우리가 어찌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경이로우심 을 다 묘사할 수 있으
랴 싶기만 하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의 6시간 만의 결판은 죽음이었다. 이것이 숭리 였다.
주님의 마지막 말은 ’다 이루었다!’ 하셨다!
장차 우리가 하늘나라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 살 때에 라도 우리 주님은 그
지긋지긋할 십자가의 인성 그대로, 두 손과 두 발에 못박힌 자국 그대로를
지키고 계신다고 한다. 아, 이 얼마나 한 사랑인가! 하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의 그 공과는 하늘나라에서도 성도들에게 영원한 공
과라 한다.
나는 생각했다.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정작 십자가에 못 박히고도 오랜
시간을 능히 이기신 나의 주님의 체험같이 이 세상을 이기고 살아가야 하
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몹쓸 사람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렇게도 악한 짓을 행했던 존재였 단 말
인가 싶어 나는 이제부터 오히려 온 세상 것 다 버리고 오직 주님께로
온전히 돌아가며 은혜를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굳게~ 마음 먹고
다짐했다!
주님의 6시간 만의 십자가상의 죽음이라는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고 우주
를 원점복귀하려는 승리의 결판,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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