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 30 - 31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하신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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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30절~31절은 요한복음 전체의 결론이자, 사도 요한이 이 복음서를 집필한
궁극적인 이유를 직접적으로 밝힌 성경의 핵심 구절입니다. 먼저 해당 본문을 살펴보면 다음
과 같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개역개정)
이 구절에 담긴 깊은 영적, 신학적 목적을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깊이 있게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1. '표적(Signs)'을 통한 기독론적 목적 (예수는 누구이신가)
요한은 복음서를 쓰면서 기적이라는 단어 대신 의도적으로 '표적(Σημεῖον, Sēme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표적은 단순히 초자연적인 기적 자체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 기적이
가리키는 '방향과 대상'이 중요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마치 도로 표지판이 목적지를 가리키는
것처럼 말이다.
- 선택과 집중: 30절에서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수많은 기적 중 오직 7가지의 표적만을
- 선별하여 기록했다고 고백합니다(가나 혼인잔치부터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까지).
- 목적지: 이 표적들이 가리키는 종착지는 단 하나,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 (메시아)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정치적 해방자로서의
- 메시아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과 본질이 같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는 것이
- 요한의 첫 번째 기록 목적이었다.
2. 수신자들을 향한 목회적 목적 (믿음의 견고함)
31절의 "믿게 하려 함이요"라는 헬라어 시제(현재 능동태 가정법)에에 대해서는 성경 학자들
사이에서 깊은 논의가 있습니다. 이 시제는 두 가지 뉘앙스를 모두 담을 수 있습니다.
- 불신자를 향한 복음 전파: 예수를 아직 모르는 이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여 처음
- 믿음을 갖게 하려는 목적입니다.
- 기존 신자들을 위한 신앙 수호: 이미 예수를 믿고 있는 공동체(당시 영지주의 등 이단 사상
- 과 로마의 박해로 흔들리던 초대교회 성도들)가 그 믿음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견고히 붙잡
- 도록 격려하려는 목적입니다.
결국 요한은 지식적인 동의를 넘어, 삶을 통째로 던져 신뢰하는 '인격적이고 지속적인 믿음'을
촉구하고 있다.
3. 궁극적인 구원론적 목적 (생명을 얻게 함)
복음서를 기록한 가장 최종적이고 영광스러운 목적은 바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는 것"
이다.
- 조에(Ζωή, Zōē)의 생명: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생명은 단순히 육체적 숨을 쉬는 생물학적
- 생명(Bios)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음으로써 누리는 신성한 생명, 즉 '영생'
- 을 의미한다.
- 현재성: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생은 죽어서만 가는 미래의 천국이 아닙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 아들이심을 '지금 믿는 순간' 우리 안에 시작되는,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와 변화된 삶을 뜻
- 한다.
- 그 이름을 힘입어: 오직 예수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 즉 그분의 권세와 인격을 의지할 때만 이
- 생명이 인간에게 주어짐을 분명히 한다.
요약하자면
요한복음 20장 30-31절은 복음서의 '네비게이션'과 같다. 요한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 예수님의 놀라운 이야기들을 기록한 이유는, 당신이 글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수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견(기독론)하여,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고(목회론), 그 결과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짜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게 하기 위함(구원론)입니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기록을 넘어, 읽는 이의 삶을 변화시키고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는 것 — 이
것이 사도 요한이 붓을 든 진짜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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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화이트(Ellen G. White)은 요한복음 20장 30절~31절의 말씀, 특히 "표적"과 "믿음", 그리고
"생명의 관계에 대해 그녀의 대표 저서와 영감적인 글들을 통해 매우 중요한 영적 교훈을 남겼다.
그녀의 언급과 사상을 종합해 보면, 요한복음 20장 31절에 나타난 기록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은
깊이 있는 해석을 제시한다.
1. 기적(표적) 자체에 머물지 않는 '참된 믿음' 촉구"
엘렌 화이트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이 귀한 것이지만, 눈에 보이는 이적과 기사만을 쫓는
믿음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사건(요한복음 4장)을 다루는 저서 《시대의 소망(The Desire
of Ages)》에서 요한복음 20장 30-31절의 배경이 되는 '표적과 믿음'의 본질을 이렇게 언급한다.
