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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에서, 탕자와 큰 아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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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석진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6.27 23:41 조회수 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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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에서,  탕자와 큰 아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1)                                                                                                                                    

나는 야곱의 생애에서 우리의 진실됨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해 본다.
아주 오래전부터 야곱의 생애를 들여다 보면서
하나님 앞에 선 우리들의 삶이 어떠한 삶이어야 하는지 생각한다.

야곱의 생애를 연구하면서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불안한 마음을 제어할 수 없었다.
그동안 그에게 가졌던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이 하나의 편견이 아닌가 하고
불안해 하였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맺어진 언약과 관계의 역사에서
야곱은 믿음의 조상으로 또한 이스라엘  건국의  역사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러한 그에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부정과 불안이 아닐 수 없다.

야곱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이렇게 시작한다.
야곱은 태어날 때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야곱으로 지어졌다.
그의 이름은 발꿈치를 걸어서 넘어뜨리다라는 말이다.
걷는 사람들의 발꿈치를 잡으면 넘어지게 되어 있다.

이 야곱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킬레스 영웅이 생각난다.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전쟁의 영웅인  아킬레스는
한 약점이 있는데 그에게는 발뒤꿈치가 약한 것이다.
결국 그는 아폴론에 의해 그곳에 화살을 맞고 영웅의 최후를 마친다.

발뒤꿈치는 어쩌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약한  부분이다.
인간은 이 부분에 치명타를 당하면 넘어진다.
야곱은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다.
그런데 그는 그의 삶 속에서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발꿈치를 잡은것 같다.
그는 에서의 발뒤꿈치를 태어날 때 부터  지금까지 잡고 있다.                                                                                                                        
아버지 이삭의 발꿈치를 잡았고 외삼촌 라반의 발꿈치를 잡았다.
그는 이러한 과정에서 어머니 리브가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레아를 평생 슬프게 하였다.
또한 집착스러운 편애가  자식들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아마 얍복강에서 천사의 발뒤꿈치를 잡았는지 모른다.
야곱은 무서운 사람이다.
그는 조용한 사람으로 장막에 거하면서 머리를 굴려 세상의 이치를 안다.
그는 군대에서 제갈공명과 같은 군사의 자질을 갖고 있고
회사에서는 기획실장과 같이 회사를 운영한다.
그의 계획과 판단은 거의 옳았고 추진하는 능력도 남달았다.
그는 자기의 영달에 집착하였다.
장자의 중요성을 안 그는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고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가로챘 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채산을 모았다.
그의 의중에는 남을 속여서라도 복을 얻고자하는 생각이 강했다.
라반의 집에서 한 그의 말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니이까?”

나는 모든 사실을 야곱의 편에서 보았다.
그래서 그가 한 모든 일은 옳은 것이요
비록 속이는 것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당연한 것이며
하나님이 언제나  그의 편이라 생각한다.
창세기 저자도 야곱 자신도 그렇게 이야기를  쓰고 있다.
에서의 입장에서의 역사는 우리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역사를 본다.
우리의 삶에서도 그렇다.
진리가 주관이라는 실존주의 철학의 명제처럼
현실의 모든 삶이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지나간 날의 역사를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많은 것들이 허망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에게 진실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야곱의 생애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는 질문이다.
야곱의 삶을 부정했을 때
나의 삶도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세월 십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 불안한 인간의 모순을 생각하면서 살아온지…..
그러던 몇 달 전 안식일 아침
교회를 가는 차 속에서
아침의 광면과 같이 떠 오르는 깨달음이 있었다.

야곱은 형과 아버지를 속여 집을 떠나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갔고                                    
이십여년이 지나
이제 다시 외삼촌의 집에서 거의 같은 일로 다시 도망가야 하는데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세월이 지났지만
야곱도 그의 주의 상황과 현실도 바꾸어지지 않았고
모든 것이 더 악화된 상태에 있다.
그러나 그는 가야한다.
돌아가야 한다.
그에게 의지할 수 있게 남아있는 것은 단 하나 밖에 없다.
돌아가는 것이다.

야곱은 탕자인 것이다.

하나님이 창세기에 기록한 탕자 야곱의 이야기이다.
비록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발뒤꿈치를 잡는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승리자의 이름을 주시는 하나님
그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열 한시에 하나님께 돌아갔다.
비록 많은 상처가 그의 인생을 얼룩지게 하였지만
그것이 그의 진실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우리에게 진실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참말로 우리의 진실은 다 더러운 옷과 같다.

오늘 우리가 그에게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진실이기 때문에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그에게 돌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탕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돌아가야한다.
그래서
이 야곱의 이야기는 우리들 탕자의 이야기 이다.

좋은 안식일을 보내세요.

다음은 큰 아들 에서의 이야기

2008년 6월 28일 안식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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