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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詩論, 혹은 시론時論


조영민


연필을 깎다가 손가락을 베였다. 은근히 치명적으로 아팠다.

다음날, 교보문고에서 옥타비오 파스를 만났다. 나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었고, 그는 넥타이 없는 와이셔츠를 입었다. 서로 간에 말이 없어서, 많은 말을 나누었다. 집에 오니, 하비 콕스가 박수를 쳤다. 에밀 브룬너는 처음으로 물건을 집어던지며 역정을 냈다.

별일도 아니었는데 별일처럼 주변이 돌아갔다. 태어나서 쥐를 가장 많이 본 것 같다. 구름의 마스게임도 심심찮게 구경했다. 하늘의 별은 떨어지기 위해 빛난다. 시장에서 과일 대신, 모서리나 모퉁이를 사왔다. 자리에 누우면 선악과로 바람이 옮겨 붙었다.

옳은데도 싫어지는 게 있다. 맞는 것인데 틀린 것이 있다. 틀린 것인데도 맞는 것이 있다. 왜 상이한 의문들이 꼬리를 물까? 나의 주변에는 배경이 진리를 규정하는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진리보다 배경이, 항상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do not! do not! 금지인가? 방호벽인가? 안타깝게 철조망을 고안해 낸 것은 수녀였다.

배경이 으슥한 골목으로 나를 끌고 간다.

골목에 들어서면 나는 껌팔이처럼 뜨거운 피와 차가운 피가 섞인다. 넝쿨같은 어둠의 실핏줄이, 금방이라도 의자를 타고 사방의 벽으로 타오를 것 같다. 먹구름은 빠르게 흘러 환한 웅덩이를 가렸다 벗겼다를 반복한다. 시시각각 형형한 달빛으로 생명을 위협한다. 보림사의 비자림, 한그루 그늘 같은 비명을 질러야 누군가가 나에게 시간을 뱉는다. 처음 들어 온 듯 다시 들어 올 곳인 듯, 매번 불편하고 편안하다.

나는 길바닥에 자주 쓰러진다. 쓰러진 곳이 길 안이 아닌, 길 밖인 게 다행이다. 데오파니theophany-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필요하다. 주인이 올 때까지, 내 시는 내가 고용한 변호인이다. 나를 지루하게 증명해 줄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아가야 겠다.”


-계간 시산맥 21012 가을호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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