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장에 나타난 새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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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님! 이제는 계 21장에 나타나는 새 예루살렘 연구를 하겠습니다. 순수함과 단순
함과 열망과 소망 중에 기쁨이 충만한 연구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계 21:1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
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사도 요한은 이 광경을 보면서 많이 놀랐을 것만 같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
음 땅’은 지금의 하늘과 지금의 땅이지요. 지금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다른 세계
이지요! 그렇지요! ‘바다도 있지 않더라’는 요한의 말인데 사면팔방 작은 밧모섬에
갇혀있으면서 둘러 쌓인 넓은 바다, 감옥 같게 하는 바다를 묘사하는 표현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보니 영의 시각이 열리면서 ‘새 하늘’(new heaven)과 ‘새 땅’
(new earth)을 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진짜 새것인 하늘과 땅이라는 말인가
요? 아니지요. 여기에서 ‘새’(new)는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닙니다. 헬라어 ‘카이노
스’인 ‘새’는 낡고 더럽혀진 것과는 반대로 이미 존재하는 체질을 새롭게 형성하는
의미의 ‘새’입니다. 집을 좋게 수리하면 새집이 되었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표현
이지요.
창조주의 손에서 처음 나올 때 완전했던 것, ‘심히 좋았더라’(창 1:3)고 한 것이 죄
로 인해 비참하게 손상되어 영원히 계속되도록 허용할 수 없는 그것을 ‘카이노스’
해 질적으로 ‘새’롭게 해 ‘새 땅’, ‘새 하늘’을 이루게 했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서도
새 신랑과 새 신부가 첫날 밤 들어가는 옛 방을 새롭게 단장한 마치 새 방과 같은
것입니다.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이것 역시 새롭게 한 한 예입니다.
*이제 계 21:2절을 보십시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
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고 했습니다.
그러니깐 요한이 보고 살았던 이 땅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입니다.
여기서도 ‘새’는 1절에서 말한 ‘새’로 질적으로 새로워진 ‘카이노스’입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을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죄의 색이 짙은 옛 것들은 다 사라지고 없는 모습입니다. 얼마나 만족하고 즐거워
보였을까요!
*계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같이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라고 했습니다.우리가 장차 하나님과 함
께 있다니 참으로 반가운 표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의 의문이 있습니다. 이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고 새 예루살렘에 있는데 왜 ‘장막’, ‘하나님의 장막’이라고 표현했을까요?
무슨 뜻일까요? ‘장막’은 ‘스케네’라 하여 ‘천막’, ‘오두막’의 뜻인데 말입니다. 여
기에서 사실 주님은 옛날의 사람과 함께 서로 옛날의 그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
입니다. 성소시대에는 ‘새기나’의 간접 모습으로, 후에는 인간가족으로 ‘성육신’
하며 계셨는데 이제는 새 천지의 그 백성들과 함께 거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강조
하면서 지나간 그때를 상기하는 ‘장막’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의미가 깊지요!
하나님은 ‘새 예루살렘’이지만 옛날의 연상법의 어조로 ‘장막’하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억담 같기만 합니다! 한 인자한 아버지가 좋은 집에 살면서 아들에
게 ‘옛날 그 집에 살때가 그 집이 역시 우리 가족 모두에게 다 함께 좋았느니라!
그때를 잊지 말거라!’ 함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도 추억담을 하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맞아요! 그래서 주님이 하늘에서 살지라도 십자가 못박힌 손과 발 그
대로 가지고 사시는 것이지요! 사람이 하나님 닮아서 추억담을 종종 하지요! 참
그래요! ‘새 예루살렘’ 하나님의 백성들이 옛날의 구속사를 그리는 십자가 못박
힌 그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새 예루살렘’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의 그
사랑을 영원히 배우도록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계시록 21:4절 말씀은 이러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사랑합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눈물’, 문자적으로 ‘각 눈물’입니다.(계 7:17, 사 25:8, 65:19 참조) 여기에
‘다시 사망이 없고’라고 했는데 헬라어 문장의 문자적으로는 ‘다시 그 사망은 더
이상 있지 않을 것이다.’입니다. ‘그 사망’입니다. 무슨 사망일까요? 죄의 결과로
이르러 오는 그 사망 말입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겪고 슬퍼하고 이별하는 그 슬픔,
사망 말입니다. 이제는 그 사망이란 있지 않을 것이란 말입니다. 할렐루야!
오! 얼마나 놀라운 묘사이며 광경이며 현실적인 기쁨의 묘사 입니까! 아니 그렇습
니까! ‘사망 아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전 15:54) 했지요. 문자적으로는 ‘그 사
망이 승리 중에 삼켜지게 되었다.’와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는
바울의 묘사를 생각해 보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애통하는 것’, 곧 사별이 따르는 슬픔 같은 것 애통하는 것들의 원인들이 완전히
제거될 것(사 35:10 참조) 이라는 것입니다. ‘곡하는 것’, 곧 곡하고 울부짖는 것
은 장래의 아름다운 땅에서는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픈 것’, 특히 노년기가
되어가면 아픔과의 싸움하지요. 그런데 인생생애의 불행과 고뇌의 대부분이 괴
로움을 주는 고통의 결과인데 우리가 장차 살 미래세계에서 이것을 완전히 추방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요! ‘처음 것들’,
곧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고 알고 있는 상태들이 다 지나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주의 흔적을 지닌 것들은 아무 것도 없을 것’(계 22:3 참조)이라는 말씀입니다.
아! 좋은 세상입니다! 그때를 위해 잊지 말고 이제는 승리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항상 소망 중에 기뻐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더욱 더 온통 전적
으로 헌신하는 삶을 누리시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몇차례에 걸쳐 새 예루살렘
에 대하여 더 많이 설명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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