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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컴컴한 저녁, 텐트 밖에서 저희들을 부르는 사역자의 목소리에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역자 옆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아밀리아제(Amiliaje) 남편이 서 있었습니다. “막내아들이 며칠 째 심하게 배앓이를 하고 있는데 같이 가주시겠어요?” 이곳은 바라바이크(Barabaiq) 부족들이 살고 있는 광야, 에쉬케쉬(Eshkesh). 주변에서 약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 선교사들이 살고 있는 교회입니다.

    

저희는 숯가루와 탈수 시 먹는 가루약을 가지고 서둘러 아밀리아제 집으로 향했습니다. 하늘을 수놓은 검푸른 별들만이 반짝이는 시간, 소들도 양들도 각자 잠이 든 가축우리를 힐끗 들여다본 후 아기가 있는 움막으로 들어섰습니다. 가져간 손전등에 희미하게 비쳐오는 움막 안 풍경. 매트리스는커녕 홑이불 하나 없이 그저 넓게 펴놓은 소가죽 위에는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칭얼거리고 있는 아기를 안고 있는 아밀리아제가 있고, 흙이 흩날리는 땅바닥(여긴 방 안입니다)에는 역시나 피부병 앓는 개 한 마리, 그리고 새끼 양 몇 마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네요. 여자들과 아이들이 사는 집 안은 작은 침실에 부엌이 딸려있는 구조이다 보니 저녁 요리 끝에 타다 남은 숯 냄새가 매캐하게 코를 찌릅니다. 바닥 군데군데 굴러다니는 똥과 날리는 개털, 그 사이로 4명이나 되는 아밀리아제 아이들이 허겁지겁 우갈리(Ugali, 옥수수가루 반죽)를 집어먹다 낯선 방문객의 인기척에 흠칫 놀라 문간을 쳐다봅니다.

   

저희는 인사를 나눈 후, 서둘러 가져간 숯가루와 생수를 함께 물에 개어 아직 불길이 남아 있는 숯 위에 올렸습니다. 아기 엄마 손을 꼭 잡고 기도를 마친 후, 미지근하게 데워진 숯가루 물을 한 수저씩 아기에게 먹였습니다. 처음 맛보는 검은물에 손사레를 치며 기겁을 하던 아이는 이내 수그러져 한모금 한모금 조심스럽게 받아마셨습니다. 여분의 숯가루와 가루약, 깨끗한 물 한 병을 아기 엄마에게 건넨 후 물은 꼭 끓여서 먹이고, 손과 얼굴을 씻길 것을 당부했습니다. 며칠 뒤, 아밀리아제 남편으로부터 아기가 많이 나았다는 고마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에쉬케쉬에 머물 때마다 이런 저런 통증을 호소하며 약을 찾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벌겋게 충혈된 눈가로 자글자글 눈곱이 반쯤 눈을 덮은 꼬맹이들, 말라리아만큼이나 흔한 감기 때문에 늘 콧물을 달고 다니는 아이들, 소떼를 몰다 어디서 긁혔는지 찍혔는지 건조한 피부에 그려진 상처를 보여주는 청년들, 웅덩이 물을 마시다 보니 배 속 기생충으로 늘 아픈 배를 움켜쥐는 사람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슴이 아프다고 찾아오는 어르신들까지... 죄다 아픈 사람뿐인 바라바이크 마을에서 안타까운 한숨을 내쉴 때가 많았습니다.

    

