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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LA 마라톤 / 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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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마라톤 / 이선희

해마다 한 번 열리는 LA 국제 마라톤은 점차 규모가 커져 널리 알려진 행사이다. 도전 심리가 강한 나는 그 마라톤에 참여 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이란 말의 의미를 실감 했다. 주자들에게 지급된 컴퓨터 칩을 신발 끈에 단단히 묶고 호흡을 고른 다음 가볍게 몸을 추슬렀다. 자신과의 고독하고 힘든 전쟁(?)에 임하기 위해서다. 결승지점에 이를 때까지 내가가진 모든 에너지를 적절히 안배하고 불필요한 힘의 유출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완주의 관건(關鍵)인 것이다. 흔들림 없는 마음가짐, 뛰는 몸의 각도, 발의 착지 요령들을 철저히 지켜야만 했다.

미국 국가가 막 끝나면서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크게 울렸다. 2만5천여 건각들의 물결이 서서히 출렁거렸다. 신선한 아침, 가뿐한 마음으로 출발 했으나 주자의 벽(runner’s wall)이라고 불려지는 18~19마일 지점쯤에 이르니 종아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무릎 속에 마치 모래알이 박힌 듯, 또한 윤활유가 부족한 기계마냥 뻑뻑 하여 계속 뛰기가 쉽지 않았다. 허리춤에 가느다랗고 긴 모양으로 차고 간 비상식(非常食), 김밥 하나를 꺼내먹었지만 이내 허기지곤 했다. 주자들에게 제공된 에너지 젤 몇 개를 연거푸 삼켰더니 구역질이 나고 속이 뒤틀리며 메스꺼웠다.

중반지점까지 당당하게 유지했던 내 스피드는 결국 후반부 8~6마일을 남기고 부딪힌 난코스에서 기록은 상쇄되고 기세는 꺾였다. 급기야 진퇴양난의 고비가 왔다. 신체의 각 부분들이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일제히 나에게 항의를 해오고 있었다. 괴롭히지 말라고, 포기 하라고. 앞을 봐도 옆을 봐도 뒤돌아봐도, 숨 가쁘게 사투를 벌이는 주자들로 거리가 넘쳤다. 제정신들이 아닌 듯 보였다. 내 형편이 그랬기 때문이었을까? 주저앉고 포기하는 상황이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쓰러진 주자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도 요란했다.

극한 상황에서도 나는 초심을 잃지 않고 속도를 조절하면서 마치 모래시계의 꼬리 부분만큼 남은 여력을 아낌없이 불태우기로 다짐했다. 에너지의 소진으로 여력의 한계가 느껴졌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태워내야 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말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들고 더 달려가야만 하는 목표지점을 향해 애써 초점을 맞췄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던가, 아! 드디어 커브 길을 돌면서 그토록 고대했던 결승 지점이 보였다. 거기가 마지막 구간인 것이다.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넌 할 수 있어, 힘내어! 거의 해냈어. 조금만 더 참아!

마치 항공기가 착륙을 시도하듯 나는 뇌파에 마지막 스퍼트를 준비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다음순간 비행기가 바퀴를 활주로에 내리고 지상질주를 하듯이. 어느 순간 파김치 같았던 내 몸이 알 수 없는 힘을 받고 마지막부분 26마일 지점을 통과했다. 남은 0.2마일, 어둠의 터널은 거의 지내가고 남은 것은 쾌거의 메달을 목에 거는 일뿐이 아닌가. 양손을 힘차게 하늘로 뻗고 나머지 짧은 구간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양쪽 도로변을 가득히 메운 응원인파의 숲 속을 내달았다.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기여 나는 개선장군처럼 결승선을 당당히 통과했다.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축하의 인사와 함께 목에 걸어준 영예의 금빛 메달. 그것을 매만져봤다. 안도의 감촉이 가슴에 차올랐다. 순간 활화산이 분출하듯 그냥 목젖을 확 트는 환호성. 나는 용감하게 출전했노라. 끝까지 싸우며 완주했노라! 그 소리는 제야 한밤중의 범종소리 메아리처럼 깨어있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내 가슴 안에 파도쳤다. 오래오래 일렁거리고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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