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영성이 시험대에 오르다.
페이지 정보
본문
SDA 교육의 요람에서 다시 일선 교회로
자원을 해서 나올 때가 입지 딱 40이었다.
교회마다 뭔 문제가 없는데가 어디 있겠는가?
그 당시 서울 봉화교회는 교회 차량 때문에
분쟁이 있었는지? 당분간은 차량이 없을 것
이라고 귀뜸을 해 주셨다. 1994년 그 당시
저는 요한복음의 예수, 요한일 이 삼서의 사
랑,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씨리즈로
대언을 했었다. 그 때는 TV 나 Internet 이
없었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화요일, 금요일,
안식일 예배 출석율이 뭐 상당히 높았다. 그
리고 저는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신자 방문을
했다. 그 때 마침 선교회 서기 한재화 여 집사
님께서 방문 할 집과, 점심 식사할 집을 다
미리 배정을 해 주셔서 저는 그저 말씀만 전하
였다. 그런데, 여 집사님들께서 십 여명씩 나오
셨다. 부임한지 몇 달만에 스타렉스 차량을 뽑
아 주셨다. 신자 방문이 살아나니 교회가 활성
화가 되었다. 그 때 마침 삼육대학에서 학생들
을 지역 교회에 출석을 하도록 권장을 해서였
는지? 안식일이면 가운데 복도에 보조 의자를
놓고 예배를 드릴 정도였다. 그러니 뭐 청년이
불어나자 2층에서 유치원을 하시던 집사님이
안식일에는 거기서 아이들과 찬양대가 쓸수
있도록 오픈을 해 주셨다. 봉화 교회는 한독 약
품 앞 태능 방면 버스 정류소 앞이어서 교통이
아주 편리해서 그랬는지? 그야말로 교우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이때다 싶어서 교회
건축을 위해서 모금을 하기로 삼육대학에 가서
결의를 하고 방문 팀에서는 각기 적금을 붓기
시작을 했는데, 수석 장로님께서 이걸 미루자
고 교회 결의를 뒤집으셨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시자는 것이었는데, 저는 그만
맥이 쑥 빠졌다. 그래서 합회를 찾아가서 울
면서 사정을 말씀드렸다. 이 목사 알았으니
일년만 더 있으라신다. 그 해 연말 목회자 협
의회를 가면서 대학 동창이었던 박지련 총무
부장님이 우리 합회가 요즈음 이 목사 덕에
먹고 산다고 귀뜸을 해주셨다. 작은 교회에서
동중한 전체에서 10위 안에 들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찬양 경연대회 1등, 가을 체육대회 1
등 뭐든지 했다하면 똘똘 뭉쳐서 단합되는 모
습을 보일 수 있었다. 벌써 30여년 세월이 흐
르고 지난 해 한국에서 미주 협의회 모임이
있어서 갔더니, 여 집사님들이 손을 꼭 잡아
주시면서 목사님, 저희 교회는 그 때가 제일
재미가 있었다며 눈물을 글성이셨다. 그 다음
해에 저는 연합회 행정위원이 되어 대관령을
넘어 강릉 중앙교회로 전임을 가게되었다.
이사를 가던 날, 이사짐 다 실어 주시고, 다섯
분이나 강릉까지 동행을 해주셨다. 그러니
봉화 교회에서의 열풍이 강릉에서도 계속해서
타오를 수 있을지? 그저 기도하는 가난한 마음
으로 스키를 타는 것처럼 대관령을 넘어갔다.
- 다음글착한 마음가짐으로 사는 일등급 인생! 26.04.2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