손에 쥐는 알약 하나, 함께 마실 깨끗한 물 한 모금이 너무나도 절실한 사람들을 보며 무료진료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는데 이들의 고통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지난해 에쉬케쉬 교회 옆으로 공동체케어센터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주, 작게나마 가축약국개원으로 센터가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약국을 열기에 앞서 난데없는 박쥐와 한판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가축약과 진열장을 들고 에쉬케쉬로 들어간 첫 날,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마시며 부족원들과 공을 차고 있는데 뭔지 모를 수상한 기운이 감돌면서 복작 복작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습니다. 소리의 시발점은 센터 건물 지붕.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날 듯 갑작스러운 긴장에 모두들 숨을 죽이고 올려다보는 그 순간, 지붕 양 끝의 구멍 밖으로 줄줄이 떼를 지어 나오는 생명체가 보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박쥐! 박쥐 떼였습니다. 박쥐들은 마치 군인들이 공중낙하를 하듯 은신처에서 신속하게 탈출하여 곧 하늘을 가득 메워버렸습니다. 뜬금없는 장관이라 해야 할까요?(작은 박쥐들이 하늘에 점점이 찍혀 있는 모습이 핸드폰으로는 잡히지 않아 사진으로 올리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생뚱맞은 박쥐 떼 출현에 당황한 가슴을 안고 맞은 다음날 아침, 먼저 건물 내부로 들어가 천장 쪽으로 모기약을 뿌렸습니다. 주인행세를 하던 야행성 박쥐들의 달콤한 낮잠시간, 마치 건드리지 말라는 듯 짜증 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다음으로는 더러운 옷을 주어다 불을 피웠습니다. 그리고는 나뭇가지로 천장을 연신 마구 두들겨 댔습니다. 박쥐들은 은신처가 들킨 것을 알고는 하나 둘 씩 지붕의 뚫린 구멍 틈사이로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객들이 나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천장의 보드를 하나하나 뜯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박쥐 똥과 죽은 시체들, 그리고 구더기들이 바닥으로 어마무시하게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 냄새란 비린내와 역겨움이 섞여 메슥메슥 구역이 날 듯 했습니다. 오전 내내 박쥐와의 전쟁을 마친 후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고 하루 종일 환기를 시킨 후에야 진열장을 들여 넣고 약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약국을 준비하는 동안 에쉬케쉬 교회 안에서는 스와힐리어 교실이 한창이었는데요. 어린 아이들이 아침 7시부터 1~2km는 족히 떨어진 보마(Boma, 가옥)로부터 교회를 찾아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각자 목에 비닐봉지를 걸고 말이지요. 가녀린 목에 달랑달랑 매달린 검은색 비닐봉지라! 처음엔 저 역시 저게 뭘까얼핏 위험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건 책가방이었습니다. 공책과 연필을 가지고 다니기 위해 아이들이 생각해 낸 방법인 것이지요. 부족 아이들은 스와힐리어 교실을 통해 성경을 배우고, 기억절을 외우며 탄자니아의 언어인 스와힐리어를 배웁니다. 모국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바라바이크 부족, 이들이 나라에서 주류로 편입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에쉬케쉬의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집에 와서 스와힐리어로 말하고, 스와힐리어로 숫자를 세며 스와힐리어로 기억절을 외우는 것을 보고는 너무나도 감격스러워 합니다. 저희 교회가 작게나마 아이들을 위한 이런 교실을 시작할 수 있어 참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이 아이들을 위해 센터 옆에 작은 유치원이라도 세우고 싶습니다.

    

드디어 다음날 아침, 사역자들과 모여든 몇 명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조촐한 개원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 에쉬케쉬 땅에 교회, 사역자 사택과 더불어 공동체케어센터를 세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 정부도 사람들도 외면하는 이 소외된 바라바이크 부족의 신음을 들으시고 복음의 등대를 높이 드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영육간에 회복시키고 계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더불어 에쉬케쉬에 물을 공급하는 프로젝트가 곧 시작될 예정입니다. 에쉬케쉬에서 5.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냐무스타(Nyamusta)라는 마을에 현지 오순절교회가 후원한 우물이 하나 있는데요. 이 우물은 전적으로 에쉬케쉬 사람들을 위한 우물입니다. 저희들은 그 우물로부터 수도관을 연결하여 5km 구간 내에 여러 개의 물탱크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시작 단계에 있는 이 프로젝트를 위하여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바라바이크 부족들에게 깨끗한 물까지 공급이 된다면 이 에쉬케쉬 공동체는 의료, 교육, 자급자족을 위한 소규모 농장까지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알약 하나에도 물 한 모금이 필요하고, 빈속으로 학교에 오는 아이들에게도 죽 한 그릇이 필요하며, 마른 땅에 뿌리를 내릴 파파야(Papaya)나무와 카사바(Casava)뿌리에도 물 한 줄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에쉬케쉬의 모든 바라바이크 사람들이 그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필요를 친히 돌보길 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꼭 깨닫게 되길 기도합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척박한 광야의 바라바이크 사람들 속에 그들 자신들은 잘 모르지만 그들을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하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소외된 부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바라바이크 사람들을 하늘로 인도하시는 그날 저희 역시 그들과 함께 그곳에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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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케어센터 건축을 도와주신 최현경 집사님, 파이프 연결 공사를 도와주실 미국과 캐나다의 김종식 장로님과 박창우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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