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시와 시인의 말) > 글동네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글동네

황혼(시와 시인의 말)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황혼
강위덕


바람이 마음의 뒤란 자갈밭에 꽃이랑 잎 달린 과일서껀 함께 조화시켜 내려놓고 갔는데요. 하늬바람 따라 해찰하는 나뭇가지들의 눈부신 비유(譬喩)들을 해독이라도 할라치면 속 깊은 개울물처럼 마음이 일렁입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물 없는 허공까지 파도가 흔들거리고 설렘은 하늘에 맞닿습니다 구름의 그늘이 산등 선이를 넘을 때는 어느덧 구름 언저리부터 금니(金泥)를 드러내더니 웬 하늘이 무르르 사르고 있습니다. 감지(柑紙)빛 산그늘이 산 넘어 무슨 변란이 일어났었던 듯 산 등선이를 넘는 해 걸개의 비백과 여백의 텅 빈 공간에 알맹이가 달려 있어 창세기의 생성처럼 노랑, 다홍, 빨강의 등화색이 황혼을 불러드립니다

 
 
해설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 보니 神은, 끝내 찾아 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재미가 없습니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 나가 문 열어 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 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를 합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지고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잇몸을 가진 산 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아무 일 아닌 듯 절벽엔 이름 모를 들꽃이 만발하게 피고 있습니다.
청춘의 한 복판,
존재한다는 것이 그저 미안하고 송구할 뿐,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시를 쓰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손을 뻗고 싶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웁니다.
알은 곧 세계입니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갑니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인데,
삼빡하면서도 불안할 즈음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닐까싶습니다.
연애는 한번 쯤 박살나고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상처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어서
알을 깨는 고통을 맛보기 시작하는 지점인 것입니다.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극장 매점의 팝콘처럼
하얗고 가벼운 나비 같은 생의 감촉은 차마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쓸쓸함은 사람보다 더 깊고 오랜 상처가 깊고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결코 쉬울 리 없는 자기 자신에게 다가서고서야 무슨 일이든 닥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해질 무렵 산등선이에 매달고 있는 붉은 알맹이가 황혼을 불러드리는데
인간에게는 다 늙어 황혼은 왔는데
그 속에 알맹이가 없어 남에게 보일 것이 없어 슬퍼집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