"그 신하는 구주를 믿는 믿음을 가졌으나, 그의 믿음은 예수께서 그의 요청을 들어주시는가에 달려 있었다. (중략) 그러나 그분은 당신을 향한 그들의 믿음이 어떤 지상의 유익을 얻기 위한 이기적인 동기에서 머물기를 원치 않으셨다."
즉, 엘렌 화이트는 요한이 표적들을 기록한 이유가 "초자연적인 현상 그 자체에 열광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인격'을 조건 없이 신뢰하는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함"이
라고 해석하고 있다.. 참된 믿음은 표적을 보지 않고도 그분의 성품과 약속을 믿는 것이다.
2. '말씀에 기록된 증거'의 충분성 (30절에 대한 해석)
30절의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라는 부분에 대해, 그녀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만으로도 인류가 구원을 얻고 예수를 믿기에 '완전하고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녀는 마지막 시대의 기만과 이적들을 다루면서,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표적과 말씀 외에
추가적인 자극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요구하는 것은 사탄의 미혹에 빠지기 쉬운 상태가 되
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경의 진리로 마음을 방어한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마지막 대기만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중략) 우리는 감정이나 눈에 보이는 이적이 아니라,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Scripture)의 약속을 있는 그대로 붙잡아야 한다."
요한이 수많은 기적 중 일부를 선택하여 기록한 것은(31절),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서기에 그 기록된 말씀만으로도 충분(Sufficiency of Scripture)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화이트의
일관된 견해이다.
3. '그 이름을 힘입어 얻는 생명'의 현재적 변화 (31절에 대한 해석)
엘렌 화이트는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는 결론을 단순한 교리적 동의가
아닌 '실제적인 삶의 변화와 품성의 변화'로 연결 짓습니다.
그녀는 저서들을 통해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구체화한다.
- 품성의 재창조: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은, 단순히 미래
- 에 죽어서 가는 천국의 티켓이 아니라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정신과 품성을 반사하는 삶"을
- 의미한다.
- 통로가 되는 삶: 화이트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신성한 위탁은, 모든 영혼이 그분의
- 은혜의 풍성함과 사랑을 세상에 전달하는 통로(Channel)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 복음서의 기록 목적대로 예수를 믿어 생명을 얻은 사람은 세상에 그 생명의 능력을 나타
- 내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약
엘렌 화이트의 관점에서 요한복음 20장 30-31절은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이 기적과 감정이라는
모래 위에 신앙을 세우지 않고, 기록된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확
고히 믿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의 살아있는 품성과 생명을 드러내게 하려는 책의 요약"으
로 해석할 수 있다.
- 다음글현대의 골고다 언덕길에서 비추이는 이. 지. 화잇의 말세론적인 불빛 26.07.04
댓글목록

Jewooklee님의 댓글
어제 안식일에는 May 자매님께서 Athens 에 사시는 정 형제
부부를 예배에 초대하였다. 얼마나 반가운지? 아랫층에서 겸손
예식을 마치고 본당에 들어서는데, 벌써 아! 저분들 이로구나!
감이왔다. 성만찬 예식과 요일 4: 20 - 5:3절의 '하나님을 사랑
하는 자는 그 이웃을 사랑 하느니라'는 말씀과 아울러 미국이 영
국으로 부터 독립한 250주년이 된것을 설명해 주었다.
예배가 마치고, May 자매님 댁에서 루마니아식 빵과 스프 그리
고, 체리와 케익까지 다양한 course 음식을 나누며,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다 보니 벌써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 후에 다시 Ingles lounge 로 나와서 어디 사시는지? 무슨
일들을 하시는지? 누구 또래인지? 호구 조사까지를 마치고
정다운 교제를 맺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정다운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그댁도 그리고 저희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기
에 서로를 신뢰할 수 있었던 만남과 사귐이었다. 집에 왔더니
반가웠다는 문자가 와있다. 안식일에 만남, 오아시스 같은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