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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빵 말리기/ 유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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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가을 제27회《시안》신인상 당선작

 

 

젖은 빵 말리기

                                                  

                                              유지인 

 

그가 내게 젖은 빵을 보여줬다

아직은 빵의 내부를 열어볼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윗입술을 달싹이다 만다

한 번도 제대로 확 부풀어본 적 없는

찬물 속 누룩 같은 얼굴들에게

빵은 자잘한 인사말 정도는 건네야한다는 건지

툭 하면 짓물러진 귀퉁이로 짧게 인사한다

안녕! 그대의 빵은 안녕하신가?

구름의 빵틀을 벗어난 빵은

차마 돌아볼 수 없을 때에 잘 가란 인사도 없이 사라졌고

필요 없어질 때에 다시 오려는 건지

하루 종일 뒤가 가려운 때가 있다

그가 갔다 어디든 막일이라도 찾아봐야 한다고

한 바구니에 담겨져 덩달아 시큼해져가는

빵의 내부가 끊임없이 싸움을 걸어왔다는 걸

그의 의식이 관통한 너덜해진 운동화를 보다 눈치챈다

우린 이제 따뜻한 공기층이 집을 짓는

발효의 한 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주사위처럼 던져진 물음의 시간들이 움직일 줄 모른다

안부 인사 묻지 않는 사람들이 낮게 등 구부리고 사는

고시촌에서도 젖은 빵은 내부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찢어 먹다만 책갈피가 빵이 되는 거 봤니?”

누가 아무데나 낙서해 놓았다

훔쳐지지 않는 생의 모든 것은 젖은 빵 속에 있다고

짓다만 미분양 아파트 위를 위태하게 건너던 빗줄기가

안 그래도 시큼해지는 빵의 내부를 충동질하고 있다

 

 

<<유지인 시인 약력>>

* 전북 정읍 출생.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시안 등단

* 서중한 태능교회 출석

 

출처http://cafe.daum.net/sechonsa 시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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