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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은행/ 조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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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은행

                                

                                       조영민 

 

나는 어디론가 날마다 인출되었지요

몇 해 전 햇빛과 나비를 꾸어간 친구는

맑은 가을을 송금해 준다더니 감감무소식,

도시에선 도무지 자산이 붇지 않아요

사람들은 대대로 물려받은 제 몸의 살구꽃 향기나

하루하루 반딧불이 빛을 탕진하며 살아요

변두리로 이사 한 나는 소주병보다 먼저 쓰러져

모서리를 껴안고 잠들 때가 많았어요

이제는 깨진 적막을 치우고 꽃잎 넣어 도배하고

낡은 의자에 노루표 페인트를 칠하고 싶어요

마당 입구는 까치 부부에게 세놓고

지난날 집의 심장 소리 같은 냉장고 플러그를 뽑아

텃밭 냉장고를 가동하고 싶어요

누구도 받지 않던 매미 전화벨을 받아 들 때는

창으로 부침개 냄새를 흘리고 싶어요

날이 어두우면 밝은 별 하나만 켜고, 그 빛으로

대처로 인출된 아이에게 가고 싶어요

길은 나를 부르지 않겠지만 내가 가면 길이 된다는 걸

바람조차 보증인 이 계절이 서명해요

나는 반만 잃었지만 늘 전부를 잃어온 당신,

당신의 여름도 찾아주고 싶어 퇴직금 같은 봄을 지나요

그럴 때 당신의 상처도 나에게 조금씩 입금되겠지요

젊은 날 내가 당신에게 저축한 것으로

봄은 언제나 한도를 갱신하고 있어요

 

『시로 여는 세상』(2012, 가을호)

 『현대시학』(2012, 10월호 재수록)

 『계간 시향』(2012, 겨울호 재재수록)

http://cafe.daum.net/sechonsa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시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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