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하늘나라 광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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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에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하늘나라’(1) 를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2)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을 적겠습니다.
‘또 저가 수정같은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
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가지 실과를 맺
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생하기 위하여 있더
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
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계 22:1-5)
이상에서 보면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보좌가 처음으로 언급되었음으로 특히 중요
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생명강의 묘사는 새 예루살렘을 관통하여 흐르는 새 예
루살렘성 밖이라는 것입니다.(계 21:10 참조)
그런데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생명강이나 생명나무는 사망과
고통이 없는 영생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 지. 화잇의 말씀에 의하면 예수재림
의 때에 모든 성도가 새 예루살렘성 중앙으로 모이고 예수님이 구원을 얻은 모든
무리들 앞에서 생명과를 따 아담에게 주어 먹게 한 후부터서 모든 성도가 생명과
를 먹기 시작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이제는 생명나무는 누구에게나 어느 때나 금지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구속받은 자들이 그 나무에 자유롭게 가까이 가고 따 먹는다고 합니다. 생명나무
는 열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
을 소성 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하늘에 갔을찌라도 생명과를 먹지 않으면 죽나
요? 어찌 생각합니까? 아니지요! 지금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입니다. 죽
지 않고 영원히 삽니다. 그러면 ‘생명나무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에스겧의 묘사에는 만국을 소성하게 하는 생명나무 잎사
귀가 ‘약재료가 되리라’(겔 47:12)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악이 박멸됨으
로 질병과 사망은 회복된 땅에서 영원히 제거되었다고 합니다.
‘만국의 소성’이라는 표현은 모든 민족적, 언어적 장벽들 다 그 구분이 제거되었
음을 상징한다.’(랑코 스테파노비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610) 라고 합니다.
‘다시 저주가 없겠고’라고 했습니다. 죄로 인하여 땅에 저주가 임’(창 3:17)하였
지만 죄의 근절로 그것의 세력인 저주가 제거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자들
은 회복된 에덴으로 돌아와 생명나무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에는 ‘사람이 그 가운데 거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
하리니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리로다’(슥 14:11)고 예언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그의 이마에 있으리라’ 한 말은 이마에 글이 쓰여지는 것이 아니
요 주님의 이름이 주님의 소유권과 인증의 상징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일
찌기 계 14:1절에서 언급되었던 시온산에 서있는 144,000인의 이마에 하나
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내용과 반복적인 것입니다. 구속받은 자들은 자
신들의 이마에 짐승의 이름을 지닌 표를 받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계 15:2)
하나님의 이름을 간직한 상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품성을 대표합니다. 구속받은 자들은 영원토록 그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5절에서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췸이라’ 했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의 영속적인 임재로
인한 영광의 빛은 천체의 빛을 무용하게 만들어버리는 세계가 되어진다는 것
입니다.
5절 마지막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이러한 세계 속에서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
릇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왕노릇? 무슨 뜻일까요?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
스도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죽으심으로 구속받은 자들은 왕들과 제사장이 되
었다.(계 1:6, 5:10)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참으로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딤후 2:12) 라고 했습니다. 이제 구속 받은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 속
에 거하면서 그분과의 긴밀한 관계를 누리면서 거리낄 것이 없이 영원토록
그분과 함께 왕노릇한다는 것입니다.
‘왕 노릇’(계 5:10 참조) ‘이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거나 다른 세
상 위에 군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구속받은 자들의 더
함 없는 행복을 상징하는 것일 것이다. 더 이상 그들은 핍박하는 세력의 압제
적인 지배 아래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왕의 자유와 풍부를 누릴 것이다.’
(본 교회 성경주석 14. 661)
아, ‘왕노릇’, 왕은 아니지만 왕과 같이 자유하며 사는 삶, 얼마나 좋을까요!
참으로 자유하면서 아무런 거리낄 것 없이, 아무런 부담을 주는 일이 없이
영원히 주님 사랑을 사모하면서 사는 행복한 삶을 묘사하는 것만 같습니다!
탁월한 묘사인 것만 같습니다.! 하늘나라는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
라 모든 사람이 다 왕노릇하는 씨스템입니다! 꼭 하늘나라에 가고 싶습니다!
아멘!
다음 시간에는 ‘성경상 하늘나라에 관한 주요한 묘사 몇가지’를 말씀드리면
서 계시록의 다음 새 예루살렘 과정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성도님! 왕노릇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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