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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맞고 싶을 때가 있다

                                                   조영민

오동나무는 이파리를 툭툭 신경질적으로 던졌다 바람에 날리는 잎은 각종 고지서 같았다 채무자인 아버지는 묵묵히 잎을 쓸곤 했다 잎은 지붕을 덮고 부엌까지 쳐들어왔다 집을 엿듣는 커다란 귀 귀를 주워 불에 태웠다 오동나무가 짐을 벗으면 우물은 깊어졌다 저 멀리 시누대숲도 마루 밑이나 외양간 소울음도 처음 본 듯 깊었다 골방에 누워있는 할아버지와 하루 종일 조용히 놀고 싶었다 새들이며 꽃들은, 오동잎이 여름의 마지막 문을 닫아야만 미련을 버렸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남들보다 일찍 외로움을 배웠다

누군가 찰싹찰싹 뺨을 때린다 오동잎이 지는 가을밤 뺨을 실컷 맞고 싶을 때가 있다


<시인의 말> 맛있는 고요
                                    

그때 마을은 고요의 전시장 같았다.

나는 풀이 자란 담장을 자주 바라보았다. 바로 옆집에는 병이 깊은 노인이 살았다. 이따금 마주치는 노인은 살갗이 속옷처럼 보였다. 얼굴에는 저승꽃이 피었다. 어느 누구도 물을 주지 않았다. 고랑의 김도 매주지 않았다. 그런데 꽃이 웃자랐다. 노인은 마루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곁의 UN성냥, 안티푸라민, 재떨이는 객지로 떠난 자식들 같았다. 고무줄로 묶은 금성 라디오는 온종일 지지직지지직거렸다.

먼 들녘에서 발동기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렸다. 때로는 광주행 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사라졌다. 하지만 노인의 쩌렁쩌렁한 고요보다 소리가 작았다. 어쩌면 내가 저 고요를 상속받는 게 아닌가 두려웠다. 노인의 병이 깊어 갈수록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해졌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는 것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오동나무가 나를 다독거렸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사춘기가 일찍 찾아왔다.

전남 장흥군 유치면 덕산리, 내 고향은 수몰되었다. 이제는 영영 꿈에서도 볼 수 없다. 굴삭기가 파헤친 내 몸에선 나물 하나 나지 않는다. 도시에서 밥술을 뜰 적마다 맛있는 고요가 그립다. 장닭 우는 소리가 사라진 뒤 마을의 적막, 아무도 없는 밭으로 감이 툭 떨어지던 풍경, 달빛이 창호지 문을 반쯤 비추던 모습, 돌이켜 보면 내가 매일 먹던 일용할 양식들이었다.

나는 수몰된 고향에서, 고요를 다 가져오지 못했다. 냄비와 선풍기, 다리미를 버려야 했다. 고향을 떠나온 뒤로 고요를 충분히 먹지 않았다. 길을 가면 갈수록 자꾸만 허기가 졌다. 봄과 여름에는 전혀 길을 가지 못했다. 가을과 겨울에는 뒤를 돌아보아야만 겨우 길을 갔다. 목적지는 점점 멀었다. 나는 시시때때로 영원의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무엇이든 바로잡기에 좋은 계절인 가을, 앞으로 가을은 몇 번 더 오지 않는다.

《뉴스레터》(2013,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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